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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0 세 번 세워지고 세 번 무너진 교회

Taos Pueblo 그리고 록키 산맥을 넘어 콜로라도로

by Jaeho Lee

산타페에서 여유있게 아침을 보내고 타오스로 향한다.


타오스 푸에블로는 대략 1000년부터 1450년도까지 건축된 주거지가 지금까지 보존, 사용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이다. 산타페에서 타오스를 향해 가는 길은 꾸불꾸불한 산길이 이어진다. 타오스 푸에블로는 타오스 시내로부터 대략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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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그 동안 방문했던 다른 인디언 보호구역들과 자연 환경이 많이 다르다. 마을 뒤로는 높은 산이 있고 거기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을 가로지른다. 지대가 높아서 한여름임에도 그다지 덥지도 않다. 황량하고 척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미국 인디언 부족에 비하면 축복받았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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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8에 방문했던 Acoma의 경우 오냐테가 이끄는 스페인군의 공격으로 마을이 무너졌다가 다시 재건되었던 반면, 이곳 Taos는 1천년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에 마을이나 집들의 모습이 좀 더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일부 건물은 5층 높이까지 건설되었는데, 위층으로 갈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피라미드 형태로 건축되었다. 1층 집의 지붕이 2층 집의 발코니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금은 집에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으나, 예전에는 따로 있지 않았고 지붕으로 출입했다고 한다. 사다리를 통해 지붕으로 올라간 뒤, 다시 사다리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외부 침입이 있을 경우 사다리를 모두 걷어내는 방식으로 침입에 대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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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맑은 시냇물을 보고 있자니, 맘이 편안해진다. 가만 생각해보니 라스베가스로부터 지금까지 열흘 동안 여행하면서 이처럼 맑은 시냇물이 흘러가는 풍경은 본 기억이 없다. Taos 부족의 조상들이 Zuni나 Acoma 조상들보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혹은 더 힘이 강해서 좋은 지역을 차지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처럼 건조하지 않았던 1천년 전에는 Zuni나 Acoma 푸에블로 지역이 외진 산간의 Taos 푸에블로보다 더 나은 곳이었을까?


3시 30분부터 시작하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했다. Zuni나 Acoma 푸에블로와 달리 관광객이 꽤 많다. 주말이라 그럴 수도 있고, Taos가 더 유명해서 그럴 수도 있다. 첫 방문지는 산제로니모 교회이다. Zuni나 Acoma의 교회는 거의 방치되어 있다시피 한데, 이곳 교회는 아직도 일요일에 미사가 집행된다. 성모마리아상 주위로는 옥수수 그림이 장식되어 있는데, 부족 전통 신앙과 가톨릭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남서부지역 푸에블로들과 마찬가지로 Taos도 1540년 코로나도의 탐사를 통해 유럽인들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1619년에 교회가 세워졌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전통 신앙을 배척하는 스페인의 강압적인 기독교화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로 1660년경, 파견되어 있던 신부들은 살해되고 교회는 파괴된다. 이후 교회가 재건되었지만, 1680년 남서부지역 푸에블로들이 연합하여 스페인인들을 몰아낸 푸에블로 항거 때, 또 다시 파괴된다. 1680년 푸에블로 연합 항거 당시 타오스 푸에블로는 본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푸에블로 항거는 인디언들이 유럽인들을 자신들의 영토에서 몰아낸 유일한 사건인데 당시 항거의 지도 역할을 했던 포페이(Po'Pay)가 강압적인 통치방식을 지속하고, 스페인 문물의 사용을 금하는 등의 정책을 펼치며 인디언들의 지지가 시들해지다가 그가 사망하면서 인디언들의 결속력이 약화된 틈에 스페인이 1692년에 뉴멕시코 지역으로 재진출하게 된다.


1846년 미국이 멕시코 영토였던 뉴멕시코 지역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은 뉴멕시코 주지사로 Charles Bent를 파견한다.그런데 당시 타오스 푸에블로를 관장하던 멕시코인들의 지휘하에 타오스 주민들이 Bent와 그 일행을 살해하는 사건이 1847년에 벌어진다. 그 보복으로 미국은 타오스를 공격했고,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던 산제로니모 교회를 포격하여 그 안에 있던 1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죽게 된다.


산제로니모 교회는 이렇게 세 번 지어지고 세 번 파괴되는 역사를 갖게 되는데, 미군에 의해 파괴된 교회 잔해는 지금도 마을 귀퉁이에 그대로 서 있다. 지금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산제로니모 교회는 1850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1118173900_3_crop.jpeg 산제로니모 교회 잔해

마을의 뒤에 있는 산은 Blue Lake를 품고 있는데, 마을을 흐르는 냇물의 원천이기도 하고, 부족전설로는 부족이 탄생한 성지이기도 하다. 이 산지는 1906년 미국 정부소유의 국립산지로 되었다가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1970년에 돌려받게 된다. 현재 해당 지역은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마을 모퉁이마다 노점상이 늘어서서 장사를 하던 Acoma와 달리, 이곳은 곳곳의 집들을 상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매우 시원하다. 집 벽은 어도비 벽돌을 이용하여 건축하는데, 그 두께가 5피트(1.5미터)에 달하는 곳도 있을 정도로 두껍다. 이곳은 고지대라 겨울에는 추운데, 이처럼 두꺼운 벽을 이용해서 외부의 열기나 한기를 차단하고 있다. 점토와 짚을 섞어 만들어진 주택들은 지속적으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최소 1년에 한 두 번 작업이 진행된다고.


관광객 중의 한 명이 묻는다.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는지. 이곳 타오스 푸에블로의 집들은 각각 그 주인이 있고 이들이 각자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단다. Acoma 경우처럼, 타오스도 현재 많은 주민들은 이곳 푸에블로에 살지 않고 보호구역내의 인근 지역에서 살고 있다. 별도로 찾아본 자료에 의하면, 미국 정부에서 타오스 주택의 유지, 보전 방법 연구를 위한 지원을 별도로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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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스를 떠나 북동쪽으로 향한다. 로밍신호가 다시 끊어지면서 구글맵이 작동을 멈춘다. 그 동안에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기에 매일 아침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에 당일 여정을 구글맵에서 다운받아두고 사용했었는데(딸아이가 가르쳐 준 방법), 잠시 도시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다 보니 깜빡 했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모텔에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와이파이에 접속해서 해결한다. 앞으로는 매일 당일 경로를 구글맵 오프라인으로 다운받아 놓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내가 묻는다. 차코캐년 주민들이 메사베르데로 갔다가 다시 푸에블로 지역으로 이주했다는데, 왜 집들은 차코캐년이 가장 멋져 보이지? 허를 찔린 느낌이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내 말에 공감이 간다. 왜 그럴까? 차코캐년 건축물의 주 재료는 사암이다. 혹시 푸에블로 지역에서는 사암을 구할 수 없었기에 현지 조달 가능한 진흙을 사용했던 것일까? 누구에게 물어봐야 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후 연구과제로 남긴다.


160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로키산맥을 넘었다. 그 이후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다. 우리가 다시 산이 있는 경치를 만나려면 며칠을 더 지나야 할지 모른다. 아내가 얘기한다. 지루해서 어떻게 해? 어쩌면 황량한 뉴멕시코 지역의 경치가 그나마 덜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플로리다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은 나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의 속살이랄까?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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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Junta라는 곳의 숙소에 체크인 하는데 직원이 무슨 일로 ‘라후나’를 방문하는지 묻는다. 이곳 지명의 발음이 ‘라후나’, 혹은 ‘라훈타’란다. 그냥 지나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 여정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영 복잡하다. 유명한 여행지 인근도 아니고 주요 고속도로가 지나는 요지도 아닌 이 콜로라도 시골 마을에 들어선 동양 사람이 나름 궁금했을 듯하다. 나도 지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이런 마을에서 잠을 자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내일은 Sand Creek이라는 곳을 방문할 계획이다. 1864년에 수백 명의 아라파호족과 쉐이엔족 인디언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1,12세기의 인디언 문명, 그리고 17세기의 스페인 침입을 다루다가 갑자기 1860년대로 건너뛰게 되는데, 이야기 전개가 고민이 된다.


전반적인 여행 일정은 가능한 한 역사전개 순서에 맞추어 인디언 문명과 스페인의 침략을 주제로 플로리다까지 진행한 후, 대서양 연안에 건설된 영국 식민지를 따라 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나서 영국과 프랑스 전쟁 및 미국 독립전쟁, 그리고 미국 독립후의 서부침략 경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로를 짜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특정 장소는 시간의 순서를 건너뛰어 먼저 방문하고 갈 수 밖에 없다. 샌드크릭이 그런 곳이다.


내일은 1860년대 콜로라도 대평원 지역의 인디언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당시 미국 동부에서는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캔자스 주로 진입한 뒤, Wilso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다.


라스베가스에서 차를 렌트하면서 시작한 마일리지가 오늘 2000마일 (3220Km)을 넘었다. 시애틀에서 차를 반환할 때, 렌터카 회사에서 놀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도 1만 마일은 족히 넘을 듯 한데, 엔진 오일 교환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기름 넣는 것 외에는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게 렌터카의 장점 중의 하나였는데, 세차야 가끔 한다 하더라도 엔진 오일 교환까지 챙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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