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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Nov 30. 2019

Day22 담배가 구한 식민지, 영국에 간 포카혼타스

워싱턴DC 인디언 박물관 그리고 제임스 타운 세번째 이야기

이틀째 늦잠을 잔 후(행복하다!), 워싱턴 시내에 나가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 원래 워싱턴은 딸아이를 만나 우리의 순례길에 합류시키기 위한 장소로만 생각했기에 특별히 이곳에서 인디언 관련 장소를 알아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어제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검색하다가 인디언 박물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뚜벅이 여행을 했다. 워싱턴의 지하철이 꽤 괜찮았다. 그 동안 경험해 본 미국 지하철은 뉴욕밖에 없었기에 다 그러려니 했는데, 이곳 지하철과 지하철역은 꽤 쾌적한 편이다.

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디언 박물관은 4층의 영화관람부터 시작하도록 추천되어 있다. 다만, 각 부족마다 각기 다른 사연이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루려다 보니 내용이 다소 추상적인 점은 아쉽다. 4층은 영화관 외에 두 개의 큰 테마관이 있는데, 하나는 몇 개 부족들의 탄생전설, 문화, 그리고 현재의 모습 등을, 다른 하나는 여러 인디언 부족들이 미국과 맺은 조약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몇 개의 주요 조약에 대해서는, 해당 조약이 미국과 인디언 부족 양측에 어떤 의미이며 그 결과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준다.


3층에도 몇 가지 주제별로 전시관이 있는데, 첫 번째 전시관은 미국을 상대로 인디언이 대승을 거두었던 1876년의 리틀빅혼 전투(The Battle of Little Bighorn)를 다룬다. ‘과연 누가 승자라고 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이 사건이 당시 미국 사회에 준 충격을 얘기한다. 설명에 따르면, 이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버금가는 큰 일이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커스터(Custer)가 이끄는 제 7기병대는 쉐이엔족과 수우족(라코타족라고도 함)의 마을을 기습 공격했다가 이들 부족의 반격에 거의 몰살된다(커스터를 포함한 268명의 미군 전사).


물론 이 전투 이후 미군은 더 거센 보복을 통해 결국 인디언들을 굴복시키고 원하는 협정을 체결해 내지만, 미국에  큰 패배를 안긴 이들 부족은 미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비록 이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장렬히 전사한 커스터와 제7기병대는 미국 서부개척 역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얘기되는 영웅이 된다. 리틀빅혼 전장은 우리가 미국의 서부개척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방문할 계획이다. 그 때 더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리틃빅혼 전투를 주제로 한 그림

3층의 두 번째 전시관은 인디언 제거법(Indian Removal Act)에 따른 5개 문명화된 부족의 강제 이주(day 13에서 얘기한 바 있음)에 대한 것이었다.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면, 당시 잭슨 대통령 행정부가 얼마나 졸속으로 이 일을 추진했었는가 (50만불의 예산을 요청했었는데, 실제로는 그 200배인 1억불이 소요됨), 또한 얼마나 많은 인디언들이 강제 이주과정에서 사망했는가, 그리고 동남부 지역 인디언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 미국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지역의 비옥한 토양에서 면화농사가 성공함으로써 미국이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있으면 결국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에게는 끔찍한 인물이었으나 미국인들(백인들)에게는 대단한 인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인디언 제거법은 미국 하원에서 102대 97로 통과되었다고 하니, 당시 미국인들이 경제적 이익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했던 흔적을 보는 듯 하다.

강제 이주과정의 각 부족민과 희생자수를 정리한 전시물

세 번째 전시관은 인디언을 소재로 한 각종 상품들을 소개하는 곳이다. 자동차(체로키), 헬기(아파치, 치눅, 키오와, 코만치, 쇼니 – 모두 부족이름) 그리고 순항미사일(토마호크-인디언들의 손도끼) 등 많은 브랜드들이 거대한 벽의 양면을 채우고 있다.

네 번째 전시관은 포카혼타스에 대한 내용이다. 그녀는 단지 존 스미스를 구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를 구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녀를 통해 강력했던 포와탄 왕국과 제임스타운 식민지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부분은 뒤에 좀 더 다루기로 하겠다.

그리고 특별전으로 잉카문명 및 문화에 대해 꽤 상세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아메리칸 인디언을 얘기하려면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 보는 것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감당할 범위가 너무 커져서 난 그냥 미국 인디언으로 한정해서 살피려 한다.


이곳에 있는 뮤지엄샾에서는 여러 부족들의 대표적인 상품들을 진열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주로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물품이 많은 편이다. 우리가 주니마을에 갔을 때(Day 5), 가이드가 주니부족민들이 공예품 제작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설명을 해 주었는데, 실제로 이곳에는 주니부족의 보석공예나 도자기류가 많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모든 부족의 사례가 포함된 것은 아니지만, 한 장소에서 인디언들과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한 깊은 분석 및 자료를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꽤 의미 있는 박물관 체험이 된 듯 하다.

이제 다시 제임스타운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존 스미스가 영국으로 돌아간 후 다시 극도의 위기에 몰려있던 제임스타운을 구한 것은 또 다른 존이라고 얘기했었는데, 그가 바로 존 롤프(John Rolfe)이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서인도제도산 담배 경작을 제임스타운에서 시도하는데, 수 차례 실패 끝에 마침내 미국 땅에 적합한 종자를 찾아내고 재배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제임스타운산 담배는 영국으로 수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결국 버지니아컴퍼니가 그토록 찾던 금 대신 담배를 통해 제임스타운 식민지는 정착에 성공하게 된다.


식민지에서 담배 재배 붐이 일면서, 더 많은 정착민이 몰려오고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포와탄 왕국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일부 정착민이 포와탄 왕의 딸 포카혼타스를 납치한다. 이들은 그녀를 원주민들이 붙잡아간 정착민 및 다른 물품들과 교환할 심산이었는데, 이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존 롤프가 제임스타운에서 지내고 있던 포카혼타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수많은 논란 끝에 포카혼타스는 세례를 받고 이름을 레베카로 개명한 후, 존 롤프와 1614년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 결혼을 계기로 포와탄 왕국과 제임스타운 식민지는 7년간 평화를 누리게 된다. 결국 존 롤프는 담배 경작의 성공과 포카혼타스와의 결혼으로, 두 번에 걸쳐 제임스타운의 번영과 평화에 공헌하게 된 셈이다.


1616년에 포카혼타스는 남편 존 롤프,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함께 영국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런던의 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런던에 머물던 존 스미스와도 재회하는데, 그 자리에서 포카혼타스는 제임스타운의 영국인들은 존 스미스가 죽었다고 말해 왔지만 자신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한다.

영국 왕실 방문시 그려진 포카혼타스 초상화

당시 포와탄왕은 포카혼타스의 수행원 자격으로 자신의 심복 하나를 딸려 보내 영국을 정탐해 오라고 했다 한다. 정말로 영국이란 나라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무막대기에 눈금으로 사람 수를 표시해 오라고 했다는데, 아마도 이 조사는 도착 첫 날 포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듬해에 존 롤프와 그의 가족은 다시 제임스타운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병을 앓던 포카혼타스와 그의 아들의 병세가 악화되어, 제임스타운으로 향하는 배가 템즈강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강변의 어느 마을에서 포카혼타스는 사망한다. 20대 초반의 나이였다.


제임스타운 유적지에는 존 스미스 동상의 뒤편으로 포카혼타스의 동상이 서 있다. 10대 초반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20대 초반 숙녀의 모습으로. 포카혼타스는 영국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인디언 여인일지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타운의 또 다른 영웅, 존 롤프의 동상이 없는 것은 좀 아쉽다. 그에게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식민지와 평화적 관계를 유지해 오던 포와탄 왕이 죽고 그 자리를 승계한 오페창카누(Opechancanough)는 식민지를 상대로 대대적인 공격을 전개하여 한 때 전체 정착민의 1/3에 달하는 350명이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정착민으로 곧바로 채워졌고, 결국 포와탄 왕국의 붕괴와 함께 대부분의 원주민 부족은 버지니아 인근에서 소멸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내일은 미국의회 의사당을 방문한 뒤 뉴욕으로 이동한다. 의사당 원형홀(rotunda)에 가서 찾아 볼 내용이 있어서이다. 뉴욕까지의 일정은 아직 휴식 모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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