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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01. 2019

Day23 그곳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원주민들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보여지는 원주민 인디언의 모습들

워싱턴 일정의 마지막 날, 의회의사당을 방문했다. 미국 의회는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곳이고, 이 곳에는 미국 건국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상징이 표현된 예술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예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미국 인디언의 관점에서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한다.

방문객 센터에는 각 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인디언들도 여럿 있었다. 먼저 포페이(Po’Pay). 뉴멕시코주의 인물인데, 1680년 당시 뉴멕시코 지역을 지배하던 스페인에 대항했던 푸에블로 항거(Day10에서 소개된 바 있음)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서로 언어도 달랐던 여러 푸에블로들을 통합하여 스페인인들을 뉴멕시코 지역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포페이 동상

그리고 또 다른 인디언 동상들로는, 와이오밍주는 백인들과 평화를 유지했던 와샤키추장(Washakie), 네바다주는 교육가였던 사라위네무카(Sarah Winnemucca), 노스다코타주는 루이스 클라크 탐사대를 도와주었던 사카카위아(Sakakawea), 하와이주는 왕국의 통일을 이끌었던 카메하메아 1세(Kamehameha I) 등이 있다.  

이들 중 인디언 입장에서 중요한 인물은 포페이 정도일텐데, 그가 몰아냈던 대상이 미국인이 아니었기에 이곳 의사당에 있는 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사당내 예술 전시물의 핵심은 로툰다(Rotunda)라고 볼 수 있다. 천장의 원형 돔 밑으로 그림들(Frieze)이 둘러져 있는데, 미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인 19개의 장면이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다. 흰색과 회색을 사용하여 매우 입체감을 주고 있어서 마치 부조된 조각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표현된 역사적 순간의 첫 장면은 콜럼버스의 서인도제도 도착(1492)이고, 마지막 장면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발명(1903년)이다. 1951년을 끝으로 마지막 3개의 그림이 추가되었다고 하니 그 이후의 역사적 장면(예를 들면 달착륙)은 여기에 포함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콜럼버스의 서인도제도 발견으로부터 시작해서 코르테즈(Cortez)의 아즈텍 정복과 피사로(Pizarro)의 잉카정복으로 이어지는 처음 3개의 그림은 사실상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 이들이 포함된 것은 약간 의아한 느낌이 든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수중에 넣은 것을 기념하는 것일까?


그 다음 그림은 미시시피 강에서의 데소토의 사망과 포카혼타스가 존스미스의 생명을 구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청교도(필그림)의 상륙, 윌리엄 펜(William Penn)과 델라웨어 인디언, 뉴잉글랜드 식민지 건설, 오글소프(Oglethorpe)와 머스코기(Muskogee) 인디언(크릭-Creek 부족으로도 불림)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후에는 독립전쟁, 멕시코전쟁,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 남북전쟁, 스페인전쟁 등이 나오고, 그 사이에 테쿰셰(Tecumseh)의 사망 장면이 들어있다.

윌리엄 펜과 오글소프는 인디언들과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이들의 영토에 합법적으로 펜실베니아주와 조지아주를 만든 사람이다.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이처럼 평화로운 방법으로 영토를 획득하고 또 자신들에게 영토를 내어준 사람들을 기림으로써, 유럽인들의 미국 영토 확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이들처럼 평화적으로 (사실은 일시적인 속임수였을 수 있지만) 유럽인들이 영토를 확보한 사례는 드물다. 그럼에도 이 두 개의 예외적 사례들이 이곳  의회의사당에서 미국의 영토확보를 대표하고 있다.


포카혼타스를 제외하면 그림에서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디언은 테쿰셰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주인공이 아니다.


테쿰셰는 오하이오 지역에 있던 쇼니족 추장으로, 1812년 영국과 미국이 전쟁중인 틈에 영국군을 활용하여 인디언 부족들을 통합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노력했던, 당시 인디언 지도자로서는 드문 안목을 가지고 있던 추장이었다. 테쿰셰가 전투에서 사망하는 장면이 그려진 이 그림의 의미는, 인디언 연합국가 건설의 꿈을 꺾음으로써 인디언 영토의 확보가 원활해진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테쿰셰 얘기는 앞으로 그와 관련된 지역을 방문하면서 좀 더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테쿰셰의 전사 장면

19개의 미국의 역사적 장면 속에서 인디언들은 여섯 번 등장하는데, 대부분 백인들을 환영하거나, 아니면 평화롭게 협상을 하는 모습들이다. 미국의 영토 침략에 저항하던 인디언추장(테쿰셰)은 제거되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주연 출연은 백인을 살려주었던 포카혼타스만이 유일하다. ‘유럽인들이 인디언들이 살던 땅을 확보(혹은 약탈)하여 만든 나라’라고 미국을 정의하면 이렇게 역사를 바라보게 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인디언들이 이 땅의 주인이었던 점을 생각할 때 왠지 드는 씁쓸한 생각은 어쩔 수 없다.

포카혼타스가 세례를 받는 장면

로툰다홀의 벽면에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을 표현한 대형 그림 6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세 개의 그림에 인디언이 등장한다. 포카혼타스가 세례를 받는 장면, 콜럼버스가 상륙하는 장면, 그리고 데소토가 미시시피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콜럼버스와 데소토가 나와 있는 그림을 보면, 인디언들이 이들을 극진히 반기는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토니 호르위츠(Tony Horwitz)가 그의 저서에서 왜곡이 심하다고 지적했던 장면이다. 특히 데소토가 미시시피 강을 발견했을 당시, 데소토는 인디언들과의 전투로 많은 병력과 보급품을 잃고 주변의 인디언들의 위협을 피해 몰래 강을 건너는 것을 추진하던 상태이었다. 그림처럼 인디언들이 받들고 환영하는 상황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데소토의 미시시피강 발견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도와 데소토가 각각 미국 남서부와 남동부를 탐사했는데, 코로나도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는 반면, 데소토의 경우 미시시피의 발견과 죽음이라는 두 장면에 등장한다. 왜 그럴까?


코로나도가 탐사한 땅들은 미국이 추후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반면, 데소토가 탐사한 땅들은 미국이 스스로 인디언을 내쫓고 확보한 땅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데소토의 미시시피강 탐사를 해당 지역 원주민이 반기고 섬기는 그림을 통해, 그 때 이미 해당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통치권이 인정된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미시시피강 동부에 거주하던 5대 부족을 강제로 오클라호마로 쫓아낸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조금이나마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의사당의 예술품들을 통해 본 인디언들의 모습은 대부분 유럽인들을 환영하거나, 도와주거나, 평화적으로 땅을 내어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여기에 위협이 되었던 인물은 성공적으로 제거된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모습이었지만,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니 씁쓸하다. 미국에게 위협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같은 국민으로 포용하게 된 인디언의 영웅들도 이곳에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어려웠을까? 이곳에서 보는 미국은 철저하게 백인들의 나라이다.

 

로툰다홀에서 세 번이나 등장하는 인물이 포카혼타스이다.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그리고 벽면 부조에도 존 스미스를 구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정도로 그녀가 부각되는 것이 신기하다.

 포카혼타스가 존 스미스를 구하는 벽면 부조

오늘은 워싱턴을 떠나 뉴욕으로 들어왔다. 중서부의 외진 곳들을 다니다가 동부로 오면서  사람구경을 한다 싶었는데, 맨해탄은 이제 너무 정신이 없다. 적응에 좀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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