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 후 우리는 Heard Museum으로 향했다. 원래 여행계획의 첫 목적지는 피닉스에 인접한 호호캄 문명 유적지였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 중 Snaketown에 있는 이 대규모 유적지를 해당 지역 인디언 부족이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대신 Heard Museum에 원형 복원 모델을 전시하고 있다는 설명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피닉스 시내에 있는 Heard Museum이 첫 방문지가 된 것이다.
호텔을 나서니 열기가 후끈하다. 일기예보를 체크하니 오전 10시 이미 38도, 오후 6시 최고 43도. 거리에는 차만 다닐 뿐 보행자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살아왔던 것일까?
밤 10시인데 41도...
아리조나주는 전체의 28%나 되는 면적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른 주에 비해 상당히 많은 비중이다.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전반적인 환경이 척박한 탓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곳에서는 금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에게 보호구역으로 내준 곳은 대부분 농사가 어려운 지역이었는데, 만약 해당 지역에서 금과 같은 귀한 자원이 발견되면 약속은 금방 뒤집어졌다. 추후 방문할 사우스다코타 지역의 블랙힐즈 등이 그러하다.
Heard Museum은 남서부 지역 인디언들의 예술품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되는 곳으로 입장료가 18불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지역 인디언들을 부족 별로 나누어 이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품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11시부터 진행된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는데 각 부족의 특징과 문화적 특성이 한 번에 쏙 들어온다.
건조한 기후에도 고유한 농법을 이용해 기존의 터전을 지키고 살았던 호피족, 큰 강물 인근으로 이동해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도자기와 보석공예로 유명한 주니족, 사냥 위주의 유목생활을 했던 아파치족, 미국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을 가지고 있고 농사 외에도 양 목축과 직물제품의 예술성으로 유명한 나바호족.
그런데…
박물관을 둘러보고 가이드 투어를 해도 호호캄 유적지 모형에 대한 언급이 없다. 가이드도 안내 데스크 담당자도 처음 들어본단다.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여주니 잘 모르는 내용이긴 한데 아마도 수장고에 있을 수 있겠으나 지금은 볼 수 없단다. 내가 원형 복원 모델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유적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그 원래의 모습을 그려 내기가 어렵기에 상상력에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인데 수포로 돌아갔다. 첫 번째 방문지부터 심상치 않다. 갑자기 위키피디아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일단 내일 유적지를 찾아 가보자.
뮤지엄 2층 인디언 스쿨 관련 전시는 예상외로 볼 만했다.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에 몰아 넣고 난 뒤,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농사나 사냥으로 의식주를 해결해 왔던 인디언들을 사냥감도 없고 농사에도 적합하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면서 이들을 미국 정부가 책임져야 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미국이 선택한 해결책은, 인디언들이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에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체제로 흡수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디언들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내 인디언 전통과 그들의 언어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장교 프랫(Pratt)은 군대 병영으로 쓰이다 버려진 장소를 활용하여 1879년에 칼라일 인디언 기숙학교를 세우고 이 후 전국 곳곳에 인디언 기숙학교가 설립된다.
처음에는 인디언 부족 추장들을 찾아가 선진 교육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반 강제적으로 아이들을 징집하기 시작했다. 기숙학교에 들어오면 아이들은 긴 머리를 자르고 백인의 옷을 입어야 했으며, 인디언 말은 사용 금지되고 영어만이 허용되었다. 인디언의 모든 풍습은 미개한 것으로 교육받고 선진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기존 인디언 문화를 배척함으로써 인디언 아이들을 새로운 미국 시민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던 것이다. 자료들을 둘러보면서 머리속에 백년전 한반도 모습이 오버랩 된다.
호피부족의 경우,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보내라는 미국정부의 권고에 추장과 리더들이 따르지 않자, 정부는 이들을 체포해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인디언 학교들의 운영실태는 부실했고, 많은 아이들이 비위생적인 환경과 가족과 격리된 낯선 환경에서의 정신적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실업교육이라는 명목하에 기숙학교 학생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전시물을 보던 아내가 숙연해진다. ‘정말 슬픈 일들이 많이 있었네.’ 한 명의 독실한 인디언 교도가 탄생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묵던 호텔에서 Heart Museum으로 가는 길에 Indian School Road를 지나간다. 피닉스 시내에서는 제법 큰 대로이다. 피닉스 인디언 스쿨도 당시 학생 노동력 착취로 악명 높던 곳 중 하나였다.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그 학교의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더운 곳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피닉스에서 20년 가까이 거주한 친구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너희가 제일 더울 때 온 거야. 지난 주 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어쨌건 여름 몇 달만 견디면 나머지 계절은 아주 괜찮아. 지금 같은 한 여름은 이 곳 주민들도 다른 곳으로 피서를 떠나는 때이지.’ 때 맞춰 잘 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