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정에 넣어두었던 아파치 보호구역에서의 골프를 취소했기에 충분히 늦잠을 잤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방문한 지역에 대한 글을 쓰려다 보면 추가로 확인할 것들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충 만들었던 다음날 일정도 구체화해야 하고, 이틀 뒤 숙소도 찾아 예약해야 한다(일정이 유동적이라 숙소 예약은 이틀씩만 하고 있다).
오늘 방문지는 산카를로스 아파치 보호구역의 중심인 Peridot에 위치한 San Carlos Apache Culture Center이다. 예전에 Peridot 인디언 교역소였던 허름한 건물에는 아파치부족의 건국설화, 풍속, 부족역사 및 보호구역 수용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사진, 모형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파치 부족이 500년 전쯤 북쪽에서 이주해왔다는 학계의 정설과 지금의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수 천 년간 살았다는 부족 선조들의 이야기를 모두 소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파치족은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세를 탄 인디언 부족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미군과 싸운 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매우 용맹한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아파치족은 나바호족과 함께 아타바스칸(Athabaskan)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해안, 미국 북서부 해안에 거주하는 인디언들과 같은 계통이다. 이러한 언어 및 풍습 등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학계에서는 아파치족과 나바호족이 1200-1400년대에 북서부에서 남서부로 이주해 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당시 남서부에서 마을을 이루며 농사를 짓고 살았던 푸에블로 인디언들과 달리 아파치족은 산지에 거주하며 사냥위주의 생활을 영위했다. 그리고 인근 푸에블로 인디언 마을을 습격하여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도 했다. 아파치 부족의 푸에블로 인디언 습격은 당시 남서부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에게도 골치거리였는데,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스페인이 자신들에게 세금까지 걷어 가면서도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며 이들의 통치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와의 전쟁 승리로 남서부 지역을 차지한 미국에게도 이러한 아파치족의 호전성은 이슈가 되었고, 미국 정착민들과의 갈등 해결을 위해 몇 개의 보호구역을 만들어 아파치 부족들을 수용(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주민들에 의한 아파치 부족 아녀자 학살사건)하려 한다. 이 중 대표적인 보호구역이 지금 내가 방문한 산카를로스 보호구역이었고, 이곳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일부 아파치 추장들이 부족민들을 이끌고 보호구역을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들 중 마지막까지 붙잡히지 않고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한 아파치 전투 추장의 이름이 바로 제로니모(Geronimo)였고, 이러한 이야기를 토대로 아파치족은 가장 용맹한 인디언 부족의 상징 (미군 최정예 공격 헬기의 이름이 아파치임), 제로니모는 미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인물의 상징이 되었다(911 테러 이후 체포작전을 벌인 오사마 빈 라덴의 암호명이 제로니모였음).
박물관을 나오며 직원에게 ‘이곳 주민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며 사는지’ 물어 보았다. 이곳에는 부족에서 운영하는 사업체나 기관들로 인해 일자리가 좀 있는 편이란다. 그리고 마침 오늘이 부족민들에게 부족정부가 분배금을 지급하는 날인데, 나이 불문하고 모든 주민들이 인당 500불씩 받는다고 한다. 지급되는 날은 매달이나 매분기와 같이 일정하지는 않고 부족정부에서 사전에 고지하는 스케줄에 따른다고 했다. 본인 생각으로는 미국정부로부터 수령한 합의금(settlement)이 재원이 아닐까 한다고. 물론 여기에 부족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업체로부터의 수익금이 더해진 것이리라.
오늘 주민들에게 인당 500불씩 지급이 되었다면 이들은 이를 어떻게 활용할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카를로스 보호구역을 떠나기 전에 아파치 카지노를 다시 들러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주말이었던 어제 저녁보다 더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분배금의 일부는 부족 카지노로 돌아가고, 다시 부족사업체 배당금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진다. 나름의 자체적인 생태계가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다음 행선지는 200마일 (320Km) 떨어져 있는 주니족(Zuni) 보호구역이다. 보호구역 내의 주니부족 박물관이 오후 5시까지 개관이라 오후 4시경 도착 예정으로 출발했는데 내비게이션이 오후 5시 도착을 알린다. 예상보다 한 시간 가량 더 걸리는 것으로 나와 의아해하던 중에 해답을 찾았다. 주니 보호구역이 있는 뉴멕시코 주는 이곳 아리조나주보다 한 시간 시간대가 빠른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뮤지엄 방문은 내일로 미루고 숙소 체크인만 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산카를로스 보호구역을 떠나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숲이 많아지더니 매우 험준한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화이트 마운틴 산지였다. 깊은 계곡으로는 솔트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산카를로스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도로 표지판은 우리가 화이트마운틴 아파치 보호구역 (Fort Apache 보호구역이라고도 함)으로 들어섬을 알린다.
인접해 있는 두 개의 아파치 보호구역의 자연환경이 많이 달라 찾아보니 재미있는 사연이 있었다. 미군들이 아파치 부족들을 붙잡아 보호구역에 수용시키려고 이곳을 찾아왔을 때, 화이트 마운틴 아파치 추장은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원래 살던 지역에 눌러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이트 마운틴 부족의 미군지원 내용에는, 다른 아파치 부족과의 전투를 위한 요새를 자신들의 마을에 만들고, 심지어는 아파치 전쟁에 미군측의 용병(정찰병)으로 자신들의 부족민을 차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의 보호구역은 다른 아파치 부족과 달리 천혜의 자연환경을 통한 관광사업 (스키장도 포함) 및 목재업까지도 영위하게 되었다. 역사는 참... 그렇다.
화이트 마운틴을 굽이쳐 흐르는 솔트강
화이트 마운틴을 벗어나면서 건조한 초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 장면에서 1540년 멕시코를 출발해서 미국 남서부로 진출했던 코로나도 원정대가 떠오른다. 1528년 플로리다에 상륙했던 스페인 탐사대의 생존자 몇 명이 미국 남해안을 가로질러 8년 만에(1536년) 멕시코로 귀환한다. 이들은 미 대륙 어느 지역엔가 스페인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황금의 도시 (Chibola)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이들의 말을 믿고 멕시코 총독이 파견한 것이 바로 코로나도(Coronado) 원정대이다.
그의 부대도 우리가 보았던 소노란 사막을 건너고, 험준한 높은 산맥을 넘고, 초원을 지나 주니(Zuni)마을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 시속 100킬로 이상 달리는 차를 타고 지나지만, 당시 코로나도 부대는 대부분 도보로, 그리고 완전 군장을 한 채로 이 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 고생이 어떠했을지는 솔직히 가늠이 잘 안 된다. 코로나도의 이야기는 내일 좀 더 다루기로 한다.
화이트 산지를 지나면서부터 핸드폰 로밍 신호가 끊어졌다. 산을 내려가서 도시가 나오면 곧 잡히겠지 했는데, 주니 보호구역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잡히지 않는다. 점심을 먹었던 Show Low 라는 곳은 스타벅스도 있던 나름 큰 도시였는데, 로밍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니… 이로 인해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통한 목적지 검색도 먹통이 되었다. 그래도 주니마을에 들어가면 숙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의 분위기는 허름하다. 아내는 어제와 같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허름한 분위기는 슬럼을 연상시키고, 범죄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더구나 우리는 모두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낯선 이방인. 마을의 이색적인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찰나에 도로의 경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허가받지 않은 사진 촬영금지. 허가에 관한 사항은 Visitor Center에 문의. 이미 Visitor Center의 문은 닫혀있다.
마을의 끝에서 끝까지 왕복을 해도 주니마을의 유일한 숙소라는 Halona Inn의 간판을 찾을 수가 없다. 길가 상점에 물어보고 나서야 골목으로 들어가서 겨우 찾아냈다. 이 숙소는 1층에 4개, 2층에 1개의 방을 보유한 Bed & Breakfast(일반 집을 활용하여 민박객실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숙소)이다. 겉은 허름했는데, 내부는 나름 깔끔하고 아기자기하다.
이곳에 외지인이라곤 우리밖에 없다는 점이 아내의 불안요소였는데, 숙소에 우리와 같이 체크인하는 다른 ‘외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계 미국인 카즈와 이브라는 금발 여인 커플이었는데, LA에서 산타페로 여행하는 도중에 들렀단다. 이곳에서 2박을 할 예정이라고. 지난 봄에 이곳을 방문한 친구에게서 소개받았다고 한다.
여기 오기 전에 들른 캐년드쉐이(Canyon de Chelly)에서 알게 된 슬픈 사연으로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나도 그곳을 방문할 예정(Day6)이며, 인디언 관련 지역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하니 꽤 놀란 눈치이다. ‘어떻게 인디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이 대답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보고 운디드니(Wounded Knee)에는 꼭 가보라고 한다. 정말 슬픈 곳이라고. 물론 가볼 예정이다. 시간은 지금부터 한 달여 후(Day36)가 되겠지만.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이곳 주니 인디언들과 아파치 인디언들의 차이에 대해 아내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곳 사람들이 좀 더 체구가 작고, 순박한 모습이란다. 주니족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고 아파치족은 사냥과 습격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체격조건이 그렇게 변한 것인지, 아니면 체격조건이 그렇다 보니 그에 적합한 생활습관을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우리가 해당 부족의 차이점을 인지한 채로 보다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은 안내센터에 들러 사진 찍는 것에 대한 문의부터 해봐야겠다. 주니 부족 박물관 방문 후에는 나바호 부족 보호구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나저나 핸드폰 로밍은 어디쯤 가야 가능할 것인가. 우리 일정상 대도시(앨버커키)는 5일 후에나 지나게 되는데, 그 때까지 로밍이 잡히지 않으면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내비게이션을 구글맵에 의존하고 있기에. 딸 아이의 조언대로 당분간은 아침 숙소 체크아웃 전에 목적지 맵을 별도로 저장해 두고 활용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