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흙집 마을이 황금의 도시로 불린 사연

주니족 보호구역, 나바호족 그리고 유럽인과 인디언의 첫 만남

by Jaeho Lee


숙소 현관에 붙어 있는 한글 포스터를 발견했다. ‘아메리칸 인디언 예술인단 최초의 아시아 순회공연’이 부산문화회관 중강당에서 5월 15일에 열린다는 내용이다(연도는 나와있지 않다). 숙소 직원에게 이 포스터의 의미를 아는지 물어보니 모른단다. 아마도 공연 예술인단에 주니족 누군가가 참여했던 것 같고 기념품으로 챙겨온 것을 붙여둔 듯 하다.

주니 방문객 센터로 가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의 투어 가이드 션이 주니족 탄생설화와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Sky Father와 Earth Mother의 연결로 인간의 원형이 탄생하고, 그 원형이 Morning star와 evening star의 도움으로 땅의 갈라진 틈을 통해(그랜드 캐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허물을 벗고 인간이 되는 이야기. 각각의 알에서 태어난 새의 인도에 따라 여러 부족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이야기(앵무새를 따라간 부족은 남미의 아즈텍과 잉카가 되었고, 까마귀를 따라간 부족은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고).


결국은 현재의 주니마을에 위치한 Middle place가 세상의 중심으로 결정되어 이곳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단다. 궁극적으로 차코캐년, 메사베르데 등지에서 살던 친척 부족들도 모두 이곳 주니 땅으로 모여 함께 살기로 해서 그들의 마을들은 비워지게 되었다고.

주니마을 도심 전경

이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는 실상 역사학자들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한 때 차코캐년, 메사베르데 등에서 번성했던 아나사지(Anasazi) 문명의 후손들이 15세기경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살던 곳을 등지고 주니를 비롯한 리오그란데 인근의 푸에블로 마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부분은 향후 해당 지역을 방문하면서 좀 더 다룰 예정이다.


주니 부족은 한 번도 강제 이주의 경험이 없이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그대로 보호구역을 인정받고 살고 있는 몇 안 되는 운 좋은 인디언 부족이다. 이는 이들 거주지역이 미국인들 입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부족의 성향 또한 온순해서 인근 백인 정착민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니마을은 ‘First Contact’의 소재이기도 하다.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들어가보자. 유럽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간의 최초의 만남을 어떤 사건으로 보느냐에 따라 First Contact의 정의가 달라지는데, 문서상으로만 보면 서기 1000년경 바이킹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만남이 최초의 기록이다.


바이킹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다가 중세 수도사들이 기록한 바이킹 전설에 의하면, 985년 노르웨이에서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아이슬랜드로 도망친 Eirik이라는 사람이 그린랜드를 개척하고, 그 아들들이 서쪽으로 이동해서 포도가 자라는 땅(Vinland)을 발견하고 정착해서 지내다가 원주민과의 지속적인 충돌 끝에 철수했다고 한다.


이같은 바이킹 전설에는 트롤 같은 괴물도 등장하는 등 신빙성에 의문이 있던 중, 1961년 노르웨이 학자 부부가 고대 바이킹들의 항해 경로를 따라 캐나다 북동쪽 뉴펀들랜드 끝 지역 L’Anse aux Meadows라는 곳에서 고대 유적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8년간의 발굴작업 끝에 이것이 서기 1000년경에 건설된 바이킹 유적임이 확인된다.


인류가 5만년전에 아프리카를 떠나서 일부는 유럽 북쪽으로 흘러갔고, 또 다른 일부는 아시아 동북쪽으로 이동해서 알래스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갔는데 이들이 뉴펀들랜드에서 수 만년만의 재회를 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재회 장면은 전투였고, 미대륙 원주민과 유럽 방문객의 첫 번째 대결은 홈팀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이 바이킹 전설을 논외로 하면,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최초 접촉은 1492년 콜럼버스의 서인도 제도 항해에서 발생한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스페인은 매우 적극적으로 신세계 식민지 개척에 나서서 멕시코와 페루 등지를 정복한다. 현재 미국 영토까지의 진출은 1540년에서야 진행되는데, 코로나도(Coronado) 원정대가 멕시코에서 북상하고, 데소토(De Soto)의 원정대는 플로리다로 상륙한다.


코로나도 원정대의 출발에 앞서 당시 멕시코 총독은 1538년 정찰대를 파견하는데, 이들이 전설상의 황금도시 치볼라(Cibola)를 찾아 도착한 곳이 바로 주니부족 거주지이다. 당시 주니부족은 진흙으로 다층 주택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정찰대가 도착한 시간이 마침 해질 무렵이라 멀리서 본 마을은 황금빛처럼 반짝였다고 한다. 그런데 선발대로 마을을 향해 갔던 일행 중에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사상자가 생기자 정찰대 리더 Niza는 서둘러 멕시코로 귀환하여 금의 도시 치볼라를 눈으로 확인하였음을 총독에게 보고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거의 2천명 규모에 달하는 당시 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코로나도 원정대가 치볼라 정복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주니족은 대규모 침입자들의 접근에 노인과 아녀자들을 우선 피신시키고 전사들이 맞서 싸우지만, 말과 철갑 무장, 그리고 석궁과 화승총을 지닌 스페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원주민들은 퇴각하고 코로나도는 주니마을로 입성하지만, 소문과 달리 황금은 커녕 금속조각 하나 제대로 없는 그저 가난한 마을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하고 만다.


주니 마을들을 돌며 휴식을 취하고 부족했던 식량을 탈취한 코로나도는, 주니지역 원주민에게 포로로 잡혀있던 다른 부족 원주민으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황금이 가득하다는 얘기를 접한다. 그리고 그를 앞세워 또 다른 황금도시인 퀴비라(Quivira)를 찾아 머나먼 캔자스까지 정복여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이 퀴비라와 관련된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코로나도 원정대 얘기는 to be continued…


마을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가이드 션이 멀리 보이는 메사(Mesa – 정상부분이 테이블처럼 평평하게 만들어진 산)를 가리킨다. Dowa Yalanne (옥수수산)이라 불리는데 마을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망치는 곳이란다. 코로나도 부대가 접근했을 때 노인과 아녀자가 그곳으로 피했었고, 1680년 푸에블로 반란 이후에 스페인군의 보복을 우려해서 대피해 지냈던 곳이란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긴 사다리가 필요한데, 주민들이 모두 정상으로 대피한 이후 사다리를 걷어 올리면 침입자들의 공격을 막아내기 쉽고, 정상부근에는 식수도 구할 수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한다.

마을의 중앙에는 Old Zuni Mission이라고 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주니부족을 정복하고 세운 교회가 있는데 (사실 노동력은 주니부족민이 제공했으니 주니족이 세운 교회라고 해야 할 듯), 푸에블로 반란 시에 파괴되었다가 스페인 인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재건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강압에도 주니 부족민들은 전통신앙을 바꾸지 않았고, 이후 교회는 거의 버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주니족 내부에서 이 교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재건파와 제거파 간에 논란이 많았는데, 현재 부족 리더십은 재건쪽으로 방향을 잡고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교회가 버려지게 된 사연에 대해 션이 재미있는 얘기를 말해준다. 교회 관리를 주니부족이 맡고 있던 기간에 이들이 교회 내부에 자신 부족들의 전통적인 문양과 의식 모습을 그려 놓았고, 이로 인해 카톨릭에서 이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고 관리를 거부했단다. 따라서 교회를 복구하더라도 기독교적 용도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마을 중앙에는 건물들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광장이 있는데, 이곳을 Hanola Idiwan’a (중간계)라고 부른다. 주니족 탄생 설화에 의하면 지상으로 올라온 인간들이 초대형 물방개(water bug)의 안내에 따라 세상의 중심을 찾아 다니다가 마침내 발견한 지점이 바로 이곳이란다. 부족의 모든 중요한 세러모니는 항상 이곳에서 펼쳐진다고. 그런데 그 광장의 규모가 예상보다 꽤 작은 편이다.

Hinola Idiwan'a

마을 곳곳에는 버려진 집이나 공터가 보이는데, 빈 땅은 아니고 다 주인들이 있단다. 이 마을의 중심은 사실 땅값이 비싼 곳이란다. 그럼에도 비워져 있는 것은 주인이 집 지을 돈이 없거나 여자들간에 분쟁이 있는 상황일 것이라고. 다른 많은 인디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주니족도 모계혈통을 따른다. 즉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들이 처가에 들어가 살게 되고, 모든 재산과 혈통은 여자 쪽으로 승계되는 것이다.

주니 마을 풍경

주니족은 아파치족과 달리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이 따로 없단다. 많은 주민들의 주소득은 도자기와 보석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고, 그 밖에 부족 정부내의 일자리 혹은 보호구역 밖의 일자리를 통해 소득을 올리고 있단다. 주니 마을 기념품 가게를 들러보았는데, 우리는 딱히 살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다른 고객 층이 존재하는 듯 하다. 실력 있는 장인들 작품은 상인들이 대놓고 물건을 받아간단다. 어쨌건 전반적인 마을 분위기는 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카지노도 없고.

주니족 박물관

션은 가이드를 하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주니족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연방정부의 지원 하에 2004년 주니마을의 발굴작업을 직접 진행한 바 있다. 현재 주니마을 중심부를 보면 언덕처럼 솟아 있는 곳들이 보이는데, 이는 기존 주택이 부실해지면 이를 허물고 새로 짓는 대신 그 위에 흙을 덮고 새로 집을 올리는 방식으로 건축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있는 집을 허물고 그 밑을 파보면 층층이 기존 집들의 구조가 발견된다고 한다.


자신이 발굴했던 집의 경우 그 밑으로 5층까지 발굴이 되었단다. 그 밑으로도 두 개 층 정도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기술상의 이유로 추가 발굴은 할 수 없었다고. 로마 개발을 위해 고대 로마 유적을 덮어버리고 그 위에 대로와 광장을 건설했던 무솔리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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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이 모든 질문을 친절하게 다 받아 주니 그 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계속 묻게 된다. 다소 민감할 수 있으니 눈치를 봐 가면서. 첫 번째 질문. 주니족에게 아파치나 나바호는 어떤 존재인가? 오래도록 자신들을 습격하고 괴롭혔던 부족들이라 역사적으로 적(enemy)들이란다. 하지만 오늘날 와서야 굳이 적대시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그냥 잘 어울려 지낸단다. 어제 아파치 보호구역에서 아파치 부족 티셔츠를 샀는데 그 옷을 입고 오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이들에게 아파치는 우리 민족에게 왜구와 같은 느낌일까?

두 번째 질문. 학자들의 견해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시베리아 쪽에서 1-2만년 전에 알래스카를 거쳐 이동해왔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션은 자신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부족의 탄생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은 그랜드 캐년에서 나온 민족으로 생각한단다. 그러면서, 아시아에서 건너온 자들은 아마도 나바호와 아파치일 것이라고 한다. 외견상 주니족과 아파치, 나바호가 구분되느냐는 질문에 션은 당연히 구분된단다. 이들이 체격적으로 좀 더 크고, 좀 더 검은 피부색이라고.


인디언과 한국인이 오래전에 시베리아에서 같이 살던 친척일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건네서 친근감을 가져보려 했는데 안 꺼내길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주니족 투어가이드 션

주니 보호구역을 떠나 이웃해 있는 나바호 보호구역으로 이동한다. 첫 번째 행선지는 윈도우락(Window Rock)에 위치한 나바호 네이션 뮤지엄이다.

나바호족은 미국에서 가장 큰 면적의 보호구역을 가지고 있는데, 그 면적은 71,000평방 킬로미터로 남한 면적의 70%에 달한다. 부족 인구는 2016년 기준 35만명이다. 나바호 박물관은 초라한 느낌을 주었던 산칼로스 아파치 박물관이나 주니 박물관과 달리 외관부터 근사하다.


건물 내부에는 도서관과 컨퍼런스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박물관은 예상과 달리, 나바호 탄생설화 등을 설명하는 전시관과 1868년에 체결된 조약에 관련한 전시관만 마련되어 있다. 나바호 역사에 대한 전시가 따로 없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나바호족 역사관련 내용은 너무 많아서 박물관에 다 수용할 수가 없고 그런 건 자료를 찾아보는 편이 좋단다. 글쎄, 난 기획력과 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나바호 보호구역 반대편 쪽 튜바시티(Tuba City)에 익스플로러 나바호 뮤지엄이 있는데 그곳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다만, 현재 계획한 루트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어 방문계획에서 제외한 곳이다.


미국은 1862년에 나바호족을 이들의 거주지에서 480킬로나 떨어져있는 뉴멕시코주 보스크 리돈도(Bosque Redondo)라는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하고, 이에 저항하는 나바호족을 황폐화 전술로 굴복시켜가며 1864년부터 강제 이주를 시킨다. Long Walk로 알려진 이 강제 이주과정과 보스크 리돈도 보호구역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나바호족이 생명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이 참상이 알려지게 되면서 1868년에 미국 정부는 나바호족에게 원래 거주지역으로의 귀환을 허용한다.

왼쪽 위가 원래 나바호족 거주지, 오른쪽 아래가 이들이 강제 이주당한 지역

오늘 주니마을에서 션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얘기가 너무 길어진 듯하다. 블로그는 책을 쓰는 게 아니니 짧은 게 핵심이라고 아내가 주의를 준다. 욕심이 과하면 안 되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내일 캐년드쉐이(Canyon de Chelly)를 방문할 계획이니 나바호 얘기는 내일로 미루자. 어제 숙소에서 만났던 이브가 방문하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얘기했던 바로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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