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7 그림과 건축물로 전해지는 인디언들의 이야기

뉴스페이퍼락(Newspaper Rock),메사베르데(Mesa Verde)

by Jaeho Lee

뉴스페이퍼락은 유타주 캐년랜즈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211번 도로변에 위치해 있는데, 어제 숙소였던 몬티첼로에서 약 40분 거리이다. 마치 검은 코팅이 입혀진 것 같은 암벽 한 면에 수많은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약 2천년전부터 원주민들이 이곳에 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바호족은 이 바위를 세하네(Tse Hane)라고 불렀다. ‘이야기 하는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림 내용은 사람과 동물, 그리고 기하학적 문양 등 다양한데, 어떤 문양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애매하기도 하고, 손발 그림은 손가락, 발가락 개수가 4개 혹은 6개인 경우가 많아 그 의미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말을 탄 사람의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그림은 16세기 이후의 것으로 보인다 (어제 배운 것 바로 써먹는다!).

암벽면의 검은 코팅은 빗물을 머금은 사암(sand stone) 표면에 박테리아가 서식하면서 남겨진 망간철 성분이라고 하는데, 뉴스페이퍼락은 위에 지붕역할을 하는 큰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 암벽 그림들을 2천년이라는 세월 동안 보존해 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여기에 이런 그림들을 그려 넣었던 것일까? 그 동기와 그림의 의미는 모두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뉴스페이퍼락을 보며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울주군의 암각화가 떠올랐다. 댐 건설로 인해 물에 잠겼다 빠졌다를 반복하고 있어 훼손이 우려된다는데 조속히 해결책이 나왔으면 한다.


다음 목적지인 메사베르데를 향해 우리는 유타주에서 콜로라도주로 넘어간다. 지난 금요일(12일)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이후 다섯 번째 주(네바다, 아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콜로라도)이다.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황량한 풍경과 달리 유타와 콜로라도의 풍경은 초록빛이다. 숲과 초원이 많아서다. 황량한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에는 많은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고, 초록빛 유타와 콜로라도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씁쓸하다.


콜로라도에 들어서니 Cortez라는 제법 규모가 큰 도시가 나온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Yelp를 검색해 타이식당을 찾아냈다. 14일에 피닉스를 떠난 이후 나흘 만에 만나는 동양음식이다. 한식은 아니지만 동양식만으로도 그간 음식의 허전함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메사베르데 산의 전경

메사베르데(Mesa Verde)는 콜로라도 고원지대에서도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으로 높이가 2600미터에 이른다. Mesa Verde는 스페인어로 초록테이블이라는 의미인데, 바위산의 정상부분이 평평하고 측면부분이 수직으로 깎여 있어 테이블 모양을 이루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평평한 산 정상에는 초록 숲과 수풀이 우거져있다.


메사베르데에는 기원후 약 55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세자매(three sisters)라고 불리는 남서부 지역의 3대 농작물인 옥수수, 콩, 호박 재배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거의 700년간을 산 정상부에서 지내던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1100년대 후반부터 절벽틈(alcove)에 주거지를 짓고 거주하기 시작하는데, 현재 메사베르데 국립공원 지역에만 600개의 절벽주거지(Cliff dwelling)가 산재해 있다고 한다. 비와 더위, 추위를 피하기에 좋은 환경을 찾아서일 수도 있고, 외적으로부터의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나사지 문명의 중심부였던 차코캐년(Chaco Canyon)이 12세기에 버려지게 되는데, 차코캐년을 떠난 이주민들이 이곳 메사베르데로 옮겨와서 정착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이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로 인해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절벽건축물들이 시도되었던 것은 아닐까?


특이한 것은 이러한 절벽주거지들은 대부분 1190년-1280년 사이에 건축되었는데, 1200년대 후반부터 이들이 다시 이곳 메사베르데를 떠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절벽 주거지들은 약 100년간만 이용되었다가 버려지게 된 것이다.


이곳을 떠난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아리조나와 뉴멕시코 지역의 리오그란데 강가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당 지역에 있는 다수의 푸에블로 주민들(Hopi, Zuni, Acoma 등)이 이들의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이 100년만에 메사베르데를 떠난 이유로는 극심한 가뭄, 과도한 농작과 사냥으로 인한 토양 및 동식물 자원의 고갈, 혹은 내부적 갈등이나 사회적 이슈 등이 추론되고 있다.

미국 서남부 인디언 문명 지도

이곳 절벽주거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Cliff Palace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국립공원 가이드(Park ranger)가 안내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해야만 하는데, 사전 예약은 불가능하고 직접 안내소를 방문해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매표소에 가니 오후 4시 투어 1장, 오후 4시 30분 투어 1장, 그리고 5시 30분 이후론 티켓이 많이 남아있다. 지금 시간이 오후 2시. 오늘 묵을 숙소까지 2시간을 더 가야 하는데 5시 30분 투어를 참가할 경우 숙소 체크인이 너무 늦어진다(블로그에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기엔 아쉽다(사실 이곳은 1996년에 와봤기에 옛 기억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생생하지 않다). 일단 한 장씩 남아있는 4시와 4시 30분 티켓을 구매한다. 티켓을 판매하는 직원이 좀 의아해하는 눈치이다.


우리의 플랜 A는 4시 투어에 같이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한 명을 끼워 주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플랜 B는 내가 먼저 4시 투어를 참가한 후, 아내의 4시30분 투어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오늘 여행에 대한 글쓰기를 착수하는 것이다. 글 쓰는 일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투입되는 시간 때문에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생이다. 원저자의 초안은 블로그 등록 전에 감수자의 리뷰과정을 매일 거친다.


투어 가이드를 기다리면서 한가지 룰을 만들었다. 가이드가 남자이면 아내가, 여자이면 내가 부탁하는 것이다. 소위 미인계, 미남계를 활용하는 전략인데, 이게 먹히지 않으면 미인이나 미남이 아닌 것으로…


가이드가 다가오는데…


여.자.다. 미남이 나설 차례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니,잠깐 머뭇거리는듯 하다가 뭐 한 명쯤이야 괜찮단다. 아내에게 미남계가 통했다고 으쓱해 하니, 그게 아니라 본인이 옆에서 간절한 표정을 지어서 성공한 것이란다. 아무래도 좋다. 플랜 A가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시도를 해보라고 우리에게 숙제를 준 것 같다. 어떻게 30분 간격으로 티켓이 한 장씩만 우리 앞에 남아있단 말인가?


주차장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Cliff Palace에 도착한다. 멀리서 보이는 주거유적의 모습에 사람들은 ‘와우’ 탄성을 보낸다. 가이드가 모든 관광객들의 첫 번째 반응이라고 얘기한다. 약 550평정도 되는 공간에 150개의 방과 75개의 오픈공간 그리고 21개의 키바(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는 원형 거주공간)가 빽빽하게 건축되어 있다.


오랜 세월동안 버려져 있었고 19세기말 이후로는 도굴꾼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남아있는 건축물의 형태는 직선과 원형이 혼재되어 있고, 흙벽돌을 쌓아 올린 형태도 다양해서 여러 시기에 걸쳐 건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타워형 건물은 높이가 5층이고 절벽틈 윗부분 천장 쪽으로도 별도의 공간이 건축되어 있다. 누군가가 펜트하우스라고 얘기하는데, 어떻게 그곳에 벽돌을 쌓아 올렸을지 궁금하다. 이 공간에는 약 100-120명 정도가 함께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사베르데 국립공원내 Chapin Mesa Archeological Museum에는 이곳에 거주했던 고대인들과 아나사지인들의 유물과 생활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간 다녔던 박물관 중에 그 내용이 가장 알차다. 박물관 전시물만으로도 남서부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아온 모습이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주거건축물 변천 모형

이렇게 여행 7일차를 마무리하고 내일은 아나사지 문명의 중심 유적지인 차코캐년과 스페인인들에게 부족 성인 남자들 모두 발목이 잘리는 만행을 당했던 아코마부족 마을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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