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어떻게 농사는 척박한 곳에서 시작되었는가?

Casa Grande 호호캄 문명 유적지

by Jaeho Lee

열풍 속에서 골프를 마치고 우리는 Hohokam Pima National Monument를 찾아 갔다. Snaketown에 위치한 이 유적지는 호호캄 문명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인데, 1930년대와 1960년대 두 차례 발굴 작업 후, 유적을 다시 흙으로 덮고 추후 재조사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원형 모형이 Heard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는 위키피디아 자료를 믿고 갔다가 허탕친 얘기는 어제 한 바 있다.


이 유적지는 힐라강(Gila River)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당 부족이 일반인의 유적지 접근을 불허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구글맵을 검색해서 굳이 찾아간 것은 현 상황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물론 다음 행선지인 Casa Grande Ruin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유도 있다.


피닉스 남쪽의 챈들러라는 마을을 벗어나면서 구글맵이 안내하는 길은 오가는 차량 한 대 없는 비포장 도로로 바뀐다. 그렇게 10여킬로를 더 달리니 화면에 목적지 도착이 뜬다. 주위를 둘러보니 황무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지금까지 경치와 달리 이곳 저곳 나즈막한 둔덕 같은 것들이 보인다. 아마도 발굴되었던 유적들을 재조사 결정 후 다시 덮어둔 곳이리라. 이쯤에서 스네이크타운 유적지 방문은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가까운 둔덕은 걸어가면 수 분내에 도달할 수 있을 듯 보였지만 (구글맵도 ‘여기서부터 도보로 이동’ 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굳이 무리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했다. 지역 이름이 스네이크타운이라는데…

다음 행선지인 Casa Grande Ruins로 향하는 길도 온통 황량하다. 미국이란 나라를 놓고 보면, 중부와 동부의 비옥한 지역을 제쳐두고 이곳 아리조나의 황량한 땅에서 처음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균,쇠’의 이론이 도움이 될 듯하다.


‘어떻게 해서 문명이 특정 지역에서 다른 지역보다 앞서 발달하고, 다른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파고 들어가는 그의 연구 결과는, ‘문명이 앞서 발달한 지역의 경우, 경작 가능한 야생 작물과 가축화 가능한 야생 동물이 인근에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이를 아메리카 대륙에 적용시켜 보면, 원주민들의 3대 작물이었던 옥수수, 호박, 콩의 야생종이 멕시코 인근에 자생하고 있었고,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이를 작물화 한 이후 소노란(Sonoran) 사막 건너편의 인디언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노란 사막에 호호캄 문명을 만든 이들은 대단한 집념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일년에 비가 몇 차례 오지 않는 건조기후 지대이지만, 이들은 인근에 흐르는 힐라강과 솔트강 주위로 관개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영위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연장이라고는 나무막대기와 돌멩이 밖에 없던 사람들이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낸 수로는 평균적으로 폭 9미터, 깊이 3미터에 총 길이는 16킬로에 이른다고 한다.


카사그란데(Casa Grande) 유적은 국립공원관리국(NPS)에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당시 원주민은 컬리체(caliche)라는 점토를 층층이 쌓아 5층 건물을 만들었고, 이 유적이 지금까지 보존 되고 있는 것이다.


1694년 이곳을 지나던 스페인 수도사의 기록이 이 건물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인데, 그가 붙인 이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Case Grande는 스페인어로 큰 집이라는 뜻). 이 후 여행객들이 건물 벽에 글자를 새기는 등 훼손이 되자 1892년 미국 최초의 고고학 유적지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17세기 스페인 수도사가 발견했을 당시 이 건물은 버려진 상황이었는데, 연대기 조사에 따르면, 이 건물과 인근 마을은 1200-1300년 경에 건축되고 사용되다가 1450년경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적지 안내센터에는 이곳 주민들이 왜 주거지를 떠났는가에 대한 여러 가설들(대홍수로 인한 수로시스템 파괴, 대가뭄,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반란, 타부족의 침입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진짜 이유는 그 어느 것도 아닐 수도, 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는 산카를로스(San Carlos) 아파치 보호구역이다. 인디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호구역을 들어가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는 아파치 인디언들이 아파치 골드 카지노와 골프장 그리고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다수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고, 이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인디언 보호구역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째서 그 많은 인디언들이 카지노를 운영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기회에 따로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카사그란데 유적지에서 산카를로스 보호구역을 향해 가면서 지형은 엄청난 크기의 선인장이 곳곳에 자라고 있는 평탄한 건조지형을 벗어나 높은 산지로 바뀐다.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녹색 식물들이 눈에 띈다. 도로 이정표는 우리가 틴토(Tinto) 국유림으로 들어섰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높은 산지를 굽이굽이 돌아내려 가면서 눈앞에 다시 광활한 황야가 펼쳐진다. ‘혹시나’ 하며 가다 보니 ‘역시나’ 였다. 국유림의 녹색 식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산카를로스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섬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이 나쁜 놈들…

미국이 서부를 침탈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디언과의 전쟁은 공식적으로 1886년에 종료하게 되는데, 그 사건이 바로 아파치족 전투 추장이었던 제로니모의 투항이었다. 제로니모와 그가 이끄는 아파치족은 바로 이 산카를로스 보호구역으로의 이주를 거부하며 쫓기는 과정에서 총을 들었던 인디언들이었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광활하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는, 도저히 사람이 살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호구역 내의 호텔로 가는 내내 내가 얼마나 분노했던지 아내가 이제 그만 흥분하라고 한 마디 한다. 이게 직접 찾아가는 여행의 의미인 듯 하다. 책으로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흥분게이지는 더 오르는 듯 하다.


카지노를 지나 호텔로 향하는데, 아내가 ‘여긴 인디언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난 인디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니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일거라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투숙객도 대부분이 인디언들이었다. 호텔 풀장은 인디언 아이들로 만원이었고, 카지노를 둘러보니 그곳 손님들도 대부분이 인디언. 저녁 먹은 식당 손님도 그러했다.


인디언들이 보호구역에 카지노와 리조트를 만드는 건, 외부 손님을 유치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목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곳의 모습은 인디언들이 운영하는 인디언들을 위한 리조트의 느낌이 더 강하다. 결국은 보호구역 인근에 대도시가 있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곳만해도 피닉스에서 두 시간 가까이 떨어져 있다 보니…

아내는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위치한, 투숙객이 거의 인디언들인 호텔에 묶고, 손님이 거의 인디언들인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환경을 불편해하고 불안해한다. 이유를 물으니,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런 분위기가 싫단다.


이를 어쩐다? 내일은 주니족 보호구역내에 있는 숙소에 묶을 예정인데… 이곳은 그래도 카지노도 있고, 수영장을 갖춘 제법 규모 있는 호텔과 스테이크 하우스가 있어 외부인들도 간혹 눈에 띄지만, 주니족 보호구역에는 몇 개 안 되는 객실을 보유한 숙소와 마을회관 분위기의 식당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내일 그 곳에서는 인디언 외의 외부인은 정말 우리가 유일할 지도 모른다.


참, 40도를 넘나드는 골프 라운딩은 무사히 마쳤다. 내 평생 몇 시간 내에 1리터가 넘는 물을 마셔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지금도 온 몸이 화끈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강렬한 추억은 이곳 아파치 부족 골프장에서의 라운딩 계획을 취소하기에 충분했다. 이곳 내일 최고 기온도 46도.


keyword
이전 03화Day2 미개한 문화를 버려라 - 인디언 동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