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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y 03. 2021

호주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집을 꼭 사야 할까?

지난해 3월, 영주권을 받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이사였다. 8가구가 사는 2층짜리 유닛(한국의 빌라)에서 4년을 살았다. 첫 번째 집도 똑같은 형태의 오래된 유닛이었는데, 교통이 더 불편했고 도로 근처라 시끄러웠다. 부동산과 집주인도 너무 불성실해서 고장 난 에어컨을 끝내 고쳐주지도 않고 40도 여름을 보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계약 끝나자마자 1년 만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렌트 가격도 괜찮았고, 집 안에 가구들과 가전들이 다 설치되어 있는 fully furnished였다. 오래되긴 했지만 둘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집이었다.


하지만 4년을 지내면서 불만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방과 거실 창문이 복도 쪽으로 나있는 형태라 사생활 때문에 블라인드를 걷을 수 없었고, 그래서 2층인데도 늘 채광이 아쉬웠다. 늘어난 살림과 옷가지를 제대로 정리할만한 가구들이 필요했지만, 공간이 부족해 주먹구구로 쌓아두는 게 보기 싫었다. 1년에 한두 번씩 막히는 세탁기 배수구 때문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았고, 1970년대에 지어져 벽과 천장 여기저기서 보이는 금들도 신경 쓰였다.  


그래서 렌트 계약이 끝나기 2개월 전부터 적극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큰 3개의 부동산 사이트를 매일 들어갔다. 비슷한 렌트비에서 더 좋은 집을 구하는 건 말 그대로 불가능했다. 예상했었기에 렌트비 조건을 최대 $100까지 올려 계속 검색을 했고, 그렇게 2개월 동안 40여 개의 집을 보러 다녔다. 하루에 6곳까지 간 적도 있고, 렌트비를 먼저 입금하면 집을 보여주겠다는 사기 메일도 받아보았고, 인스펙션 날 부동산에서 담당자가 나오지 않아 바람맞은 적도 있다. 애들레이드 시티를 포함해 동서남북 처음 가보는 지역까지 부지런히 다녔다.  


렌트비를 많이 올려서 찾는데도, 올린 가격이 무색하게 지금 집보다 조건이 많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보는 눈은 다 똑같아서 그나마 지원했던 집들도 경쟁률에서 밀려 모조리 다 떨어졌다. 부동산에서는 어김없이 Unsuccessful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왔고 조급해진 우리는 집주인이 공지한 렌트비보다 $10, $20을 더 올려서 지원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공실이 늘었을 테니 렌트 구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집을 보러 갈 때마다 입을 떡 벌리며 줄을 섰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온 걸까 싶었다. 집을 보고 나와도 사람들은 계속 줄을 섰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며 ‘여긴 안 되겠다’고 미리 단념한 집들도 더러 있다. 코로나로 인해 렌트 경쟁은 유래 없이 심해졌고, 지원자가 50명, 100명이나 되는데, 그중에 우리가 뽑힐 확률이 과연 몇 프로나 됐을까.


지원자가 200명 가까이 된다며 다른 렌트 리스트도 보내온 부동산 메일



사실 렌트를 하는 동안 ‘내 집’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별로 없었다. 냉장고나 세탁기가 고장 나면 집주인이 새 걸로 바꿔줬고, 관리비도 안 나가고. 무엇보다 호주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집을 사야 하나라는 마음이 컸다. 집을 소유하게 되면 어쩐지 집과 함께 이곳에 정착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내 집을 꾸미는 재미는 있겠지만 대출을 받고, 모기지 갚으면서 은행이 사준 집에 20, 30년 얽매이기 싫었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내 집이 아니기에 언제든 쉽게 사는 곳을 바꿀 수 있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이 수고로움을 하고서도 이사할 집 하나 구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집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처음 생겼다. 골드코스트에서는 일주일 렌트비를 $200이나 더 올려 지원한다 하고, 애들레이드 지인도 $50이나 올리고서야 새로운 렌트를 구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우리가 집을 못 구한 게 무리도 아니었다.


지난해 코로나로 힘든 시기였지만, 집을 마련하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호주 정부에서 ‘첫 주택 구매자(First Home Buyer)’에게 총 4만 불 가까이 지원을 해주었고, 가까운 분들도 집을 많이 사셨다. 집주인 할머니도 여기 살면서 돈을 모아 나중에 집 사서 나가라고 조언해 줄 정도였다. 하지만,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바, 우리가 사고 싶다고 원하는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코로나 타격으로 30년 만에 첫 불황이라던 호주 주택 시장이, 불과 몇 개월 만에 거뜬히 회복하고서 20년 만에 집값이 최대 상승했단다. 안 오를 것 같던 애들레이드 집값도 오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집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겠지만, 이웃에게 부끄럽지 않은 집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평생 가난하게 지낸다.”
_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집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이 생각난다. 그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만을 갖추고 단돈 28달러 12.5센트에 집을 손수 지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의 기숙사비가 1년에 30달러였다고 하니 오두막이 얼마나 협소하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을지 상상이 된다. 내가 결코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처음 이사를 생각했을 때, 둘만 지낼 집이니 많이 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서의 아쉬움을 해소할 만큼만 조금 더 환하고, 살림살이들을 잘 넣어둘 정도로만 크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된 타운 하우스부터 새로 지은 아파트, 비슷한 형태의 유닛, 앞 뒤뜰이 있는 하우스까지 다양한 집들을 둘러보면서 너무나 객관적으로 비교가 되다 보니, 소박하던 바람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2개월 반 동안 노력했지만 지원서는 다 떨어졌고 우리는 이사를 포기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 계약을 1년 연장했다. 렌트비가 $10 오르긴 했지만, 이미 한 번 내려주었던 터라 크게 부담은 없었다. 그리고 남편과 이야기 끝에 여기서 몇 년 더 지내다가 집을 사서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얼마 후 어김없이 세탁기 배수구가 막혀서 또 플러머가 왔지만, 며칠 사이 마음에 하나님, 부처님이 다녀가셨는지 그저 빠르게 처리해준 집주인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사 나가고 싶을 때는 그렇게 아쉬운 게 많이 보이던 집이었는데, 이만하면 궁궐은 아니지만 꽤나 좋아 보였다. 새벽까지 시끄러운 이웃과 얼굴 붉히기 싫지만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고, 블라인드는 어쩔 수 없으니 나갈 때까지는 단념하고 살고, 넘치는 살림은 좀 줄여봐야겠다. 집 구하러 다녀보니 이만한 집 구하기도 어렵다는 걸, 4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더 불편함 많은 집에서 살다 이 집에 이사 들어왔을 때는 주방도 마음에 들고, 화장실 싱크도 크고, 그저 좋아 보이기만 했는데, 지금은 어째 유심히 보아야 좋은 점이 보인다. 사람 마음, 참 종이 한 장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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