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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22. 2021

서른, 아홉 번째 문을 닫으며

서른일곱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슬프고 아쉬웠던 것 같다. 남편이 내 정수리께에 숨어있던 흰머리를 한 20개쯤 뽑았고(다행인지 아닌지 머리 묶으면 안보이는 자리였다), 목주름은 더 선명해졌고, 잘 입던 프린트 티셔츠가 어째 전과 달리 안 어울려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다시 찾지 못할 중요한 걸 영영 잃어버린 것처럼 한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항상 몇 년 뒤에 내 나이를 생각하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담담할 수 있는 건
나이를 한 살씩 먹어서 인가 봐. 
그럼 그다음 나이가 낯설지만은 않거든."

-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춘희(심은하)의 대사 중



스무 살에는 너무 멀게만 느껴져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연한 서른이고 삼십 대였다. 그렇게 언젠가는 도달하겠지 싶던 미래가 기어이 현실이 되었는데, 어떤 근사한 정점 한 번을 찍지 못한 채 곧 마흔이란다. 그 ‘근사하다’는 것도 ‘정점’이라는 기준도 모호하지만, 사십 대를 두 달 앞두고, 춘희의 저 대사가 어쩜 그리 콕 마음에 닿는지 모르겠다. 


막상 서른아홉이 되고 보니 내년에 마흔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담담하다. 한국에서 계속 직장을 다녔다면 그래도 10년이 넘었으니 직책이 꽤 되었겠고, 연봉도 훨씬 올랐겠지. 아니면 작은 온라인 사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보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이래저래 그려볼 뿐이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스펙터클 했다고 해서 포기한 다른 선택이 쉬웠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다. 지금이 현실이고 그건 꿈일 뿐이니까.  


삶의 기로, 터닝 포인트. 누구나의 삶에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인생이라 서른넷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게 없었다. 이후 어쩌다 들어온 ‘호주 이민’이라는 길 위에서 나는 생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어쩌다’라고 말하는 건, 일생일대의 결정을 결혼과 함께 세트로 너무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용감하고 열정 넘치던 20대는 방향을 몰라 힘들었다. 이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얼마나 계속 가야 하는지를 몰라서. 가고 싶은 방향을 조금 알 것 같던 30대에도 여전히 치열하고 서툴렀다. 인간관계는 더 복잡해졌고, 서 있는 자리가 바뀌자 나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 물었다.


내일의 나와, 일주일을 더 살아낸 나, 2달이 지나 맞이할 40대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열정적이고 사랑스럽게 살아갔으면 한다. 준비를 다 하지 못했어도 두려움을 넘어서 시작할 수 있고, 결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더라도 포기 대신 조금만 실망하면서, 그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지내기를. 





노을에는 경계가 없다. 그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과 때때로 핑크빛과 푸른색, 잘 보면 보라색까지 섞여 있다. 여러 가지 색들이 어울려 카메라에도 다 담기 어려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만 있다. 서른아홉의 마지막 날과, 마흔 살의 첫 날도 삶이라는 하늘 위에 두고 보면 경계 없이 섞여 있을 뿐이니까, 그 아름다움만 오롯이 바라봐주고 싶다. 나이가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묵묵히, 담백하고, 더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서른아홉, 

We’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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