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치를 많이 본다.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더욱 눈치를 본다. 학업, 직장, 그리고 윗사람과의 인간관계. 여기서 윗사람이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권위가 높은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교수님, 직장에서는 상사가 대표적이다. 이들과 있는 환경에 있으면 몸이 굳어서인지 곧잘 뻐근해진다. 그리고 그 환경을 나오면 급격히 피곤해진다. 그래서 내가 퇴근하고 피곤해서 다른 일을 못 하나 보다.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9298
눈치를 보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고 한다.
1. 인정받기 위해서
2. 적당한 거리를 위해
3. 내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
인정은 자존감 향상, 기쁨 등 긍정적인 정서를 얻기 위함이고, 거리 유지와 불안 회피는 부정적인 정서를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히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얽혀있지 않을까. 일단 내가 그렇다. 주로 회피의 목적이 크긴 하지만 말이다.
비록 현재 심리상담 일을 그만두긴 했지만, 내 마음의 숙제를 풀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아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내 삶의 키워드는 '쓸모'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요에 의해 존재하고, 진화해왔다. 필요해서 물건을 만들고, 필요해서 배우고, 필요해서 고용하고, 필요해서. 모두 쓸모에 의해 존재한다. 상담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사람만큼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고 알고 나누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뼛속 깊이 쓸모라는 단어를 새기며 살고 있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쓸모가 있으려면 유능해야 한다. 유능하다는 증거는 인정에서 비롯된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불안하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난 사회에서 버려질지도 모른다. 내가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둔다.
눈치를 보는 이유가 적당히 잘 버무려져 있고, 꽤 그럴싸한 문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참 박하다. 칭찬을 받아도 그걸 뽐내기보단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한다. 타인이 인정해줘야만 내가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니 참 슬프다. 겸손과 체면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해 보인다.
이 눈치에는 자존감, 즉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한 역할로 작용한다. 스스로 느끼기에 유능하지 못하고, 그것이 탄로 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본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흔히 말하는 '마이웨이'가 가능할 것이다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낙담한 사람을 위해 스스로 느끼는 장점을 써보라는 숙제를 내주곤 했다. 이젠 내 차례다. 내가 잘하는 활동, 영역을 자유롭게 써보곤 한다. 기준은 나에게 있다.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들은 많으니 타인과 비교해 잘하는 일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로 온전히 내가 느끼기에 나의 강점을 쓴다. 그게 꼭 사는 데 유용한 방법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독자분들도 낙담했을 때 한번 해 보시길 바란다.
난 소리를 잘 따라 한다.
사소한 걸 잘 기억한다.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