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행하던 에세이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아시는가?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지만, 가벼운 우울증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증상을 다룬 책이다.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닌, 우울감이 더 익숙한 그런 현대인들의 멜랑꼴리 한 기분을 다룬 책으로 다는 아니지만, 반 정도는 읽은 기억이 난다.
웬일인지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볼 때마다, 회사에 늘 존재하는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그 중간의 애매모호한 인간 군상들이 떠오른다. 완전한 빌런도 아니면서(여왕벌이나 개진상 유형) 그렇다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만능 해결사나 만인의 연인 타입도 아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음습한 회색 지대의' 사람들 말이다. 아니, 회사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게 잘 사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보통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이 정석이지만, 묘하게 이런 사람들이 중간 관리자의 위치에 가게 되면(이런 유형은 사람을 모으지 못하기 때문에 올라가기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식에서 벗어난 갑질을 하는 비열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차라리 대놓고 진상짓을 하면, 모두가 알 수 있기라도 하지만 그게 아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조용한 회색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더 윗급의 상사가 보지 않을 때는 그 밑의 직원들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직급을 이용해서 '비위를 맞추기'를 원하거나 '은근히 압력'을 주는 유형이다.
차라리 사람이 성격이 특이해도 의사표현이 확실하면 (좋지는 않더라도)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나 업무상에는 문제가 덜하고 좀 뒤끝이 없는데 본인이 워낙 자신감이 없고 사람을 잘 다루는 것도 아니다 보니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밑의 직원들이 본인 대접을 알아서 맞추고 잘 굴러가기를 바라는' 것이 가관이다.
일을 할 때는 리더가 명확한 의사표현과 리더십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라오고 소통이 되고 조직이 잘 굴러간다. 솔직히 일을 잘하지 못해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성격만 되어도 그럭저럭 협조가 되고 굴러간다. 그런데 그런 본인이 그런 역량도 없고 그렇게 될 생각이 없으면서, 직위에 따라오는 것은 '은근히' 바라는 것이 너무 킹 받는다. 이런 사람들이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직원들의 의견을 내세우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꼰대 기질이 확 나오면서 자기 본색을 드러내거나 문제가 생기면 '뒤집어씌우기' 일쑤이다.
사실 본인이 원하는 것은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놈의 '대접'이고 '갑의 위치' 아니겠는가. 결국은 늘 아랫사람들의 눈치만 일 년 내내 보면서 전전긍긍하고 본인 생각을 자신감 있게 얘기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논의할 문제가 있으면 본인의 생각은 없고 윗사람의 의견대로 은근히 했으면 싶고, 사람들이 그렇게 안 따라오니 자기한테 불똥은 튈까 봐 겁나고, 결국엔 '직원들이 자신한테 비협조적이다'로 코스프레를 하는 모양이라니. 자존심은 세고 능력은 없고, 누가 떠받들어 줬으면은 싶고.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전혀 모르고 '내가 상사가 되면, 다들 떠받들어 주겠지?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간다. 본인이 이전의 꼰대들한테 당했던 것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답습하며, 사람들 탓을 한다.
출처: 핀터레스트
위에 묘사한 이러한 특징을 전부 가진 상사와 일 년 동안 일을 하니 내 수준이 같이 내려가는 것 같고 너무 회의감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 상사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배울 것이 없는데, 어리다고 비위도 맞춰야 하다니!!(여기서 보너스로 훨씬 어린 여자들이 우쭈쭈해주며 은근히 기쁨조 노릇해주기도 바라더라. 어디서 본인이 그런 대접을 받겠는가. 밖에선 여자들이랑 말섞을 일도 없을건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처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회색지대의 우유부단함과 찌질함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자신을 감추고 '떡볶이'처럼 맛있고 달달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