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국 까봐야 아는 거다

그렇게 또 인생에 깨달음을 더하다

by 부제로

서류 통과 후 발표날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먼 거리에, 점점 내 할당 시간이 가까워졌고 마음의 조급함은 커져갔다.

다행히도, 조금은 일찍 도착할 수 있었고, 미리 숨을 돌리며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발표장은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많은 심사위원이 앉아있었으며, 다른 참여자들이 앞에 나온 참가자의 발표를 들을 수 있는 형태였다.

애시당초 경쟁률이 상당히 높고, 긴 시간 동안 발표를 해야하는 만큼 마음의 부담감이 컸는데 더 커져갔다.


심사위원님들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사람들은 발표를 잘 했으며, 발표자료 또한 내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너무나 멋지고, 잘 준비된 느낌이었다.

보면 볼수록 위축되는 마음이 커져갔다. '나 제대로 준비해서 뽑힌 거 맞을까?' 떨리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준비한 것만큼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올라갔다.

아뿔싸, 시작한지 3페이지 만에 발표 자료가 잘 못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정기간에 맞춰서 다시금 발표 흐름에 맡게 내용들을 추가해서 전달했지만, 알고보니 메일이 가지 않았고, 맨 처음 신청했을 때 그대로의 ppt가 보여졌다.

이미 새로운 흐름에 맞춰서 발표를 다 준비했던 만큼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었고, 어떻게 발표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들이 지나갔다.

진짜 오랜만에 '아 이렇게까지 발표 망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정말 안좋은 의미로 인상깊은 발표 시간이 끝나고, 심사위원분께서 마이크를 들었을 때, 과연 어떤 질문이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그냥 너무나 긴장하고, 떨었던 만큼 혹시나 안좋은 평가를 듣게 될까,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취급 받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어서, 두루뭉술하게, 핵심적인 내용들만 담아 그 순간을 기록하자면,


'사람들이 많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놓친 부분에 대해서 이 발표를 통해 알 수 있었어요. 정말 좋은 발표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정말 청년의 시각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발표 중에서 이 발표가 가장 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였나 싶네요'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획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좋은 기획을 계속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자들을 치면서도, 정말 내가 들은 문장들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기쁜 이야기였다.


인정욕구가 큰 나로서, 칭찬을 들었다는 점도 너무나 뿌듯하고 벅차는 심정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발표를 준비하며 정말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

그 내용에 대해서 제대로 전달되었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공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고 인상깊었던 경험이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솔직히 그냥 하지 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다.

너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야?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가? 싶기도 했다.

해야할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고,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은 많았기에 스스로조차 회의감이 드는 도전이었다.


진짜 단순하게 내가 생각만 했던 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서 과연 이런 흐름으로 생각해본 적은 있냐고 작은 돌맹이 하나 던져보고 싶은 마음

그걸로 했고, 서류 통과에 기뻤고, 어떻게든 발표까지 했다는 점에 참 감사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의 순간을 경험하며 다시 한 번 이 순간에 대해 새롭게 보게 되었다.


결국 까봐야 아는 것이라고.

발표자료가 어땠든, 발표자가 어땠든, 우리는 결국 까보기 전에는 어떤 결과를 받을지 알 수가 없다.

결과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해보는 수 밖에 없다.

상상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두려울지라도, 아주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도전해서 내가 무언가라도 얻고, 배우는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그렇기에 이 글을 기록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런 뿌듯한 순간을 경험했다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결과를 지레짐작하며, 내가 뭐라고 그걸 하지? 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해보라고,

그대의 도전 또한 나처럼 어떤 평가를 받을 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또 언젠가 이 배움을 잊고, 도전을 망설이며 내가 그거 해도 될까? 괜히 하는 거 아닐까? 시간 낭비만 하는 거 아니야? 라며 도망치는 스스로에게 이 글이 큰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라며 그래서 쓴다.


잊지 말자. 결국 까봐야 아는거다.


keyword
이전 13화쉬운 글과 어려울 글의 차이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