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돌아 잘 도착했어?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으니 좋지?
복순이랑 깜지는 만났어?'
복돌이가 보고 싶을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그럴 때면 나의 바램은 소리가 되어 마음에 도착한다.
'응 누나 잘 도착했어. 몸이 가벼워서 예전처럼 막 뛰어다닐 수 있어.
복순이랑 깜지도 만났어.'
"그래 그럼 됐어. 우리 복돌이 아프지 않으면 됐어."
눈이 뜨거워지며 왈칵 눈물이 나오려 하지만 입술을 꾹 다물며 참아본다.
떠나기 한 달 전쯤부터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밥을 거부할 때도 많았고 스스로 걷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야 했고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다.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는 몸에 경련이 와서 응급실을 찾기도 했다. 경련이 와서 호흡이 힘들어지면 엄마는 코에 숨을 불어넣어주고 나와 큰 누나는 다급하게 주물렀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보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욕심을 부리며 복돌이를 잡고 있었다. 겨울은 너무 추우니깐 장미가 피는 봄이 올 때까지만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2월 3일까지였다. 5월이 되어 핀 장미를 보니 복돌이 생각이 더 많이 났다. 함께 장미를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복돌이가 함께 있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거야. 잘 보내준 게 맞아. 그곳에서 복돌이는 이제 안 아플 거야.'
결국 눈물이 툭하고 떨어지지만 입꼬리를 올려 억지로 웃어본다. 그래야 복돌이가 마음 편하게 그곳으로 갈 수 있고 지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람인 나와 개인 복돌이는 2002년 8월 16일에 만나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