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총류입니다

by 이제이

도서관 서가를 천천히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코너,
그 이름도 낯선 ‘총류(總類)’.

총류란 도서 분류 체계의 첫 번째.
모든 분야를 다루지만,
정작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책들의 모음.
백과사전도, 도서관학도, 잡지도 그곳에 있다.
모든 것을 다 알고자 하나,
결국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책들.

그것이 총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서, 그래서 더 넓게 껴안는 이름.

나는 문득 묻는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어딘가에 속하려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속한 곳에서의 이탈을 꿈꾸며,
그러나 이탈 자체가 두려워서
그 자리를 또 지키고 있는 나.

혹은,
나는 이미 총류는 아닐까?
감히, 나로서 나에게 속하는.

모든 정체성이 겹겹이 쌓여
나는 결국 '나'라는 이름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존재.

누구는 나를 사회인이랬고,
누구는 엄마, 아빠, 선생님, 직장인이라 불렀다.
그 모든 이름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묻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누구죠?



총류도, 부류도,
어떤 분류든 우리는 늘 두렵다.

두려우니까 살핀다.
살피다가 멈칫한다.
멈칫하다 숨는다.
숨다가 다시 움직인다.
움직이다가 또 멈춘다.

그렇게 우리는
책장의 한 칸,
누군가의 기억의 한 조각,
어떤 인생의 한 갈래에서
당당히 총류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아도
결국 나는, 나로서 분류된다.


총류는 혼란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체성은 분명해야 해. 명확하게 자신을 규정할 수 있어야 해.’
하지만 나는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무엇이 되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걸까?
분류표에 명확히 꽂히지 않으면
흐릿한 인생이라 불리는 걸까?



총류는 말한다.
나는 하나가 아니야.
나는 모든 것의 사이에 있어.
경계에 머물러 있고,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아.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그건 모호함이 아니라
모든 방향을 향한 가능성이라는 걸.
나는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한 곳에만 머물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는 걸.

어쩌면 진짜 자유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이 아니라,
"원할 때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유연함" 아닐까?

우리는 늘 무언가에 속하려 애쓰다가도,
속한 곳 안에서 또다시 숨 막혀한다.
관계 속에서 안도하다가도,
그 관계가 내 이름을 삼켜버릴까 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총류’로 산다.
매일 변하는 자신을
어느 한 카테고리에 욱여넣지 않고,
스스로를 분류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래, 나는 총류다.
어느 날은 백과사전 같고,
어느 날은 단편적인 정보 같고,
어느 날은 그저 표지가 예뻐 꺼내든 노트 같기도 하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분류는 전부가 아니니까.

내가 겹겹의 정체성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혼란을 견디며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그 모든 과정이
이미 나를 충분히 의미 있게 한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오늘도 나는
어딘가에 속하려다 멈칫하고,
도망치고 싶다 다짐하다가 주저앉고,
숨 고르며 다시 걷는다.

나는 도서관 총류 코너 한복판,
그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첫 칸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책처럼 살고 싶다.

혼란이든, 유연함이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삶의 총류다.
그리고 나는,
감히, 총류로 나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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