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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Apr 14. 2024

어쩌다 투병일기 10

이미 내 몸은 변했는데,

 봄은 이미 시작됐고, 이미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봄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벚꽃이  유난히 많다. 벚꽃이 찬란히 빛나서 눈부신다. 그런데 어쩐지 봄이 왔음에도 기쁘지 않다.

여기저기 예쁜 것들 천지다

'예쁘다, 봄이다, 따뜻해서 좋다'

라고 말하며 봄이 주는 기쁨을 느끼는 척, 가짜 감탄만 하게 된다.  거울 앞에 있는 낯선 나를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봄마저 좋지도 싫지도 않다. 이게 다 항암 때문이라고 탓하고 싶다.

 예쁘진 않아도 내 얼굴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때까지 자연인으로 잘 살아왔다. 남편도 자연스러운 얼굴이 좋다고 하고 몸집도 평균체중을 약간 벗어났어도 괜찮다 여겼다.


그런데, 요새 나는 거울을 보면 절망하곤 한다. 샤워를 하며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갑자기 짜증이 나서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진다. 그런데 나는 매일 출근을 하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는 뮈라 설명해야 할까. 항암을 하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자문했지만 난 자신 있었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은 아픈 것보다 행복하다.


 지금까지 20여 년을 프리랜서 강사로 살아왔는데, 암이란 녀석 때문에 일을 쉬고 싶진 않았다. 항암도 5월이면 끝나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일은 내게 더 힘든 일이 될 테니까.


  작년 12월에 수술을 하고 항암 3회를 마치고  3월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수업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한 번의 항암을 더 받았고, 앞으로 두 번의 항암만 받으면 힘든 시간은 마무리될 것이다.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일터에 향하고 있으며  일하는 시간은 참 행복하다.


 그런데 항암 3차 후부터 부작용 기간이 길어졌고, 나의 긍정세포들도 하나둘씩 소멸되었다. 가장 참기 힘든 게 민머리와 검붉게 변한 얼굴빛이다.  외모부터 암환자의 느낌을 풍기게 되니 거울 앞에 서는 게 두려워졌다.      

   

  처음 암센터에서 마주쳤던 환우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두들 비슷한 분위기였다. 얼굴은 부어있었고,  낯빛이 검고 손마디마디가 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밴드를 붙이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짙은 한숨을 마음으로 내뱉듯 수심이 가득해 였었다.  두건을 쓰거나 가발을 썼어도 부자연러웠다. 가리고 있지만 모두가 항암 받는 사람인 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지금의 나의 상태가 되었다. 3차 이후부터 나도 항암 받고 있는 환자, 딱 그 분위기가 되었다.

 

  현재 삭발한 머리는 머리카락이 선인장 가시처럼 몇 가닥 올라와 있다. 얼굴이 붓게 되니 그나마 속쌍꺼풀이었던 눈이 더 작게 옆으로 찢어져 보인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나는 삶은 감자처럼 보인다 할까. 결론은 못생겼다는 것.


 특히 가발은 아무리 수제라고 해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가발이 인모가 아니라 땀이 나서 세척을 몇 번 했더니 윤기가 사라지고 끝부분이 타들어가듯 꼬이게 되었다. 긴 웨이브 머리였던 나는 단발머리가 어색했다. 뿔테안경도 은색테 안경도 어울리지 않아 렌즈도 끼고 다녔는데, 눈이 건조해 다시 안경을 쓰게 됐다. 가발이 부작용만큼 날 괴롭게 했다.

결국에는 인모가발을 샀다. 자존감이 살짝 올라갔다.

 부작용인지 원래 숨겨져 있던 것인지 광대에도 기미가 선명하게 올라와 화장으로도 감추기 힘들어졌다. 손가락 끝 지문은 팽창된 느낌이 들고 컴퓨터 타자를 치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쓸 때 저릿저릿 감각이 예민해졌다. 무엇보다 산발적으로 찾아오는 근육통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었다. 빈 시간만 생기면 눕고 싶기 때문이다.  몸은 이곳저곳 항암제에게 공격을 받고 몸속 깊은 곳까지 약으로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주변사람들은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한다. 걱정해 주는 것도 감사하다. 하지만 이젠 위로와 걱정도 식상해졌다. 내 병은, 또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해서 그렇다. 인생은 결국 나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각자만의 시련은 누구나에게나 찾아온다.  내게 그 시련이 찾아왔고 그게 바로 '암'이었다. 내게는 안 올 것 같았던 암, 내 뜻대로 되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항암 4차를 끝낸 지금 암을 더 알게 됐다. 암은 냉정하고 악하다. 나를 시험에 빠지게 만들고 낙담케 만들었다. 이 녀석에게 지기 싫었던 내 오기마저 짓밟고, 악한 감정을 들춰냈다.


  항암주사 예약일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욱 나약해진다. 불안한 마음이 짜증을 만들고,  몸을 보며 더욱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암을 이겨내야 하는데 항암이 누적될수록 단단했던 마음에 흔들리게 된다.

 

  주변에서 열심히 기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감사하지만 같은 질문에 반복되는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귀찮아 아파도 안 아픈 척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게는 모두가 날 버린다 해도 안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그런데도 그 어떤 성경말씀도 깊이 있게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또 내가 문제다라고 회개했지만 이번만큼은 '암'때문이라고, 탓하고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은 4월 11일 목요일 항암 5차를 끝낸 후다. 난 종양내과 선생님께

 "약 용량을 줄여도 괜찮을까요?"

물었고, 선생님은 내 뜻에 동의했다.

 "어차피 6차 때 아드레마이신을 빼려고 했어요. 5차부터 빼보죠."


 일명 빨간약, 그 약을 맞을 동안은 입안에 얼음을 물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구내염이 바로 생긴다. 이젠 얼음은 물고 있지 않아도 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항암주사 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됐다. 이것 하나만으로 해방감이라니.


 더 어려운 과정과 병기로 항암 횟수도 긴 환우분들은 또 어떻게 견딜지 가늠할 수도 없지만, 다만 이겨내자고! 힘을 내자고! 말하고 싶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 내년에는 더욱 설레이는 마음으로 반겨줄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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