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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07. 2024

퇴사하고 여행 가겠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어떻게 하나?

장기 여행 최대의 난제, T친정 F시댁을 설득하라

여행 시작 전 가장 큰 난제는 양가 부모님 설득이었다.

     

한창 일해야 하는 40대 부부가 2년간 국내, 해외 한달살기 하고 오겠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남편은 돌아와서 다시 자리 잡을 만한 자격증이나 내세울 경력이 없고, 내겐 과거 암 환자로서 여전히 체력 수준 매우 딸리는 특별한 건강 이력이 있었다. 부모님이 듣기에 우리의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양가에 가기 전, 어른들 성격 맞춤 전략을 세웠다.     


우리 집은 순한 맛이다. MBTI로 설명하자면 친정아버지는 T 성향이 강하기에 설득은 오히려 쉽다.

      

말은 간단명료하게, 수치 넣어 정확하게, 신뢰를 주는 게 우선


“아빠, 저 김 서방이랑 국내랑 해외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다 오려해요. 최소 2년 생각해요.”     

아버지의 첫 반응은 ‘뭐 이런 것들이 있나?’ 싶은 뜨악한 표정. 이어지는 질문은 간단했다. 단 두 글자.     

“돈은?”     

하하하, 아버지의 질문은 나의 예상 질문지 첫 번째에 있었기에 철저히 준비해 간 시나리오를 차분하게 쫙 풀었다. 금융공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하셨던 아버지 보기에도 딸의 계획이 받아들일 만했나 보다.     

“그래라. 재밌게 살아라.”

바로 승낙이 떨어졌다. 한마디 덧붙이시면서

“유럽 가면 나도 불러줘.”     

아버지는 예전부터 다뉴브강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15년 전 아버지의 퇴사 시기쯤, 부모님 유럽 여행 다녀오시라고 그렇게 등 떠밀었지만 두 분은 떠나지 못했다. 다행이었던 건지 불행이었던 건지 사기업에서 자리가 나 아버지는 직장을 옮겨 계속 일 하셨고, 작년인 7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근로자의 삶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엄마 생전에 두 분 다녀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들은 일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왜 그리 일을 못 놓으시는 건지 안타깝고 미안해진다. 아버지도 연세가 있고, 얼마 전 무릎 인공관절 수술도 받으셔서 유럽 여행이 너무 힘들지 않으려나 걱정도 되지만

“그럼요~”

대답하며 우리 집은 10분 만에 쿨하게 승인이 떨어졌다.       

   



다음은 매운맛 시댁이다.     

대문자 F 성향의 시댁은 논리로 설득이 불가하다. 가슴을 울려야 한다. 어렵다.


설명 대신 대화로, 대화시간은 적어도 반나절+한 끼 식사, 공감 형성이 우선     


마침 김장철이라 김장하러 시댁 가는 날 말씀드리기로 날을 잡았다.


사실 시부모님께 말씀드리는 여행 이야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애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로 치부하시며 귀를 기울이시려 하지 않았다.

‘저것들 저러다 말 거다.’ 생각하시는 듯했다.     


남편이 일도 곧 그만둘 거고, 부동산에 집도 내놨다고 하자 그제야

“오메, 이것들이 일 크게 치네?!” 반응하셨고, 우린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씀드려야 할 때였다.     

남편이 설명하다 진땀을 흘리고 살짝 이성을 잃기에 내가 나섰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아버님은 어느 정도 수긍을 하셨지만, 어머님은 너무 걱정된다고 하셨다.      

다음날 어머님은 10살 나이 차이인 막내 이모님과 상의하셨고, 이모님은 조카와 질부의 결정을 응원해 주셨다. 어머님은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시지만 이모님께서

“언니야, 언니가 할 일은 걱정이 아니고 기도다. 애들 위해 기도해 주면 된다.”라는 말씀으로 마침표를 찍어 주셨다.

     

Mission Impossible이 Mission Possible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우리만 잘 준비해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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