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볼 때마다 어설픈 발음으로 ‘형’하고 부르며 먼저 장난을 치곤 하던 ‘에디(Eddy)’는 그 당시엔 생소한 표현이었지만 오늘날 기준에서 보면 전형적인 검은 머리 외국인이었다. 밝고 명랑한 성격에 운동을 좋아해서 나와 또 다른 교포 친구와 함께 셋이 런던에서 오랜 시간을 격의 없이 지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엄마가 전부 다른 세 아이를 양육하는 아빠였다. 그의 나이가 20대 중반 무렵이었으니 상당히 조숙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을 때나 수영장을 갈 때, 또 같이 축구경기를 할 때도 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젊은 아빠를 잘 따랐고 표정은 밝았지만 늘 조금은 꾀죄죄한 모습을 한 채 나타나곤 했다.
그는 이미 세 번 이혼을 한 상태에서 웨일스(Wales) 출신의 마음씨가 착한 네 번째 여자와 동거 중이었다. 네 번째 여인도 임신 중이어서 우리는 그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 외곽에 소재한 조그만 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우리의 염려와는 달리 늘 당당했고 주변의 시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대부분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문화가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유럽 국가들에서는 밖에서 밤늦도록 식사나 술자리를 갖는 것보다는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며 가볍게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다. 젊은이들은 친구들과 집 밖의 펍(pub)이나 클럽에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식사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젊고 매력 있는 그의 동거녀는 거리낌 없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 여자 입장에서는 도무지 족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나는 처음에 그런 모습이 참 어색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그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몸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같이 공부하던 영국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주말인 토요일 점심 무렵에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고급 와인을 곁들인 상당히 괜찮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말도 유혹처럼 던졌다. 그를 따라 토요일 점심시간에 방문한 장소에서 나는 기가 막혔다. 그곳은 그의 전처가 결혼식을 올리는 연회장이었다.
그의 전처는 자신의 재혼식에 전 남편인 내 친구를 초대했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거기에 같이 가게 된 것이다. 나는 친구의 얼굴을 희한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전처의 볼에 키스를 하고 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그가 전처 새 남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지 않을까 싶어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있었다. 당시에 나보다 열 살쯤 더 많았던 친구는 나이답게 점잖은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기이하게 느껴진다.
에디는 식사를 하며 네 번째 여인 앞에서 세 번째 여인과 헤어진 이유를 우리들에게 담담한 어투로 말해 주었는데 너무나 단순해서 놀랐다.
“더 사랑하는 여자가 나타났다”는 게 이유였다고 말했다는데 세 번째 여인은 잠깐 눈물을 쏟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한국 같았으면 그는 몹시 두들겨 맞았을 거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도 꽤 변했을 것이다. 아빠를 닮았던 그의 아이들은 이미 제짝을 찾아 아빠의 곁을 떠났을 것임이 분명하다. 에디의 유일한 취미는 밤에 거실에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가운데 소파에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있으면 가끔씩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그는 아기 때 프랑스로 입양을 갔다가 파양 되고 거리를 떠돌다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비록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쳐 버렸지만 그는 마음이 따뜻한 동생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유학생 시절, 생일을 맞은 그를 데리고 출입이 쉽지 않던 한국식당을 찾았을 때 김치찌개를 입에 떠 넣으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영국이라는 사회가 내게 다소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던 개인주의적이면서도 개방적이던 모습은 여전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사는 모습이고 전통이며 역사가 될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에디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Photos by He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