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위한 일반론
군대에서 사용한 공책이 몇 권 있었다. 전역 후에 가져오기는 했으나 책장에 넣어놓고 보지 않다가. 어느 날 그곳에서 생각 없이 쓴 일기를 하나 발견하였다. 지금 그 일기를 읽어보면 나도 정말 많이 불안했구나 생각을 한다.
5.13 토 비 온 뒤 맑음
대규모 훈련이 있기 전 마지막 주말 PX를 갔다가 사지방(사이버 지식정보방)을 갔다가, 게임 한판 하러 갔다. 결국 하릴없이 많은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다시금 책을 집어 들었다. 군대 오기 전에 책을 많이 읽어보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어느새인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읽은 책은 저급 판타지를 제외하면 110권에 이르렀다. 지난달에는 한 달에 20권을 읽었으니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며 무언가 달라진 게 있느냐 하면 사실 잘 모르겠다. 입력(인풋)이 많으면 출력(아웃풋)이 많다고 했던가 책을 읽을수록 내 성격과 자아를 완성해 나가는 느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책을 통해서는 찾을 수 없었다. 학교 기말고사가 끝나고 3주도 되지 않아 도망치듯이 군대에 온 것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함께 왔다. 사실 막상 군대에 와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좀 더 알아볼걸 하고 생각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닌가 후회하는 거 같기도 하다. 집 갈 때 교통비만 왕복 14만 원에 편도 이동시간만 8시간이 걸리니, 다시 돌아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책을 읽어서 얻은 한 가지
'보편성은 존재하지만 절대성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보편성을 절대성으로 착각한다.'
뭘 해야 할지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군대에서 독서를 많이 해서 어떤 거창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마음은 편안하다. 책을 100권 넘게 읽고 얻은 것이 그거 하나 있다고 하면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독서, 왜 하필 독서였을까
지금의 군대는 일과 이후에 휴대폰 사용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늘어났지만 그때의 나는 해당사항이 없고, 선택지 자체가 적어서 그중에서 그나마 고른 것이 독서였다고 본다. 가끔 군대에서 독서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도 평생 책하고는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하였지만 러시아 문학에 푹 빠져 모조리 읽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대부분의 군부대가 특별한 배려를 해주지 않는다면 독서, 운동, 자격증, 영어공부 밖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만약에 나도 휴대폰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독서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제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기에 전자도서관이나 인터넷서점의 전자책으로 더 자유로운 독서를 하기보다 금방 다른 길로 빠져버렸을 것이다. 나는 사실 초등학생 때에도 또래에 비해서 어려운 책을 많이 읽는 편이기는 하였고 그래서 독서는 나에게 있어서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쉬운 쪽이었고) 내가 있는 환경에서는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중 그나마 할만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독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작은 진단
독서, 독서하라는 말은 굉장히 익숙하고 식상할 것이다. 독서가 좋은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초등학생 때부터 독서를 하면 칭찬을 하고 독후감을 쓰게 하였고,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면 생활기록부에 혹시나 한 줄이라도 보탬이 되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장래희망이나 아니면 나중에 지원할 학과와 연관된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가끔 독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국 그 사람도 수많은 독서를 한 끝에 그 결론에 이르지 않았을까. 독서가 필요 없을 지경의 독서를 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각 사람에게 독서를 강조한다고 한들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다.
어느 유튜브에서 지나가는 명문대생을 인터뷰하면서 혹시 최근에 읽는 책이 있는지 물어보니 대부분 따로 없다고 대답하였다. 책은 전공서적만 보고 유튜브나 OTT 영상을 더 많이 본다고 하였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글에서 영상으로 이동하는 미디어시대가 도래했다. 도파민이 넘치는 세상이라 긴 콘텐츠는 읽지 못한다. 여러 진단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진단을 두고서라도 그래도 내 생각은 독서라는 것, 활자를 읽는 행위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똑같은 시간을 들여서 어떤 것을 봐야 할 때 영상에 비해서 활자가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은 시각정보를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내가 자주 챙겨보는 어떤 블로거도 자신은 많은 정보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한가하게 유튜브 틀어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다면 독서 왜 실패하는 것일까
내가 주변을 관찰한 바로는 사람들이 독서를 목표로 둘때 실수하는 것은 공부하듯이 다짐하고 운동목표 세우듯이 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전하는 사람은 결국에 독서라는 목표를 실패하고 좌절하고 원점으로 돌아간다. 목표를 실패하는 이유는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독서 자체는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그 행위 자체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순간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어느 실험에서(아마 EBS로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는다고 칭찬하고 보상을 주었다. 그러자 분명 아이들의 독서량은 늘어났지만 독서의 질은 떨어졌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던 아이들도 개수를 채우기 위해서 얇고 쉬운 책을 고르기 시작하였고, 빨리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 위해 대충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개수 채우려고 자기만족으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에서 원하는 것을 얻거나 또는 내가 궁금한 것을 찾아 나가는 과정으로의 책이지 수단은 수단일 뿐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표를 세우는 순간 독서가 아닌 과제로 숙제로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숙제는 대게 지루하다. 모바일게임의 일일퀘스트를 숙제라고 하고 시즌패스를 달성하기 위해서 채우는 게임판수가 재미에서 노동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즐겁고 기쁘자고 하는 게임인데 왜 숙제라고 되어버린 것일까.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나처럼 군대에서, 학교를 다니며 주야장천 독서를 했던 것처럼 당장은 어떤 목적이 없더라도 그냥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아니 꼭 목적이 있어야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 말도 충분히 맞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목표나 다짐이 아닌 체득이다.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항상 책을 읽건, 읽지 않건 심지어 여행을 갈 때도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 한 권은 가지고 다녔다. 아침에 눈을 뜨고 화장실을 가거나 물 마시고 밥을 먹는 것처럼 오늘도 나의 아침 루틴은 스트레칭 한 번 하고 전날 읽던 책을 이어서 읽는 것이다. 점심시간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내 자리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을 몇십 분 읽는다. 퇴근하고 잠들기 1시간 전에는 기계적으로 휴대폰을 수면모드로 넘겨버리고 책을 읽다가 잠에 든다.
군대에서도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군대라는 그 특성상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옆에는 책이 있으니 계속해서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그렇게 21개월이 지나고 보니 170권이라는 독서가 쌓여 있을 뿐이었다. 독서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겠다고 집착하지도 않았고, 책 읽는 것에 애쓰고 집착하지도 않았다. 책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읽기를 그만두고 다른 책을 찾았다. 모든 내용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그저 눈에 가끔 들어오는 문장만 건졌고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 메모를 조금 하였다. 어떻게 군대에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지 물어본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별로 없다. 그냥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습관으로 만드는가? 나는 추천하기를 책을 사지 말고 도서관에서 딱 읽고 싶은 책 일단 1권 대출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까지 습관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니 하루 중 어떤 시간을 독서하는 시간으로 박아놓자.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경우에는 자기 1시간 전에는 무조건 독서를 한다. 그리고 캘린더에다가 도서관 대출 반납기한을 띄우자 반납기한 신경 쓰여서 책을 손에 잡고 있을 거다. 반납기한이 다돼 간다? 연장신청을 하자. 연장을 해도 반납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연장신청을 하기 전에 다른 누군가가 도서 예약을 걸 수도 있다. 그러면 반납하고 나중에 다시 빌리러 가자 그렇게 딱 한 권만 읽어보자. 그런데 책이 이해가 안 된다면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면 그만일 것이다. 그렇게 한 권 읽었다면 다음권으로 넘어가 보자 사실 이 과정에서 실천만 있을 뿐 대단한 요령은 없다. 독서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내가 독서카페 관리병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부대는 장병들의 독서를 향상하기 위해서 소초마다 독서카페를 만들었고 대대급부터 독후감상문 대회를 열었지만 한편 상급부대 지침으로 도서의 관리를 위해서 독서카페에서만 열람을 하고 생활관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였다. 물론 나는 이 지침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이 많았고 다른 병사들이 도서를 생활관으로 가져가도 내버려 두었다. 책은 읽는 것이지 어느 물자 보급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아마 이런 지침을 내린 사람은 평소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은 관리의 대상도 아니며 독서를 위해서 엄격하게 정해진 장소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손이 가는 곳에 책이 있고 지금 읽을 수 있으면 읽으면 된다.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