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사계절

by 김하늬

사계절을 다 경험하는 우리는 봄과 가을을 유난히 사랑한다. 봄과 가을이 너무 짧다 보니 아쉬워서 더 애정을 갖는 것일까? 갈수록 가을이 짧아서 아쉬웠는데 이번 가을은 유난히 포근하다.


자연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필요하듯 관계에도 사계절이 필요하다.

썸을 타는 간질거리는 봄,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럽고 열정적인 여름, 낙엽이 떨어지듯 콩깍지가 벗겨지는 가을,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시작단계에서는 가을과 겨울은 좀처럼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갈등의 시작점 가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다시 봄이 올까 의심한다. 사이클은 돌고 돈다. 지금 내가 봄을 마주하고 있다면 언젠간 겨울이 올 것이고, 가을을 마주하고 있다면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봄의 시기에는 온 세상이 핑크빛이다. 벚꽃이 피는 순간 내 마음속 생동감도 터진다. 어떤 행동이든 의미부여를 하고 이 세상 중심에 서있다고 느낀다. 모든 설렘과 기쁨이 이 시기에 폭발을 한다. 웃을 일이 많아지니 얼굴에서도 생기가 돈다. 눈빛도 살아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싱그러운 여름이 온다.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둘의 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함께 하는 모든 행동들은 합이 맞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서로 온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표현한다. 우리 사이에 갈등 따위는 절대로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둘만 보인다. 행복하다는 단어가 모자란 시기다.

내가 좋아했던 너의 모습 중 한두 가지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장점이었던 모습이 단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애틋하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끝까지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뭇잎들처럼 간신히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한다. 아직은 둘만의 추억을 붙잡고 곱씹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차가워진다. 노력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 차가워진 말투와 행동에 서로 상처를 받는다. 네가 변하면 우리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서로 억지를 부린다. 그렇게 차가운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때린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잊는다.


모든 사람의 관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대로 오는 건 아니다. 뒤죽박죽 섞여도 결국 모든 계절을 경험해야 그 관계가 단단해진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겨울조차 견뎌내야 다시 봄을 마주할 수 있다.


시간은 참 주관적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에는 순삭이라는 표현을 쓰고, 그만큼 빨리 지나가버린다. '부디 이 시간이 멈췄으면!'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는다.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감정의 사계절이 존재한다면 나는 봄과 가을이 가장 길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그 사람만 생각나고 설레고 혼자 웃을 수 있는 봄. 우리들의 관계가 낙엽처럼 쌓여 그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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