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원더랜드 오타쿠걸 1장 : 최애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어 1
일본 신조어 중 오시카츠(推し活)라는 말이 열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카츠이긴 하지만 딱히 돈카츠의 종류를 뜻하는 말은 아니다.
오시(推し)는 "누군가에게 추천하다", "권하다"는 의미를 가진 오스(推す)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어 자체는 평범한 일본어라 서브컬처를 떠나 "좋아하는 것", "추천하는 것"을 뜻하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지만 오타쿠 문화에서 오시라는 표현은 쟈니스, 다카라즈카※1와 같이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삼는 여초 팬덤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2000년대 AKB48※1의 히트 이후 서브컬처 분야 전반에서 널리 쓰이게 되는데 최근에는 실존 인물 외에 오타쿠 문화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된다.
오타쿠에게 있어 오시란, 그저 좋아하는 대상을 지칭한다고 하기에는 그리 심플하지만은 않다. 그 안에는 연애 감정, 우정, 모성, 전우애, 승인 욕구 등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얽혀있다. 그의 성장과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상대. 우리말로 바꾸자면 가장 적절한 단어는 최애※2라고 할 수 있겠다.
최애를 뜻하는 오시(推し)에, 활동(活動-카츠도)의 [활] 자를 따와서, 오시카츠다.
우리말로 단순 번역하자면 덕질이다. 최애와 관련된 활동. 그것이 덕질이니까.
오타쿠가 최애를 대하는 태도 또한 그 감정 상태를 반영하듯, 복잡 다양하다.
콘텐츠 하나에 온갖 희로애락과 도파민이 요동친다. 최애의 성장과 성공을 체감하면 한 없이 벅차오르며 어떻게든 그 감정을 표출하고 싶어서 내적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최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관련 상품들을 구매하고, 때로는 스트리밍 같은 노동을 하기도 한다.
오타쿠의 최애에 대한 활동이란, "최애를 위한 적극적인 소비 활동과 그 표현"을 의미한다.
오시카츠는 일본에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소비 트렌드이다. Z세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시카츠에 적지 않은 금액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욕이 없다고 평가되는 일본의 Z세대지만, 덕질에 대한 소비만큼은 예외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금은 그들의 높은 구매력과 확산력을 눈 여겨본 각종 업계가 적극적으로 상품 기획과 마케팅에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근년 한국에서 팬덤 마케팅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SHIBUYA109 엔터테인먼트가 2022년 5월에 실시한 일본 수도권에 거주하는 Z세대(15〜24세) 525명을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에 따르면, 「최애가 있다 / 덕질을 하고 있다」는 답변이 무려 82%에 달한다.
또한 「일상 속에서 어느 정도 최애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89.1%가 「항상 의식하고 있다」「가끔 의식한다」라고 답변, Z세대 사이에서 덕질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에 깊게 침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주변이 오타쿠임을 알고 있다」는 답변이 96% 이상으로, 덕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오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시카츠를 하는 집단은 서브컬처와 덕질문화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편견이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단 안의 교류를 통한 확산 효과를 고려한다면, Z세대 사이에서 오시카츠의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는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덕질이라는 단어의 앞글자 "덕"은 일본어의 오타쿠에서 따온 말이다. 오타쿠는 사전상 의미로 어떤 것에 과도하게 열중하여 자세한 지식을 섭렵하는 사람을 의미한다.※3 일본에서도 단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중반에는 만화에 열중하는 대상을 경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시대를 거듭하며 서브컬처의 부흥과 함께 부정적인 의미는 다소 옅어졌지만, 아직 단어 자체가 갖는 울림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한국에서의 용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덕질을 뜻하는 말로는 오타쿠 활동을 줄인 오타카츠(オタ活/ヲタ活)가 일반적으로 쓰였다. 지금도 사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오시카츠라는 단어가 너무 흥하는 바람에 다소 밀려난 느낌이다.
위 그래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오시카츠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이후이다.
단어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COVID-19. 이벤트나 공연, 모임 같은 오프라인 활동이 중지된 여파로, 온라인상에서 덕심을 충전하기 위한 활동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증가 추세에 있었던 관심도는 2021년에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른 것을 계기로 한층 더 급격히 상승한다.
오시카츠의 대중화에 기여한 요인 중 하나로 콘텐츠의 라이브 (실시간+살아있는 것) 화를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가 오타쿠에게 도달하는 것도, 오타쿠가 콘텐츠에 대해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도 일정 이상의 시간차가 발생하는 환경이었다. 과거의 오타쿠 문화가 이미 존재하는 콘텐츠를 시간차를 갖고 홀로 즐기는 것이 메인이었다. SNS로 인한 실시간 소통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콘텐츠에 대한 감상부터 최애에 대한 애정 표현까지 지금 이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문화가 당연해졌다. 뿐만 아니라, 덕질 대상 본인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쪽까지 팬의 의견에 반응하거나 피드백을 하는 등 제작 과정도 쌍방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화했다.
이렇게 문화 콘텐츠에 대한 소비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팬데믹이라는 불씨로 인해 Z세대의 덕질 문화, 즉 오시카츠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둘 다 덕질을 뜻하는 단어라 의미상의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구성 요소들을 분해해서 보면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오타쿠의 활동을 뜻하는 오타카츠 → 행위의 주축이 오타쿠 자신 = 자기 안에서의 소화를 중시
최애에 대한 활동을 뜻하는 오시카츠 → 행위의 주축이 최애 = 자신의 밖으로 표현을 중시
정리하자면, 똑같은 덕질이라도 행위의 주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오타쿠가 본인의 행동을 대하는 무게감, 거리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오타카츠는 오타쿠인 본인의 덕질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오시카츠는 덕질 대상을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덕질의 중심은 최애이며, 자기 자신은 간접적인 요소로 두고 있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사회학자 나카야마 아츠오는 저서 "최애 이코노미"에서 자신의 인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상대이기에 오히려 열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빡빡한 현실 생활을 벗어나 감정적인 만족을 얻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Z세대는 윗 세대에 비해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라이트 층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표현이다. 하지만 오시카츠가 또래집단이나 미디어에서 가벼운 유행어처럼 사용됨으로써, 오타쿠라는 단어가 가지는 마지막 한 겹의 심리적인 부담도 거두어주었다. 어딘가 매니악해 보이는 오타쿠 활동과 달리, 가벼운 취미생활처럼 보이게 해주는 마법의 단어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오시카츠의 유행은 라이트 층의 유입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일본의 콘텐츠 시장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된다. 오시카츠는 현재 취미 생활의 하나로 Z세대 여성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정리하자면,
1. 최애의 성공 / 성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2. 자기 나름대로의 표현 방식으로
3.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하는 덕질.
이것이 2020년대 일본 사회에서 사회적인 붐으로 떠오른 오시카츠의 핵심이다.
여담이지만, 오타쿠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과거 오타쿠라는 표현은 애니메이션, 게임 등 2차원 서브컬처에 편중된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규모로 따지자면 매스컬처에 가까운 일부 스포츠나 아이돌의 팬들 또한 오래전부터 오타쿠로 카테고라이즈 되기도 했다. 서브컬처와 매스컬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미디어믹스나 플랫폼의 경계를 초월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어느 특정 장르나 미디어에 한정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봐도 애니덕, 겜덕, 돌덕, 야덕, 축덕, 드덕, 코덕 등 다양한 분야의 덕(오덕후)들이 있지 않은가.
현재는 매체나 차원과 관계없이 어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열정을 가지고 일정 이상의 돈과 시간을 쏟는 사람으로 칭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상은 본인이 엔터테인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물론 "일정 이상"이라는 표현은 명확한 경계가 없기 때문에 소비의 규모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오타쿠냐 아니냐를 구분 짓는 바로미터는 열정을 갖고 몰입하느냐 아니냐가 아닐까. (적어도 필자는 이 기준에서 이 글들을 쓰려한다.) 단순히 넷플릭스 인기 순위 애니를 정주행 하는 것 만으로는 오타쿠 축에 낄 수 없는 없는 이유이다.
한편 오타쿠에 대해 논할 때, 늘 고민스러운 것이 우리말로의 순화이다.
일본이 그렇듯, 우리나라도 오타쿠에 대한 인식이 많이 유해졌고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물론 단어를 깊게 파고들면 부정적인 이미지는 남아있지만, 종종 미디어에서 쓰이던 멸칭에 가까운 표현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가수 윤하님이 트위터에서 제안했던 깊은 감동이 잦은 사람이란 말도 오타쿠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 공통된 인식을 갖추고 있는 표현은 필자의 내공 부족으로 딱 맞는 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좋은 표현이 있으신 분은 의견 주시기를...
※1.
- 쟈니스 : 남성 연예인 전문의 일본 대형 연예 기획사. 최근 창업주의 성추문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 다카라즈카 : 다카라즈카 가극단. 여성으로만 구성된 일본의 뮤지컬 극단으로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 AKB48 :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유명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가 프로듀싱하며,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로 아키하바라에 전용 극장을 두고 있다.
※2. 최애 : 한자로는 가장 사랑한다는 의미의 最愛. 가장 좋아하는 덕질 대상을 뜻하는 말이지만, 덕질 외의 분야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칭하는데 폭넓게 쓰인다.
최애라는 단어도 덕질처럼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한국과 유사한 용법으로 특정한 그룹, 카테고리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뜻한다. 일상적으로는 오시라는 표현이 좀 더 라이트하고 폭넓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두 번째 좋아하는 대상은 차애라고 부른다.
※3. 오타쿠 : 사전적 의미는 소학관 디지털 다이지센에서 인용.
오타쿠라는 단어는 1970년대 만화 팬들을 비꼬고 조롱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 이후 만화 시장이 확대되고 산업이 형성되면서 다소 이미지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특히 Z세대들 사이에서는 크게 부정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단어 자체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일부 남아있으며, 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사용할 때는 자조적인 뉘앙스를 포함한 경우도 적지 않다.
출전 및 참고자료
https://shibuya109lab.jp/article/220712.html
https://neo-m.jp/investigation/3075/
https://www.weblio.jp/content/%E3%82%AA%E3%82%BF%E3%82%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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