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고 고친다는 마음으로
초고를 막 쓰면서 동시에 글도 고쳐보려고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가지를 동시에 다 잘 해낼 리는 만무하며,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이 흐지부지 끝나버리기 쉽다.
작가와 편집자가 동시에 덤벼들 수는 없다. 글을 쓰려면 쓰고, 편집을 하려면 편집을 해야 한다. 잘 팔릴만한 글인가 상업적인 눈으로 들여다보는 건 맨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건 나의 임무도 아니다. 내 글로 비즈니스를 하기로 한 사람의 일이다. 물론 나도 내 글로 얼마의 수익을 올린다면 꼭 내 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해서 내 이름만 보고 내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구입하는 독자가 없는 나에게 인세로 먹고사는 일은 꿈같은 일이다.
초등학교 때는 체르니 100번을 떼고, 30번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 다시 찾은 성인 취미 반 피아노 학원에서 내 손가락은 말 그대로 녹슬어 있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나에게 하는 주문이 꽤 충격적이었다. 왼손은 부드럽게 작은 소리가 나게 치고, 오른손은 선명하고 힘 있게 치라니요. 도대체 어떻게? 왼손은 그냥 작게만 쳐서도 안 된다. 그냥 힘을 축 빼고 흐느적거리듯이 치지 말란 말이다. 딴딴하게 들어갈 거 다 들어갔는데, 볼륨만 줄인 것 같이 작게 다. 왼손을 신경 쓰면 오른손이 잘 안되고, 오른손을 신경 쓰면 왼손이 잘 안 된다. 왼손은 묵직하게 묵묵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상냥하게 오른손을 보필하고, 오른손은 멋지게 신나게 자유롭게 느낌 있게 자기를 표현해줘야 한다. 이 둘을 동시에 하라니, 이것은 나에게 완벽한 이중인격자가 되라고 하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글을 쓰면서 동시에 고치기도 해서, 다시 손대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글을 한 번에 쓰는 작가는 없다. 게다가 글쓰기는 왼손과 오른손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양손 연주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양손이 각자 다르게 완벽하게 ‘동시에’ 같은 이중인격으로 협업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면 왼손만 따로, 오른손만 따로 치면 훨씬 집중하기 쉽고 정확하게 소리 낼 수 있다. 피아노를 글 쓰듯이 한다면,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쳐서 가장 좋은 것만 나중에 합치면 된다. 에세이 작가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글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고치고 마음대로 바꿔놓을 자유가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