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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자와의 소통

제삼자님 들어와 주세요

by 우수진

“애들이 대부분 그럴싸한 직업들을 적어냈다. 아무도 시장에서 특정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이 되고 싶다고 적은 사람은 없었다.”


제삼자: 이 부분 말이야, 그럴싸한 직업과 상인이 너무 대비되는 거 같아.

나: 상인을 낮추어 보는 듯한 시선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 글이 돼야 해 전혀 그럴 의도도 없고

제삼자: 상인의 장래희망이 뭐였을까는 상관없을 것 같은데, 대비되는 글을 삭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원래 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우리 반에 있는 모든 애들이 대부분 그럴싸한 직업들을 적어냈다. 공무원, 대통령, 외교관 같은 것들. 아무도 시장에서 특정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이 되고 싶다고 적은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여기 있는 생선가게 주인장은 학창 시절에 장래희망으로 이 업종을 꿈꾸셨을까 궁금해졌다. 떡집 가게 사장님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장래희망을 떡집 오픈이라고 적었을까?


[고친 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우리 반에 있는 모든 애들이 대부분 그럴싸한 직업들을 적어냈다. 공무원, 대통령, 외교관 같은 것들. [삭제] 그렇다면 과연 여기 있는 생선가게 주인장은 학창 시절에 장래희망으로 이 업종을 꿈꾸셨을까 궁금해졌다. 떡집 가게 사장님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장래희망을 떡집 오픈이라고 적었을까? 문구점 사장님은? 길을 걸으면서 들어오는 모든 간판과 사람들에 눈이 갔다. 버스운전기사님은? 영어 학원 차 운전기사님은? 떡볶이 사장님은? 신발가게 사장님은?



이 글은 어때?


제삼자: 음 난 이해 못하겠어. 이건 생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무표정에 억지로 맞춘 느낌. 무표정이 마이너스로 쳐지는 건 공감 가고 무표정으로 정면만 보는 기사 아저씨 일화 말이야. 타는 승객도 마찬가지잖아 무표 정인건. 난 기사 아저씨 표정을 보지도 않아 교통가드 찍는데 만 보고 자리 찾아가니까

나: 아 그렇지, 그런데도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음. 난 기사 아저씨 표정을 살폈음. 기사님이 한국인이었음 나도 신경 안 썼을 듯. 근데 영국이다 보니까 동양인이 타서 저러나 다른 영국인들한테도 똑같이 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음.

제삼자: 아아 그런가.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이 조심스러웠나.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눈치를 보는 게 이해가 된다. 난 23층에 살고 22층 아저씨를 만날 때 22층 주민은 kt 로고 작업복 입고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인사 잘하고 웃어주길래 서비스직 이서 그런가 kt 잘 팔려고 그러나 이런 생각도 했고 애들 쿵쾅대도 상관없다고 애들이니까 그런 거라고 좋은 말도 해줬는데, 1년 살다 보니 이젠 인사도 시큰둥 받는 것도 시큰둥하데 그래서 애들이 많이 쿵쾅대서 이젠 싫은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괜히 눈치 보고 그렇게 되데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이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거지. 그래 글 추가하니까 말하고자 하는 게 이해가 잘 된다.


[원래 글]

다른 버스를 탈 때는 교통카드를 찍는 나에게 단 하나의 시선도 주지 않고 무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하는 버스기사님을 만났다. 그러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타는 게 별로 안 좋은 건가, 라는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기에도 너무 찰나 같은 부정적이 감정이었다. 이런 감정이 스쳐가고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 이후에야 이성적인 생각들이 뒤를 따라왔다. 매일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버스에서 무슨 패키지 여행객이라고 된 듯이 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거야? 버스기사님이 패키지 투어가이드도 아닌데 일일이 웃는 얼굴을 손님에게 보여야 하는 게 더 이상한 거잖아.


[고친 글]

런던에서 버스를 탈 때 어쩐지 긴장되었다. 버스카드가 오류가 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오른쪽에서 타야 하는지 왼쪽에서 타야 하는지 헛갈렸다. 어느 날, 버스를 탈 때 교통카드를 찍고 고개를 들었는데, 단 하나의 시선도 주지 않고 무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하는 버스기사님을 봤다. 그러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타는 게 별로 안 좋은 건가, 라는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동양인이 타서 저러나 다른 영국인들한테도 똑같이 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알아차린 게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찰나 같은 부정적이 감정이었다. 이런 감정이 스쳐가고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 이후에야 이성적인 생각들이 뒤를 따라왔다. 나도 무표정으로 탔잖아. 한국이라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교통카드 찍는 데만 보고 자리를 찾아간다. 운전기사도 무표정이고 승객도 무표정이다.

제삼자: 어, 이해가 잘 되면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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