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막 마쳤을 때는 글을 제대로 고칠 수 없다. 머리나 마음이 과열되어 있는 상태여서 내가 써 놓은 글의 문제점을 바로 보기 어렵다. 내가 써놓고 마치 내가 쓰지 않은 것처럼 글을 낯설게 바라보면서 객관적인 눈으로 글을 비평해야 한다. 나는 이런 글쓰기의 특징을 이론적으로 몰랐지만 몸소 체험했다. ‘아’ 과연 정말 그러하구나 깨달았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서 근 두 달간 출판사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과연 내가 출판사와 계약을 했고, 그 계약이 세상에서 효력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조용히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했다. 내가 쓴 글이 마치 남이 쓴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때쯤 편집자가 책 양식에 맞춰서 모든 디자인을 마친 원고를 보내주었다. 원고에 대해서는 수정된 곳 없이 말 그대로 작가가 다시 고치는 0교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들이 너무 낯설었다. 마치 남의 글을 읽듯이 아주 객관적으로 고칠 수 있었다.
아니, 여기서 갑자기 다툰 이야기는 왜 나온 거야?
그래서 이 글에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뭐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이 단락에서 다음 단락 넘어갈 때 연결이 안 되는데.
이쯤 되니까 아주 열심히 써놓은 한 단락을 통째로 버리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몇몇 유명한 작가들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쓴 글을 조금 묵혀두고 꽤 시간을 보낸 뒤에, 자기 글이 완전히 남의 글 같이 느껴질 때 글을 고쳐 쓰라. 정말 그게 도움이 된다.
어느 정도 스스로 고쳐 쓰기가 끝나면, 나는 가까운 몇몇 지인들에게 글을 보여줬다.
새로운 점, 이해 안 되는 부분, 좋은 곳, 나쁜 곳, 몇 번 읽어야 이해되는 부분, 이상한 부분, 더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세요.
부정적인 피드백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 돌아온다. 다시 글을 붙들고 고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고치면 고칠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온다. 그다음에는 몇 개의 글을 아무렇게나 끌리는 대로 정해서 소리 내어 읽어본다. 소리 내서 읽으면, 글이 알아서 나를 발로 걷어차 준다. 소리 내어 읽기의 중요성은 내가 영어 강의를 하는 도중에 깨달았다. 여러 사람에게 글을 읽어주고, 내 글에 대한 현장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성인 영어수업을 들으러 오신 수강생분들 앞에서 내가 쓴 글을 낭독했다. 눈으로 볼 때는 찾지 못했던 미숙한 부분들이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니 금방 금방 달려와서 나를 걷어찼다. 글을 읽어주면서, 아, 여기 이걸로 고칠게요. 잠시만. 아, 잠깐 이거 바꿔야 되겠네. 자 어쨌든. 계속 읽을게요.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