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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우니까

밤새 꼬박 어두워야 빛이 새어 나오는 아침이 온다.

by 우수진

이상은의 노래 [비밀의 화원]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향기 나는 연필 / 뒤뜰에 핀 꽃들 / 새 샴푸 / 아침 하늘빛 / 민트향 / 비둘기를 안은 아이


이런 가사를 쓰는 사람은 사는 게 얼마나 꿈결 같기에,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늘 간직하면서 사니까 이런 노랫말이 나오는 거겠지? 아주 어릴 때 미취학 아동일 때 나는 향기 나는 사인펜을 좋아했다. 사인펜 뚜껑을 열어서 괜히 냄새만 킁킁 맡고 뚜껑을 연 김에 종이에 죽 한번 그어대고 다른 펜의 냄새를 맡으려고 또 뚜껑을 열었다.


이 가사를 쓴 사람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이 음표가 되어 날아간다고 말한다. 하늘이라는 종이에 새들이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 음악은 왠지 아름답고 담백하고 자유로울 것 같다. 나는 무척이나 궁금해져서 과연 작가가 가사를 쓸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찾아보았다.


이상은의 인터뷰

“직접 자신이 곡을 쓰고 부르는 가수의 곡을 보면 그 가수의 내면의 기록이 보인다. 나 역시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땐 길을 헤매는 듯 방황하는 분위기의 노래들을 썼다.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었던 거 같다. 모든 방송 체계가 폭력적으로 보였고, 가식적이고 거품으로 가득 찬 허상의 세계가 정말 싫었다. 담다디로 뜨고 나서 목이 쉬었는데 노래를 부르게 해서 그것을 팔아먹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때 당시 하도 울어서 베개가 누런 색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인기도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명의 가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두웠다. 온통 뜯어먹으려고 덤비는 사람들. 아이돌 시스템은 상업적 이유로 구획된 인물들만 의도적으로 포진되어 있잖아. 아픔이나 상처를 겪어본 사람이 남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솔직한 내 얘기를 하니까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거겠지. [비밀의 화원]도 우울증을 겪던 후배를 응원하려고 만든 곡이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에서 좋은 음악이 나온다. 똑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이 된다. 그러고 보니 [비밀의 화원] 속 다른 가사들도 눈에 들어온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 완벽한 사람은 없어 /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 나의 초라한 마음


그래, 이미 힘이 넘쳐나고 행복한 상태에 있다면 힘을 내려고도 행복해지자고도 다짐할 필요가 없다. 어두움만큼 희망을 노래하기 좋은 조건이 또 있을까? 어두우니까 글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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