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나는 희귀병인 이분척추증을 지닌 질병인이자, 그로 인한 장애로 등급을 받은 장애인이다.
(그러나 매번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언급하는 것이 번거로운 관계로, 이하 장애인으로 내 정체성을 말하겠다.)
오늘 나는 마침내 벼르고 벼르던 선언을 할 것이다. 이 선언을 하기까지 내 인생 삼십 평생이 걸렸다. 그만큼 나는 내가 뒤집어 쓰고 있던 '이것'을 벗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이것'을 벗게 되면 나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고 기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야 한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나는 용기를 내려고 한다.
저 지지, 오늘부터 비장애인 코스프레는 관두겠습니다!
내내 벼르고 벼르던 선언이다. 이제 이렇게 삭제할 수도 없는 글로 남겨놓았으니, 나는 내 자신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노력이라는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겉으로는 보기에는 장애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으면 특히 그렇다. 걸을 때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나 티가 난다. 이십 대에는 걸을 때에도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놓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유리할 때에는 장애인이라는 점을 밝혔고, 불리할 때에는 입을 꾹 닫고 장애인이 아닌 척했다. 애초에 말할 필요도 없긴 했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감출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장애인 같지 않은 장애인이니까! 그 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장애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방증임을, 시간이 지나 장애가 심화되어가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나는 내가 당당한 장애인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냥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하는 장애인이었던 거다.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하는 장애인은 누가 봐도 코스프레를 했고, 그 본질은 장애인이다. 결코 비장애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내가 노력하면 비장애인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장애는 내 노력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님을 어린 시절 의사선생님의 차가운 말로 인해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숱한 장애 극복의 서사를 놓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노력해서 나아질 수 없다면 비참하니까. 너무 슬퍼지니까.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관두겠다 선언한다고 해서 패배주의에 빠지겠다는 것은 아니다. 장애라는 울타리를 치고 이 안에서 나는 못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그냥 앉아있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잘 가름하고 내게 맞는 생활방식을 찾아나갈 것이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리해서 극복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하지 않을 것이다.
팔 없는 원숭이가 다리로 나무를 올라 바나나 먹는 모습에 박수 쳐주는 세상에게 나도 다리로 나무를 올라보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팔 없는 원숭이도 나무에 오를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달라고 머리띠를 싸매고 농성할 것이다.
누군가는 내 요구가 허무맹랑하다고 나무라며 앞서 다리로 나무를 오른 위대한 예시를 내게 들이밀며 너도 "노오력" 좀 해 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사회구성원으로 제 기능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복지를 요구한다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 브런치북은 이런 나의 결심을 담은 브런치북이다.
10대부터 시작해서 20대를 거쳐 30대가 된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크고 작은 투쟁과 어려움들이 내게 있었는지, 또 어떤 상냥함과 배려가 나를 다부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는지에 대해 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당당하게 선언을 "완성"해보일 것이다.
나는 나, 질병이 있든, 장애가 있든,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내게 뼈저리게 알려줄 것이다.
나의 여정에 여러분이 함께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