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싫다면 (장애 등록) 하지 않을게

3. 장애를 '선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by 지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애인은 보통 선택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된 사람들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그렇다. 누가 좋아서 장애인을 하겠는가? 이런저런 혜택이 있더라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질병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장애를 얻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 '장애인'이 되는 것은 내가 선택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정확하게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2003년, 내가 열 살일 무렵의 봄 또는 가을이었을 것이다. 외가 가족들과 함께 우리는 에버랜드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놀이동산에 오게 되어 잔뜩 신이 났던 나는 자리에서 펄펄 뛰다가 엄마가 꺼내는 수상한 카드를 보았다. 저게 뭐지? 하는데 엄마가 눈이 마주치더니 조용히 나를 커다란 나무 뒤로 불러냈다.


"지지야. 이건 장애인 복지 카드라는 거야."

그러면서 엄마가 보여준 카드 속에는 얼마 전 찍은 나의 증명사진이 있었다. 올백머리띠를 하고 체육복을 입은 채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내 사진 옆에는 장애등급 3급이 적혀 있었다. 엄마는 이어 말했다.


"이게 있으면 놀이공원 할인을 50% 받을 수 있어. 그리고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그래서 신청한 건데 네가 싫다면 하지 않을게."


엄마의 말에 어렸던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공원 할인도 받을 수 있고, 그 외에도 쓸모가 있다니. 그럼 좋은 거잖아! 나는 그렇게 법적 '장애인'이 되었다.


나는 그 순간의 기억이 묘하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자라서 보니 중증 장애인의 혜택은 여러 모로 많았다.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큰 만큼 보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싫어! 라고 매몰차게 말했더라면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걸 걱정하며 몰래 숨기고 혜택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내가 그때 싫다고 했다면 몰래 숨기고 혜택을 받았을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엄마는 숨기지 않았다.)


이때였을 것이다.


내 안에서 '장애'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순간이.


그 뒤로 장애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냥 나는 나고, 장애가 나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재활병원에서 재활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나는 두 다리에 빨간색 잠자리가 그려진 석고보조기를 차고 있었다. 재활병동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몹시 평범하고 심지어는 트렌디하기까지 했던 나의 석고보조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의 눈에는 너무나 유치하고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보조기는 불편하기까지 했다. 계단을 오를 때면 발목 관절 부분이 삐걱거리고 아파서 어쩔 때는 빼버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불편해서였을 뿐 나는 단 한 번도 내 보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내 걸음걸이를 보고 남자애들이 깔깔 비웃으며 따라해도 주눅들지도 않았다. 지금은 생각도 안 난다. 뭘 어떻게 놀렸는지 오히려 궁금해질 지경이다.


나는 나를 놀리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보조기를 들어보이며 이건 굉장히 비싼 거(15만원)라고, 이걸 망가뜨리면 얼마인지 아느냐며 오히려 당차게 협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단단한 걸 보여주겠다고 보조기 뒤꿈치로 책상을 탕탕 치며 이걸로 맞아볼래! 으름장을 놓았다.


'장애'를 선택한 순간부터 나는 나의 '보조기'도 선택한 것이었기에, 부끄러울 일이 없었다.


장애인의 정체성을 획득한 나는 누구에게든 내가 장애인임을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오히려 혜택에 대해서 부풀려서 자랑하며 내가 장애인이라서 좋은 점을 부각했다. 생각하면 철없는 행동이었다. 내가 부풀리는 것을 그만두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만난 동기가 했던 말 때문이다.


"와! 나도 그럼 당장 도로에 뛰어들어서 어디 하나 부러진 다음에 장애인 할래."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으면서 하하 넘겼지만 속으로 굉장히 "뜨악"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악의가 있었다기보다는 장애를 가진 나를 배려한 한 형태일지도 모르고, 내 허황된 말로 인해 잘못 갖게 된 장애에 대한 선망이었다고 생각한다. 갓 대학생인 나는 계단도 척척 오르내리고 어디든 가는 슈퍼 비장애인 같은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니 친구 입장에서는 얼마나 "꿀" 같아 보였겠는가.


실제로는 사실 무척 힘들었음에도 나는 내가 티가 나지 않는 것을 이용해 괜찮은 척 장애인부심을 많이 부렸다. 나의 장애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배변장애다. 배변장애는 이분척추증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인데,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거나 말하기 어려운 장애인 데다가 관리 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배변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프로이트가 지겹도록 말하기를, 인간은 항문기를 거쳐서 제대로 된 성인이 된다고 했다. 그만큼 배변은 중요하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걸 생각할 때마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소변이나 대변을 다른 사람들처럼 조절해서 눌 수 없었다. 그런 감각 자체가 없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카테터를 쓰고, 관장을 하게 되기 전까지 나는 오줌을 누기 위해서 내 배를 손톱으로 찍어 누르고, 대변은 꽉 차면 설사를 하거나 내가 손으로 파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소변, 대변을 숨겨서 처리해야 하는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평생 교육받았던 나는 좌절스러웠다.


나는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여덟 살 무렵 도뇨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학교에서 도뇨하는 데에 트라우마가 생겨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근 60년 된 학교로 무척 오래된 학교였다. 그 탓에 화변기 칸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쪼그려앉는 것을 못했다. 그래서 어떡하지 고민하던 차에 장애인 화장실이 생겼다. 장애인 화장실은 깨끗하고 넓었다. 무엇보다 양변기였다. 그래서 나는 점심 쯔음 해서 도뇨기를 가지고 가 그곳에서 소변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장애인" 화장실인데 누가 쓰는 걸까?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밖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러다 마침내 일이 터졌다. 호기심을 못 이긴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보라고 선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 화장실은 "넓고 깨끗하다" 그래서 문의 열고 잠그는 버튼에 양변기에 앉아서 손이 닿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랬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놀라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열지 마! 안에 사람 있어!" 하지만 그 말에도 결국 문은 열렸고, 문이 열리자 아이들은 언제 호기로웠냐는 듯 파스스 흩어져 나만 홀로 남았다. 나는 양변기에 앉아 도뇨기를 빼지도 못한 채 훌쩍훌쩍 울었다.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가 선생님에게 이 일을 전달하자 선생님은 해결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주의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내 전용 화장실 메이트를 붙여주셨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정해진 친구들 중 한 명에게 말하고 그 친구와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스러웠다. 나 혼자 가야 할 화장실을 혼자 못 가게 되어 친구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도 싫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업시간은 길어졌고, 그걸 컨트롤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그때부터 학교에서 도뇨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관장은 하지 않았어서 설사로 인한 배변 실수가 잦았다. 그때마다 나는 학교에서 재빨리 조퇴해야 했다. 가끔 수군거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뻔뻔하게 아닌 척 다녔다.


한 번은 이동수업 시간에 소변이 샜는데, 하필이면 나는 이동한 교실에서 맨 앞자리였고 그 의자에는 통풍을 위해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아래로 오줌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봤을까 안절부절했다. 눈물이 나는 것을 꾹 삼키고 모른 척 아닌 척 치마 뒷면을 앞으로 돌렸다. (당시 교복 치마는 앞 뒤가 완전히 똑같은 통자여서 가능했다.) 그리고 바로 배가 아프다고 친구들에게 선생님께 전해달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샤워를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누우니까 서러운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세상에 이렇게 대소변 못 가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있나? 차라리 이게 심장이 아픈 것이었다면 차라리 대놓고 말해서 도움이라도 구할 수 있지, 똥오줌은 단어만 들어도 더럽고 지린내난다. 인간구실 못하는 것 같다. 어떻게 평생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이 비밀만큼은 절대 말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에게서였다.


선생님은 내가 친구들에게만 내용을 전달하고 조퇴한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으셨다. 나는 사과드리고 다음날 선생님과 함께 단둘이 상담실에 앉게 되었을 때 나의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게, 선생님께서 집요하게 추궁하며 화를 내셨기 때문이다. 나는 울컥해서, 소변을 지렸다고. 그래서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임신했을 때 잠깐 요실금을 겪어봐서 네 마음을 알아.


하지만 그래도 너는 교무실에 와서 내게 말을 하고 조퇴했어야 해.


선생님 딴에는 위로하려고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아온 나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공감의 발언이었다. 오히려 충격적이었다. 어떤 게 똑같은 거지? 내 무슨 마음을 아신다는 거지? 소변이 줄줄 새서 엉망이 된 치마를 가방으로 겨우 가리고 집에 갔었다. 그 상태에서 교무실에 간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나를 보고 이변을 알아차린 애들이 나를 구설수에 올릴 것이 뻔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정말 펑펑 울었다.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정도다.


세상에 정말 나 혼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멀쩡하게 생겨서는 배변 실수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보행장애를 생각하며 이것도 차라리 다른 장애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피가 나온다거나 심장이 아팠다면 나는 기꺼이 친구들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그건 부끄럽지 않은 '장애'였다. 배변 장애는 내게 '장애'가 아니었다. 나이가 먹어서 배변실수를 하는 건 거동이 불편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 나는 걷는 것도 이상하고 배변 장애도 있는 걸까. 나는 대체 뭘까? 외딴 별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잘 생각해보면 어렸던 나는 배변장애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티 안나는 장애인으로, 비장애인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노력해도 나의 장애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였다 생각하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못 받아들이고 계속 '비장애인 코스프레'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건 내가 배변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분척추증 캠프에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로 멘토로 참여하면서 나는 나와 같은 질병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나보다 어린 환우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건 정말이지 소중한 일이었다. 내가 진작에 나와 같은 환우들을 알았더라면 덜 힘든 사춘기를 보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질병명과 동반되는 장애, 그를 관리하는 방법... 그 캠프에서 배웠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때의 추억은 아직도 내게 따스하고 포근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누가 느리게 걸어도, 누가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이상하게 걸어도, 화장실에서 아주 늦게 나와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했다. 그것이 아주 당연했다. 질병인들로만 둘러싸인 환경에 놓여지는 것은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질병과 장애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질병, 장애 후배들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일어났다. 시야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평생 꽁꽁 숨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배변장애에 대해서도 이렇게 글로 써낼 수 있게 되었다.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그만두기 위해서는 꼭 내려놓아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이 글을 본 사람이 나에 대해 뒷말을 하거나 나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조금만 내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도 나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어딘가에서 나처럼 '나 혼자인 것 같아' 힘들어할 사람에게 이 글이 가닿기를 원한다. 어딘가에서 나처럼 외로워하며, 나 혼자만 고통을 겪고 있다고 느낄 사람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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