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분척추증 힐링캠프, 그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며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나의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했다. 희귀난치병인 줄도 몰랐고, 이 병이 왜 어떻게 생긴 것인지(이건 사실 의사 선생님들도 모른다. 추측만 해볼 수 있을 뿐, 이분척추증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나와 같은 병과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늘 혼자인 것 같았다. 세상에 배변장애를 지니고도 멀쩡한 외양을 가진 건 나뿐인 줄 알았다.
배변장애는 보행장애와 달리 쉽게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 그나마 병을 알고 있는 가족에게 이야기하지만, 가족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한번은 배변장애에 대해 힘듦을 언니에게 토로했는데, 언니는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기저귀를 하고 다녔고, 놀러왔던 친구가 우리집 화장실 한켠에 쌓인 기저귀를 보고 내 소문을 나쁘게 낸 적도 있었다. 나는 그래서 기저귀가 싫었다. 어떻게든 떼고 싶었다. 자라서 겨우 관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며 기저귀를 하지 않게 되었다. 언니는 나를 걱정해서 해준 말이었지만 나는 그때 지구에서 내가 뚝 떨어져나온 것처럼 외로운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도 평생 누가 날 이해해준다는 건 어렵겠지 하던 중, 세브란스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내게 '이분척추증 힐링캠프'에 멘토로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권해주셨다. 힐링캠프도, 멘토가 무슨 역할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나는 하겠다고 대답했다.
2박 3일간 진행되는 힐링캠프에서는 이분척추증을 가진 중학생 아이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힐링캠프를 기획하신 선생님께서는 기획의도에 대해 간병에 지친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고 아이들에게는 자립적으로 자신이 생활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다고 설명하셨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렇구나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발한 힐링캠프에서 큰 전환점을 마주했다.
병원에서 모여 간단하게 오티를 진행하고, 목적지인 캠프 장소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전만 해도 나는 내 또래의 멘토들, 그리고 중학생 멘티 아이들을 보면서 그저 반갑고 앞으로의 캠프가 설레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착해서 2박 3일을 보내는 동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분척추증의 발생 원인과 경과, 배변 관리 방법 등을 배우는 멘티들과 배우고 활동하며 친해지는 동시에 밤에는 함께 방을 쓰는 멘토들과 그간의 경험을 나누었다.
그때 많이 놀랐던 것이, 자신의 배변장애를 솔직하게 상대에게 털어놓고 연애하는 멘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나 말고도 다른 멘토 언니도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는지 너무 신기했다. 평생 숨겨야 하는 것, 나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이해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배변장애였다. 같은 질병을 가진 우리끼리라면 모를까 비질병인에게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내 입장에서는 금기를 깬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이야기해준 경험 덕분에 내가 믿고 있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행장애라면 모를까 배변장애는 정말이지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이 비밀을 털어놓으면 나를 기피할 거라 생각했다. 또 내 뒤로 수군거리는 소문이 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한폭탄을 안은 것처럼, 혼자 '절대 들키면 안 될 비밀'을 만들고 벽장 속에 숨어서 홀로 울었다. 근데 그 친구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내가 평생 움켜쥐고 있던 두려움이 정작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글을 쓰며 문득 다시금 깨닫는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에세이를 쓸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친구가 말해준 경험이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언니는 정말 키가 크네요."
나보다 키가 작던 한 멘티 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내가 속 없는 사람처럼 더 자랄 거야, 말하자 그 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성장판이 닫혔어요. 그 뒤에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렇구나 정도로 대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마음은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문득 중학생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내 처지를 한탄하며 세상을 원망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달랐다. 자신의 상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병을 알고, 그로 인해 겪는 증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뜬금없는 깨달음이었을지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한 병명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법적 장애인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이외에 정보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몇 번이고 병원에 갔고 수술도 하고 입원도 했지만 누구도 내게 내가 무슨 병인지 왜 이런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을 나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여력이 없어서, 대학병원은 빠르게 진료를 보고 다음 환자를 진찰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진료받고, 검사 받고, 결과를 듣는(어쩔 때는 듣지도 못했다)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나조차도 알고 싶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병이 있다는 건 주어진 조건 같은 것이었다. 알아보아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내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달랐다. 스스로의 병명을 알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첫 단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후로 힐링캠프를 계기로 이분척추증 세미나 등 여타 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환우로서 경험을 발표하는 자리에 서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어릴 때 저는 제가 무슨 병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미나에 참여한 부모님들께 꼭 전하고 싶었다. 시간이 걸리고, 아이는 어려서 이해를 못할 것이라 생각하셔도, 아이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아이가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과 연결되는 발판이 되어줄 테니까.
실제로 힐링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은 이분척추증에 관한 구체적인 교육을 받은 뒤 자신의 몸 상태를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캠프를 기획하셨던 선생님의 의도처럼 아이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자립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자유롭게 실패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다.
힐링캠프의 일정 중 어딘가로 이동할 때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보행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는 조금긴, 그러나 보행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짧은 거리를 우리는 아주 느리게 걷고 있었다. 도심이었다면, 비질병인, 비장애인들 사이에 있었다면 빨리 좀 가라고 핀잔을 받거나, 왜 아픈 사람이 나와서 길을 막느냐며 눈살을 찌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괜히 조바심이 들고 초조해져서 급히 걸으려 하다가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핀잔을 주지 않았다. 느리고 이상한 걸음으로 걷더라도 구경하는 듯한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우리' 사이에서는 그것이 당연했다. 비질병인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을 우리의 행진은 사실 평범한 것이었다.
한적한 시골이라 우리만큼 많은 사람은 없었다. 다수가 된 '우리' 속에서 나는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그 해방감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나의 질병과 장애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세브란스병원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정말 멋진 문구다. 하지만 나는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의 이분척추증은, 그로 인해 파생된 장애는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들이다. 잠깐 걸렸다가 마는 감기나 장염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나는 영원히 해방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고통스럽고 슬픈 사람일까?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다른 사람들처럼 가끔 고통스럽고 가끔 슬프지만, 질병으로 인해 늘 고통스럽고 슬픈 것은 아니다.
내가 질병으로 인해 힘든 이유는 내 몸 때문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나를 불완전하고 어떻게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 나는 힘들다.
어릴 적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병실을 돌며 전도하러 다니는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이런 형벌을 받은 것이라고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실에 있던 사람 중 누군가는 화를 냈지만,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회개했다. 수긍한 것이다. 지금 내가 아프고 힘든 것은 모두 "내가 잘못 살았기 때문"이라는 명제를.
이들이 하루 아침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장애와 질병을 어떤 시련이나 잘못에 대한 일종의 벌로 인식해온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유구하다. 나도 어릴 때는 이게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과학이 이렇게나 발전한 마당에 이런 낡은 미신을 맹신한다는 것이, 질병에 대한 시선과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는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쉽게 질병에 걸린 이들과 장애인을 동정한다. 좋은 마음으로 쾌유를 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 나을 수 없는 질병을 가지고 내 몸과 타협하고 조율하며 사는 삶을, 내 장애를 관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보려하지 않는다. "당신이 노력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아픈 사람들에게 이 말은 당신이 지금 건강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노력 부족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오랜 시간 이 건강 예찬론을 맹신했다. 내 노력으로 내 아픈 몸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프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 나도 '정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표준은 늘 건강한 몸에 맞춰져 있다. 나는 그에 도달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렸다. 하지만 나의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나는 낫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이 아니다. 나는 나다. 내 상태는 비정상이 아니다. 세간이 보기에는 나를 비정상이라 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지금 내 몸 상태가 정상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정신승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몹시 이성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회가 말하는 정상값, 아프지 않은 몸은 허상이다. 우린 모두 살아가면서 어딘가 아프기도 하고, 잔병치레를 겪기도 한다. 뜬구름 같은 정상값을 따라잡으려 헛수고를 해선 안 된다. 자신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정상값을 세워두고 내 몸과 비교하다 보면, 정상값과 다른 내 몸을 미워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잡으려 애써도 정상 신체는 노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멀어진다. 평생 내 몸을 미워하고 탓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다.
한때 나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이 나를 이렇게 낳았느냐고 따졌다. 내 몸이 너무나도 미웠다. 내 삶은 비극으로 낙인 찍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몸에게 손을 내밀어본다.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몸을 미워한 적이 있는지. 지금도 미운지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미워하기보다는 자신의 몸과 화해하기를 바란다. 미워하는 대신 내 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아껴줘도 모자랄 시간에 내 몸을 미워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