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앉은 당신은 장애인입니까?

10-2. 나의 소리냄이 누군가의 침묵을 지켜줄 수 있다면

by 지지

언니와 일본여행을 갔을 때였다. 언니는 내게 노약자석에 앉으라 말했고, 지쳐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어떤 남자가 다가와 자신의 ID카드로 보이는 것을 내밀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장애인입니다. 여기는 장애인만 앉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장애인입니까? 어딘가 상기되고 화난 표정의 그는, 아마도 내가 "멀쩡하면서" 그 자리에 앉은 것처럼 보여 부당하게 느꼈을 것이다. 고압적인 태도에 나는 움츠러들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기분이 몹시 좋았다!


네! 저는 장애인이에요!


내 말에 씩씩거리던 남자는 무어라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방금 있던 대화에 대해 언니에게 번역하여 말해주자 오히려 언니가 화가 났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픈 내 동생을 재단하려 들다니! 언니는 나에게 너도 빨리 복지카드를 꺼내서 보여주라고 했다. 언니는 남자를 대놓고 째려보기도 했다. 나는 마지못해 내 카드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주며 한국의 장애인카드라 말했다. 남자는 그때도 머쓱한 듯 별 말이 없었다.


나에게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준수해보이는 외관의 젊은 여성. 자리에 앉으면 티도 안 난다. 그렇다보니 몇몇 노인들은 노골적으로 내 온몸을 스캔하듯 훑었다. 시선이 불쾌해진 내가 못이겨 왜 그러느냐 물으면, 아주 당당하고 큰 목소리로 "아! 장애인인가, 임산부인가 해서!"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나도 지지 않고 큰 목소리로 답했다. "장애인이에요. 장애인도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어요!" 때로는 피곤하면 "이제 알았으니 보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매번 대응하기 위해 촉을 세우고 있는 일은 지치는 일이다. 나는 노약자석에 앉으면 다리는 편했지만 마음이 시종일관 불편했다. 또 누군가가 불쾌한 시선을 보낼까 겁이 났다.


정말 너무 피로할 때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처주는 방식으로 수동공격을 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전철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노약자석에 앉았는데 너무 힘이 든다, 사람들이 나를 곱게 보지 않는 것 같다. 난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데 매번 이런 시선을 받는 게 힘들다. 그렇게 말할 때면 흘긋대는 시선들이 어느 정도 납득을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 말로 인해 상처받을 내 가족과, 그 말을 뱉음으로서 내 마음에 긋는 상처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타인과 싸우고 지하철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전철에서 내리면 무수히 많은 계단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간 없이는 올라가기 힘든 계단. 그렇다고 엘레베이터를 타자니 200m를 걸어가야 한다. 어떤 곳은 장애인 픽토그램을 왜 붙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나 고생해서 걸어갔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곳도 있었다. 장애인 픽토그램은 장애인이 승차하는 곳에도, 엘레베이터에도, 모르겠다 그냥 장애인이 들어가면 다 일단 그거 하나로 퉁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올라간 대합실에서 또다시 지상 출구로 나가는 길은 너무나 많은데 엘레베이터가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나는 그게 내 앞의 미래인 것만 같아 막막했다.


서른이 된 지금은 이런 경험들이 쌓여 지하철을 피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몇 없는 장애인 대중교통의 수단을 내 손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맞나? 내 잘못도 아닌데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을 포기하는 게 정말 맞나? 지하철을 불편해하는 것은 '내'가 맞나?


아니다.


그건 내가 아니다.

나를 불편해하는 것은 지하철이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이다.


한정된 자리, 피곤한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 그곳에서 서 있는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이고, 앉아있으면 노약자석을 차지한 무도한 젋은년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나로서 지하철에 탑승했을 뿐인데 "왜 맞지 않는 몸으로 지하철을 탔느냐"는 시선이 칼이 되어 나를 찌르는 것처럼 느낀다.


나도 남들처럼 이동하려 했을 뿐이다. 직장으로, 병원으로, 집으로. 그러나 지하철은 나를 이동하는 사람이 아닌 배려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불완전한 몸으로 만들었다. 내가 서 있으면 그 자체로 나는 내 앞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압박을 주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앉아 있으면 그 자체로 젊은 것이 상도덕 없이 노약자의 자리를 뺏었다며 노려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나는 그 시선들에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하며 입을 다물질 못했다. 매번 입을 열었고, 다툼이 되어 이목을 끄는 날이 많았다. 젊은 년이 왜 이렇게 말을 잘하느냐는 비아냥도 많이 받았다. 내가 한 말은 늘 똑같았다. "장애인도 앉을 수 있어요. 젊은 사람도 아플 수 있어요. 젊은 사람도 앉을 수 있어요." 너무 지겹고 답답했다. 나는 이제 입을 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또다시 내게 물어오면 답을 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단하려 들면 그 눈빛을 받아치며 무례함을 지적할 것이다. 나의 소리냄이 누군가의 침묵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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