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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마음 Feb 24. 2020

노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다.


수줍은 듯 미소 짓는 연노랑의 수선화.

환하게 웃는 샛노랑의 개나리.

침 고이는 탐스러운 진노랑의 귤. 


철마다 자연에서 마주치게 되는 노란색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화학품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노란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촌스럽단 생각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자연의 색만 못하다며 손에 들었다 금세 내려놓기 일쑤였다.

그래서 노란색으로 된 물건이나 옷은 없었다.





몸이 아프고 마음도 아파져 삶의 바닥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계속 떨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막 봄이 되어 자연 만물이 한창 자신들의 생명력을 뽐내던 시기였다.

차를 타고 가다 길가를 따라 샛노란 개나리가 만개하여 가지가 휘도록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자기의 존재를 당당히, 자신 있게 내보이며 생명이란 모름지기 이러하다는 듯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너는 그 혹독히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렇게나 아름답게 피어나 네가 살아있음을 뽐내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숨은 쉰다 한들 죽어가고 있구나...

너는 살아있구나...

부럽다... 

꽃을 피워내고 새잎을 피워내는 너의 그 어마어마한, 끝도 모를 생명의 힘이 부럽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그날 이후로 노란색으로 된 물건이나 옷에도 손이 가기 시작했다.

그저... 그 쨍하고, 싱그런 색을 손안에 쥐고 있으면 매일 죽음을 생각하던 나에게도 그날 봤던 개나리와 같은 생명력을 조금이나마 얻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노란색은 손이 가면 가는 대로 계속 곁에 두는 색상이 되었고 이번에는 파우치도 만들었다.

내가 만든 파우치를 손안에 쥔 채 만지작만지작하다 보면 그때의 장면이 떠오르며 나를 위로해준다.


미술치료에서도 심리치료를 위해 평상시 좋아하던 색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마음이 가는 색상을 골라 사용하도록 권한다. 그 색상이 지금의 자신을 치유하는데 필요한 색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색은 노란색이다.


다른 색을 혼합하여 만들 수 없는 일차색, 노란색.

불안을 뜻하기도 하지만, 빛이자 깨달음을 뜻하는 색.



한동안, 어쩌면 꽤 오래도록 노란색이 나의 일상에서 함께 할 듯싶다. 

그때 그 개나리의 생명력을 상기하며,

생명을 갉아먹는 삶이 아니라, 매 순간 생명을 채우는 삶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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