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도시에 새겨진 리듬

열한 번째 감각 지도

by 귀리


세계는 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만개의 꽃이 피어난다

만 개의 빛이 태어난다.

빛을 향해 원통 안을 들여다보면,
기하학적인 패턴의 세계가 펼쳐진다.

원통을 빙그르르 돌리면
무늬는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사라진다.
꽃이 되었다가 우주선으로,
샹들리에였다가 미지의 생물로,
불꽃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았다가
바닷속 불가사리가 되고, 길가의 들꽃이 된다.
상상을 넘어선 또 다른 존재로 계속해서 변화한다.

패턴의 변주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안에는 무한한 시간이 흐른다.


우리의 눈은 변신을 겨우 따라갈 뿐, 같은 패턴이 있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다. 만화경의 몸체를 돌리는 행위, 작은 조각들의 우연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변주는 단순한 원리로 이루어졌음에도 SF 세계처럼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패턴은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 움직이기도 하고, 고정되기도 하며, 때로는 조용히 변주되며 나타난다. 하나의 형태가 반복되고, 그 반복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규칙이 드러난다. 그 때 비로소, 패턴이 시작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처음부터 만들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한참 뒤에야 그것을 눈치챈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패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잠금 장치를 만들고, 퀴즈를 풀고, 시험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다리 게임을 한다.
패턴을 분석하길 좋아한다. 불규칙에서 오는 불안과 혼돈을 지우고, 규칙과 리듬에서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할 일도 없고, 핸드폰도 없이 빈 방에 누워 있다 보면, 어릴 적처럼 벽지 무늬를 따라가며 패턴을 찾아내곤 한다. 무료함을 달래기에 제격인 놀이. 선반 위 컵이 삐뚤어져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바로잡고, 바닥 무늬에 발을 맞춰 걷기도 한다.

우리의 행동에는 균형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이 있다.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려는 마음. 그만큼, 사람의 마음속은 혼돈일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몸짓 속의 패턴

# 무리를 이루는 사람들

화가 이응노의 《군상》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림 속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어 걷고, 모이고, 함께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걷고, 앉는지— 그 ‘방식’ 자체를 유심히 관찰하게 된 건. 왜 사람은 무리를 지을까. 그 물음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무리를 이루는 사람의 수는 그들이 함께하는 행위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홀수인지, 짝수인지, 몇 명인지에 따라 서 있는 방식, 앉는 방식이 달라진다. 서로의 중심을 맞추고 균형을 이루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작동하는 건 아닐까.

함께하는 행위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달라진다. 평소의 ‘사회적 거리’보다 훨씬 가까워진다. 손을 맞잡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거나, 서로를 마주 보며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좁아진 거리 속에서 함께한다는 감각이 짙어진다.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함께하느냐. 그건 무리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리드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원을 그리며 서로를 마주 보며 연대하거나 공감하려 하기도 한다. 둘, 셋, 넷이 마주 앉아 토론을 하거나, 삼삼오오 나뉘어 작은 무리가 큰 무리를 설계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굳이 무리를 지으려 할까.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물도, 식물도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안에는 공통된 행동의 패턴이 있다.


# 군무를 추는 사람들

광장 한복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군무를 춘다. 축제를 위해 함께 연습하고,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 그 춤을 선보일 때, 그들은 하나가 된다. 과정을 함께하고, 결과를 함께 책임지며 그들 안에 유대감이 생겨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거대한 패턴처럼 보일 것이다.

빙글빙글 돌다가 멈추고,
반대 방향으로 다시 빙글빙글.
리듬을 바꾸며 빙그르르 빙그르르.

사람은 집단 속의 ‘나’와 혼자 있는 ‘나’, 두 가지 존재 방식을 모두 원한다.

무리를 이루고 함께 행동하며 의식을 나누는 것— 그건 관계 지향적인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개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있는 나’와 ‘혼자 있는 나’ 사이의 균형. 그 균형이 무너질 때, 몸과 마음은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읽고 ‘광장’으로 나가든, ‘방’으로 들어간다.

사람은 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 새들의 군무

“같은 목표를 가진, 본능의 움직임.” _ BGM # Lauren | Men I Trust


하늘을 나는 새의 무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왜 함께 나는지, 그 풍경을 볼 때마다 늘 궁금해진다.

그들 안에 내장된 ‘목적지’를 향한 안테나가 무리를 이끌고 나아가는 걸까.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낙오자 없이 최적의 에너지로 도착하기 위해 그들은 최선의 형태로 비행한다.

넓게 퍼졌다가 다시 밀도를 좁히고, 형태가 일그러졌다가도 곧바로 다시 정렬한다. 하늘 위에서 춤을 추듯 비행하는 그 모습은 마치 미리 안무를 맞춘 듯 정교하고 조화롭다. 때로는 즉흥 재즈처럼, 서로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하기도 한다. 전체가 이루는 하나의 패턴. 그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힘에 이끌려, 우리는 새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감각의 지도, 무늬의 세계

# 예술과 일상에 스며든 무늬

세상을 이루는 작은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점과 선, 그리고 패턴으로 이루어진 연결망이 드러난다. 점으로 인식하면 세상은 점으로 이어지고, 선을 따라 보면 세계는 선으로 엮인다.

그리고 패턴으로 인식하면, 세계는 패턴으로 가득 차 보인다.

패턴은 어디에나 있다.

건축, 음악, 춤, 수학, 물리학, 디자인.

정지된 것에도, 움직이는 것에도 숨어 있다.

쇼팽, 바흐, 사티, 베토벤—그들 각자는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음악 패턴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음표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과 구조의 질서를 빚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듣고, 느끼며, 그 안에서 각자의 감정을 공명시킨다.

크리스마스 전구의 반짝임도 그 자체로 하나의 패턴이다. 몇 가지 리듬이 반복되며 대화와 파티의 소음 뒤에 조용히 깔린다. 우리는 그 반짝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익숙해지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나 역시 반복되는 패턴에 기대곤 한다. 같은 곡을 한 시간 내내 반복해도 잘 눈치채지 못할 만큼 힘을 뺀, 배경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음악보다는,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정답 없는 흐름이 좋다. 그런 음악은 오히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어느 날, 동네를 걷다 옥상에 놓인 벤치를 발견했다. 그곳에 앉아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Robert Glasper의 ‘so beautiful’을 반복 재생했다. 하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그 풍경 안에서, 배경처럼 흐르는 음악은 마음을 조용히 비워냈다. 도 닦듯, 아주 깨끗하게.


# 도시에 새겨진 무늬

도시의 벽과 바닥—그 여백에도 패턴은 숨어 있다. 걷다 보면 발밑 보도블록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고, 담장과 축대, 성곽, 광장 바닥, 맨홀 뚜껑 위에도 각기 다른 무늬들이 질서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어떤 목적도 기능도 없이 존재하는 장식이 아니라, 넓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채우기 위한 질서의 형태이자, 도시만의 리듬을 만드는 무늬다. 하나하나의 패턴이 모여, 도시의 여백을 도시답게 만든다.

건물의 입면에서도 패턴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스위스의 한 건축가는 루콜라 공장을 설계하며, 루콜라 잎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해 유리 입면 전체에 펼쳤다. 가까이에서 보면 생소할 수도 있는 그 잎사귀의 형태가, 건물 전체에 리듬을 부여하며 기념적 이미지로 기능한다. 낮에는 햇빛에 투명하게 빛나고, 밤에는 내부 조명에 반응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기하학과 식물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강렬한 감각의 패턴이다.

벽돌을 쌓는 방식, 돌을 깔고 타일을 붙이는 일, 천장의 등을 배열하는 일도 모두 패턴을 따르고 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약간의 랜덤이 더해질 때, 공간은 따뜻한 질서를 갖는다. 반복의 틀 속에서도 개성이 살아나는 방식으로.

파리 세느강변의 아랍문화연구소를 지나친 적이 있다. 겉보기엔 단순한 철제 입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햇빛을 감지하는 작은 센서들이 창마다 숨어 있다. 이 모듈들은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건물 외벽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움직이는 패턴’으로 만든다. 마치 살아 있는 외피처럼, 낮과 밤, 계절에 따라 반응하며 도시와 호흡한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을 향해 달릴 때도, 풍경은 서서히 패턴을 바꾼다. 도시 안의 도로는 격자와 직선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곡선이 늘어나고, 지형을 따라 굽이치는 언덕과 골짜기의 흐름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질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형에 따라 변주된, 익숙한 질서. 도시든 자연이든, 우리는 결국 패턴을 읽으며 걷고 있는 셈이다.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는 수많은 무늬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새겨져 있는 무늬들의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고, 그 표면을 따라 탐험한다. 일상과 예술, 그리고 도시에 새겨진 무늬들은 감각의 지도 위에 새겨진 흔적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패턴의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발견한다.


“수많은 길을 걸어왔고, 우리는 길의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_ BGM # Ylang Ylang | FKJ


자연과 질서의 원형

사람이 만든 패턴은 대개 질서 그 자체지만, 자연의 패턴은 질서와 무질서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연속과 불연속, 반복과 변화, 규칙과 불규칙, 대칭과 비대칭 사이 어딘가에.

자연의 패턴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변주되어 왔다. 혹은, 단순한 패턴에서 시작된 생명의 신비가 수많은 조건을 만나 변주된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종 안에서도 똑같은 패턴은 없다. 기본 구조는 같아도, 환경에 따라 휘어지고, 벌어지고, 달라진다. 균형이 무너지면 변화가 오고, 그에 따라 패턴도 달라진다.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변화의 릴레이가 이루어지며, 더 이상 이전의 질서가 아닌 새로운 질서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자연의 패턴은 질서와 무질서를 모두 품는다.

벌집의 육각형, 해바라기 씨앗의 나선, 눈의 결정체, 식물의 잎, 나뭇가지...

패턴의 인자를 가진 잎이 최초의 제스처를 취하고,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 속 유사한 형태들은 닮은 듯 다른 패턴으로 증식되고,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각 종과 개체는 고유의 개성을 드러낸다.



감각 지도 위에 패턴이 새겨지다

컨트롤 씨(ctrl+c)하고 컨트롤 브이(ctrl+v)한다.

반복의 반복이 반복된다.

패턴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무의식적으로 분석하고,

무리를 지으며 그 안에 스스로 포함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안심하고, 마음과 생각을 나눈다.

사람은 자연의 패턴을 관찰하며 그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나선, 물결, 매듭, 육각형 같은 형태들을 건축이나 오브제로 가져와
그 가능성과 잠재력을 삶 속에서 증명해내려 한다.

복잡해 보이는 것들도, 끝까지 단순화하다 보면
결국 남는 것 안에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우리는 가까이에서, 늘 패턴의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그저 마음을 열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감각 지도 위에, 오늘도 하나의 패턴이 새겨진다.

나는 지금, 그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세계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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