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위를 걷는 사람

열 번째 감각 지도

by 귀리


시간을 걷는 이방인: 시간여행자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시간을 입은 장소들과 그 속에 담긴 오래된 숨결을 찾아 떠나고 싶다.

누구에게나 그런 풍경 하나쯤 있지 않을까. 눈을 감고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지 상상해 보자. 그러다 문득, 꿈속에서라도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상상해본다. 시간 너머의 그 세계를.

모든 장소와 건축에는 시간이 스며 있다. 시간은 마치 보이지 않는 기초처럼, 모든 층위 아래에 깔려 있다. 그래서 시간을 다루는 타임슬립, 타임리프 같은 영화속 설정은 건축가인 내게 늘 매혹적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속 주인공이 1920년대 벨 에포크로 타임슬립하는 것처럼, 나만의 벨 에포크인 ‘그때, 그곳’으로 가고 싶다.

그러면 어떤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면 좋을까.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장소, 혹은 누구나 아는 건물의 과거로 돌아가 시간의 주름이 남기고 간 그 차이를 경험해보고 싶다. 광장이 어떻게 도시의 중심이 되어가는지, 아치 구조가 처음 등장했던 순간은 어땠는지, 알함브라 궁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양식이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그런 상상을 한다. 또 ‘집’이 처음 태어난 순간으로 돌아가거나,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건물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는 여정도 흥미롭다.

새것의 냄새가 이유 없이 설레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시간이 배인 냄새에 더 끌린다. 이런 욕망은 어쩌면 내게도 시간의 겹이 쌓여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과거 회귀의 본능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궤도로부터 이탈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자유의 또 다른 탈출구로서 시간 여행을 꿈꾸게 되는 것 아닐까.

만약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시간여행자는 자신이 도착한 시대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낯선 시공간에서의 이질감은 곧 시선을 바꾸는 힘이다. 관점의 차이는 그를 그곳에서 가장 객관적인 존재로 만든다.

지금 이곳은 논픽션의 세계지만, 상상의 여백이 가득한 장소이기도 하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시간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마치 오래전에 본 영화처럼, 어딘가에서 익숙한 시그널이 들린다. 라디오 시보음, 스튜디오의 기계음, 그 뒤로 DJ의 목소리가 차례로 겹쳐진다.

“음악은 인간에게 잠재된 아름다움, 힘, 조화 같은 것을 끄집어내주는 것. 음악 덕분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 시월 칠일 수요일입니다. 음악캠프, 출발합니다.”

Moonchild의 ‘The Other Side’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낮고 부드러운 리듬이 시간의 표면을 스치듯 지나간다.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눈을 깜빡였던 1초 전, 물을 마셨던 5분 전, 잠에서 깨어난 오늘 아침, 후회로 가득했던 어제, 그제, 1년 전…

[......]

나는 지금, 집이 처음 시작된 시대에 도착해 있다. 이곳은 세계 곳곳의 집의 원형들이 살아 숨 쉬는 장소다. 한 번의 여행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시간의 흐름을 따라 마주할 수 있는 여정이 시작된다.

자, 그럼 어디부터 가 볼까?



“원형 속에는 늘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_ BGM # So Beautiful | Robert Glasper




집의 원형, 본능에서 비롯되다

# 동굴 주거와 집의 원형들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큰 잎을 머리에 이고 비를 피해 다니던 사람들. 그러는 사이 손과 잎보다 안정적인 덮개, 지붕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마치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덮개는 곧 지붕이 되었고, 지붕은 보호를 상징하게 되었다. 지붕이라는 답을 찾자, 추위와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문득 바닥과 벽과 지붕의 조합이 떠올랐다.

‘집’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기능을 수용할 공간을 찾던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온도는 안정적이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어둠은 오히려 안락했다. 집의 가장 오래된 원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동굴 안에 들어서자 낯선 감각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바깥보다 훨씬 어두웠지만, 기온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분했다. 어깨를 누르는 듯한 공기의 밀도, 발밑에 퍼지는 발자국 소리.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들 역시 이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아늑함이라는 감각을 발견했을까. 낯선 공간이었지만, 어느새 느슨해졌다. 아늑함이라는 감각이 스르르 밀려들었다. 이 어둠 속에서 그들과 내가 같은 온기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동굴 생활을 지켜보다보니 바깥의 자유로움이 그립기도 하다. 빛과 바람이 부는 들판에 대한 기억. 그들처럼 나도, 바깥 세상을 꿈꾸며 동굴 밖으로 걸어나왔다.

[……]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주변에서 재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돌, 흙, 풀, 가죽. 동굴을 벗어났으니 이제 벽과 지붕을 대체할 재료들이 필요했다.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두꺼운 나뭇가지로 뼈대를 세운 뒤 건초들을 엮어 그 위를 덮는다. 동굴을 닮았지만, 더 열린 구조였다. 들판 위에 처음으로 세운, 또 하나의 집이다.

밖으로 나온 나는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세상의 모든 빛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 눈이 부셨다. 찬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가 이내 따뜻하게 퍼졌다. 바람은 뺨을 스치고, 풀잎은 발끝을 간질였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의 울음.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동굴 속 어둠이 안락함이었다면, 이 바깥은 자유였다. 가슴이 탁 트이는 감각. 나는 다시 숨을 깊이 들이켰다. 처음으로, 이 넓은 들판 위에 집을 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는 불이 피워지고 있었다. 그들 곁에 조용히 앉아 불빛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지붕 가장 높은 곳에 뚫린 구멍으로 천천히 빠져나가고, 익어가는 냄새가 공기를 감쌌다. 익숙하지 않은 향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불을 둘러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불빛이 벽에 그림자를 만들고, 그 사이를 온기가 천천히 채웠다. 작고 단단한 이 집 안에서, 지금 우리는 같은 불을 보고,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집이, 그렇게 태어나고 있었다.

[……]

북극의 어느 숲으로 갔다. 둘러봐도 눈과 나무 밖에 없다. 눈을 이용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경제적인 방식은 없을 것 같다.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고, 눈을 뭉쳐 블록을 만든다. 그것을 돔 형태로 쌓고, 안에 불을 피우면 블록 사이가 녹고 다시 얼면서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이글루, 눈으로 만든 집이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단단하지만 빛을 품는다. 유리를 대신한 눈은 자연의 필터처럼 빛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계산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 결과는 아름다웠다.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따뜻하다. 빛이 눈을 투과해 들어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유리처럼 빛을 받아들인다. ‘눈’이라는 재료를 구조이면서 동시에 빛이 통과하는 입면으로 사용한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투명한 차가움과 둥근 구조의 온기, 그들은 이곳에서 어떤 감각을 처음 배웠을까. 나 역시 지금, 그 감각을 새삼스레 배우고 있다.
누구나 지금 있는 곳의 환경으로부터 답을 찾고, 그들에겐 답이 ‘눈’이었던 것. 모든 답은 환경으로부터 왔다. 눈, 흙, 돌, 바람. 그 재료들로 우리는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삶의 방식과 감각을 배워간다.



시간을 건너는 수도원

나는 이제 수도원의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타임슬립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폐허에 가까웠지만, 지금 이 수도원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동시에 새로운 숨결을 품고 있다. 한때 금이 가고 마모되었던 벽 모서리들은 어느새 반들반들 새것으로 다시 태어났다.

돌과 흙 냄새가 바람을 타고 스쳐갔다. 벽돌과 나무 마찰하는 소리가 빈 공간을 울리고 있다. 햇살이 투명한 창을 통해 부드럽게 스며들고, 새로 덧댄 건물의 차가운 표면은 따뜻한 공기와 묘하게 어울린다. 수도원의 공기에서 ‘새것’을 뛰어넘는 ‘오래된 것’의 감각이 느껴진다. 나는 시간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는다.

나는 금방 깎아낸 돌의 미네랄 향과, 먼지 냄새가 섞인 오래된 목재들의 낮은 떨림을 듣는다.


그 이후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을 앞으로 돌렸다.

지금 이곳은 전쟁의 한가운데, 임시 병원으로 변해 있다. 병상들이 가득 차 있고, 소독약 냄새와 사람들의 긴장된 숨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상처 입은 이들의 무거운 숨결과 고통이 공간 속을 맴돈다. 나는 그들의 절박함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차가운 바닥과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멀리서 간헐적으로 포성이 들려오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창문틈으로 들어온다. 문득 종소리가 공간 속에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이곳은 병원이 아니라 다시 수도원처럼 느껴진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이 수도원은 온 힘을 다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후 수도원을 찾아갔다.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정비되어 있다. 동쪽 끝에 증축된 공간 너머로 작은 마당이 생겨나고, 햇살 가득한 마당에는 은은한 장미 향이 바람결에 실려 퍼진다. 새로 단장된 돌길을 밟을 때마다 발밑에서 잔잔한 모래 소리가 났다. 나는 그 향기와 소리에 깃든 시작의 설렘과 기다림을 느낀다.


그렇게 평화롭게 계속 지속될 것 같던 수도원의 시간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는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일부가 속살을 드러낸 폐허 같은 모습이다. 먼지가 떠돌고, 낡은 돌벽은 햇살에 바랜 듯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측량하는 사람들의 손길과 스케치하는 평면도 너머로, 이곳이 낭만적인 호텔로 다시 태어나려는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오래된 문 손잡이를 쥐어본다. 차갑고 반들반들한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문틈 사이로 먼지 낀 빛줄기가 흘러나온다. 손잡이를 돌리자 낮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 낀 시간의 층이 조심스레 열린다. 미래로 향하는 설계도 뒤편에서, 여전히 과거가 조용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바람이 건물 틈새를 스치며 지나가고, 낡은 나무 문은 삐걱거리며 열렸다 닫혔다 한다. 먼지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공기 중에 배어있다.


시간을 앞으로 뒤로 돌려 건물의 시간을 지켜보았다. 마치 사람의 인생처럼, 이 건물도 여러 겹의 삶을 지나왔다. 그 굴곡과 회복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서, 나는 시간여행자의 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보았다.
수도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나는 조심스레 손끝으로 더듬는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붙잡아둔다.

수도원의 오래된 돌벽을 쓰다듬으며 문득, 이 모든 건축의 처음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문명의 무게가 얹히기 전, 그 첫 시작.

내가 다시 시간을 걷는다면, 건축이 아직 형식을 갖추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인간의 본능이 처음 ‘집’을 지은 그 순간으로.



집의 원형을 탐험하다

시간의 본질을 품은 공간, 집의 원형.

그 첫 장면을 상상한다.

흙냄새 가득한 어느 동굴 안에 나는 서 있다.

축축한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고, 매캐한 냄새와 이끼의 촉감이 살결을 스친다.

손끝에 닿는 벽은 거칠고, 바닥은 울퉁불퉁하지만 마모되어 부드럽다.

어둠은 모든 감각을 잠시 멈추었다가 하나씩 토해낸다.

긴 정적 끝에 서서히 동굴의 형체가 드러난다.

날 것 그대로의 공간, 바람 한 점 없다.

그래서인지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하다.

새벽 무렵, 바위 틈 사이로 들어온 빛줄기가 바닥을 어루만진다.

아무 소리 없는 침묵. 마치 세상이 이제 막 태어나려는 듯, 모든 것이 숨을 죽인다.

인간이 처음으로 몸을 숨기고, 쉴 수 있던 공간. 아무 장식도 기능도 없는 ‘집의 원형’이 바로 이곳, 동굴 안에 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고, 삶의 패턴이 쌓이며, 하나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반복은 본질을 만들고, 골격을 단단하게 했다. ‘집의 원형’이라는 말엔 이미 시간의 축적이 깃들어 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흙과 바위,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공간.

그 안에서 불을 피우고, 서로 마주보며 삶을 나누던 시간.

그 공간과 시간은 인간의 생존 본능과 공존 의식을 품은 최초의 감각적 장소였다.

그곳의 벽과 천장, 바닥, 입구의 경계는 모호했다. 모서리 없는 공간은 둥글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 안에서 아늑함과 곡선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 느낌은 어떤 건축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본능적 안도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좀 더 튼튼하고, 커다란 공간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돌과 벽돌, 흙으로 된 벽이 세워졌고, 집은 점차 사각형이 되었다. 벽과 지붕의 경계는 점점 명확해졌고, 모서리가 생기고, 구조가 선명해졌다. ‘안’과 ‘밖’이 구분되며, 집은 외부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어의 공간이 되었다.

변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건축 기술이 발달하며, 기둥과 벽, 입면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던 초기 구조는 점점 분리되었다.

입면은 점차 독자적인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구조와 무관하게 디자인되는 수많은 파사드는 건물의 표정을 결정짓는 언어가 되었다. 내부와 외부는 더 이상 같은 리듬으로 호흡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집을 ‘사는 공간’이 아닌, ‘보여지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집의 원형을 탐험하며, 나는 이 일련의 변화들에 대해 생각했다.

더 높게, 더 넓게, 더 다양하게, 더 따뜻하게, 더 시원하게, 더 완벽하게.

인간은 ‘조금 더’라는 주문을 반복하며 집을 변형시켰다. 하지만 그 주문은 마법이 아니라 욕망이었다. 완벽한 건축은 없고, 있다 해도 그것이 좋은 건축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질문한다.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집에서 평온함을 느끼는가?’

앞으로 나아가는 기술을 막을 수는 없지만,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는 있다. 원형은 과거가 아니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감각적 기점이다. 집의 본질은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감정과 행위에 있다.

나는 다시 그 동굴로 돌아간다.

아늑한 어둠, 맨바닥, 새벽녘 한 줄기 빛.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그 첫 번째 ‘집’에서.

그 원형에 가까운 미래의 집을 꿈꾼다.

햇살, 바람, 어둠, 평온함, 부드러움, 따뜻함.

단어들을 모아 머릿속에서 나만의 집을 짓는다.



시간을 각색하는 작업, 리노베이션

이사 갈 집을 찾기 위해 오래된 동네를 걷던 어느 날이었다. 북촌 골목길 끝자락, 전망이 좋아보이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잡이엔 수십 번의 계절이 스며 있었고, 목수가 깎아낸 나무 문은 장마철 습기를 먹은 듯 다소 헐거워져 있었다.

올리브색 벽지 아래엔 여러 겹의 벽지가 층층이 겹쳐 있고, 작은 방으로 향하는 문틀에는 아이의 키를 표시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베란다 끝, 인왕산이 보이는 자리엔 오래된 평상이 있다. 나무판자 위로 오후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 집 안에 가만히 서서, 마치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듯 숨을 고른다.

그 공간에는 집을 거쳐간 사람들의 일상과, 그 일상을 담아낸 집의 기억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이 집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리노베이션은 그 기억을 읽고, 다시 쓰는 일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서로 다른 시점을 나란히 세우고, 집의 이야기를 되짚은 뒤, 삶을 이해하고 지금이라는 감각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나는 그 과정을 ‘시간의 각색’이라 부르고 싶다.

원작을 각색하는 방식에 따라 한 편의 소설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원작의 정서를 강조하고, 누군가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덧입힌다. 건축 또한 그렇다. 어떤 집은 30년 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채 리노베이션되고, 어떤 집은 겉만 남긴 채 속을 완전히 바꾼다. 무엇을 지우고 남길지는 그 공간이 품은 이야기와 마주해야 알 수 있다.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창틀, 손잡이, 계단 밑, 어두운 틈. 그곳에 시간과 손길, 숨결, 기다림이 켜켜이 쌓여 있다.
건물은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을 듣고,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말하는 일이다. 리노베이션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여행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실험실이다.


나는 도시의 높은 곳, 세운상가 옥상 위에 올라선다. 그곳에서 기억의 켜들이 겹쳐진 풍경을 내려다본다. 낡은 건물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올라서고, 다시 시간이 그 건물을 낡게 만든다. 사라지는 것, 바뀌는 것, 변신하는 것, 새로 태어나는 것. 도시는 그렇게 매일 매순간, 시간의 단면을 품은 채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 변화는 결코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는 본래 겹겹의 시간이 천천히 스며드는 유기체다. 어떤 벽은 몇십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어떤 땅은 공원이 되었고, 어떤 골목은 옛길 위에 덧입혀졌다.

어느덧 해가 건물 뒤로 넘어가며, 낡음과 새것의 차이없이 하나의 윤곽이 된다. 그 변화와 지속의 공존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산책하고, 일하고, 쇼핑하고, 사랑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그 도시의 시간 위를 걷는다.
기억이 층층이 쌓인 장소를 지난다.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과,
남았지만 예전과는 다른 것들 사이를 지난다.

나는 그 도시와 장소, 건축의 기억을 읽는
시간을 걷는 이방인, 시간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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