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감각 지도
문.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통과해 나아가는 관문이며, 국경이고,
타임머신이자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는 변환 장치다.
모든 경계는 이곳에서 충돌과 스파크를 일으키고,
동시에 서로에게 스며들며, 타협의 제스처를 주고받는다.
사람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문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
문을 지나기 전, 통과 의식처럼 걸음을 늦추고 그 순간을 음미할 때가 있다.
그 짧은 망설임은 문이라는 세계를 탐색하는 첫걸음이 된다.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오래된 문을 다시 만나는 일도,
상상 속에서 미지의 문을 마주하는 일도 모두 하나의 탐험이다.
세상의 모든 문은 이곳과 저곳,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고, 동시에 구분 짓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기억과 상상의 문을 연다.
이제 나는 사람의 시선을 거두고, 문이라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삶의 결을 품은 문들은 저마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 그때 그 미닫이문
나는 오래된 집의 미닫이문.
어린아이 손에 이끌려 매일 몇 번이고 열리고 닫히며 살아왔지.
벽 안으로 부드럽게 밀려 들어가는 내 방식은 공간을 아끼는 지혜였고,
한겨울엔 뻑뻑하게, 여름엔 습기로 무거워져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렸어.
사람들이 내 손잡이 홈에 손가락을 넣고 쓱 밀어낼 때,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지.
조심스럽거나, 급하거나, 망설이거나, 설레는 손길.
나는 그런 손끝의 감촉을 기억해.
오랜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며 견디는 것이 나의 몫이었으니까.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물건 그 모두를 목격한 일상의 증인.
# 후문
정문보다는 덜 주목받지만, 나만의 B급 정서가 있어.
사실 아이들은 나를 더 좋아해.
내게서 나가는 길은 좀 더 자유롭고,
가끔은 들키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기에도 적당하지.
마이너하다는 건, 주류가 아니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게 아닐까.
# 어느 집 현관문
나는 이 집의 가장 첫인상이지.
내 안에는 또 하나의 문이 담겨있어.
사람을 위한 문 속에, 고양이를 위한 문.
고양이는 유연하게 드나들고,
사람들은 루틴 속에서 리듬감 있게 움직이지.
삶은 그렇게 작은 구멍 하나로도 유연해질 수 있고,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할 수 있지.
# 자동차 부품 공장 창고문
나는 묵직한 강철 몸집을 지닌 창고의 문.
남들과는 다른, 크고 무거운 몸을 가졌지.
매일 부품이 오가고, 바퀴 소리와 기계음이 울려 퍼지는
현장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낮 3시쯤, 바람이 들어오고 햇살이 나를 통과할 때,
잠시 그림자가 생기고, 그 그림자 안에서 나는 조금 가벼워져.
그 시간만큼은 나도 바깥 풍경의 일부야.
# 00 빌라 301호 문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여자가 있어.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 문 앞에서 대화를 길게 나누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그녀가 떠나는 게 늘 아쉬웠어.
기억에 남는 물건도 있어.
이 집에 커다란 오븐이 배달된 이후로는
늘 빵 굽는 냄새, 요리 냄새가 퍼졌지.
그럴 땐 집 안이 삶의 온기로 가득해지면서,
‘아, 이 가족이 집에 잘 안착했구나’, 안심이 되었지.
# 교통섬에 홀로 서 있는 문
나는 이제 문이 아니라, 기념물.
100년은 넘게 이곳에서 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 왔어.
한때는 이 도시로 통하는 입구였고,
지금은 그런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이 되었지.
예전엔 사람들과 짐을 실은 수레들이 드나들었지만,
요즘은 자동차들이 바쁘게 오가.
그래도 몇 백 년이든, 변해가는 풍경을 지켜보는 게 내 일이야.
이 도시의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누구도 모르니까.
문은 어느새 이야기를 멈추고, 담담히 제자리에 서 있다.
나는 ‘문이 사는 세계’에서 나와, 다시 지금 이곳으로 돌아온다.
문은 여전히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며,
우리는 그 문을 수없이 열고 닫으며 일상을 살아간다.
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는 문이 단지 통로나 구조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은 감정이 머무르고, 관계가 교차하며,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물리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장치다.
문은 자신의 이야기를 고요히 마무리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보다 촉각적이고 구조적인 문들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문이라는 사물의 몸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문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이야기에서 구조로, 감정에서 공간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문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풍경.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도그빌]이 떠오른다.
연극 무대처럼 구성된 그 공간에선 실체가 없는 문을 배우들이 열고 닫는다.
관객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실체가 사라졌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아이러니.
문의 실체보다,
그 문을 여는 행위 자체가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에서처럼,
문 앞에 서서 문을 지우고, 문 주변의 일들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삿짐과 택배가 오가고,
즐겁거나 슬픈 소식이 들어오고 나가며,
일상의 냄새와 소리, 공기가 흐른다.
내일쯤 시골에서 보낸 고구마가 도착할 것이다.
30분 전에 주문한 피자도 곧 도착하겠지.
지나간 과거와, 진행 중인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문에 잠들어 있다.
문은 건축의 부속이 아니라, 만남과 경계, 변화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장소다.
사물에 쌓인 시간이 흔적을 남기듯, 문에는 문의 이력이 있다.
‘문’은 단순한 기성품이 아니라,
경계를 이루는 하나의 공간이다.
문은 문틀, 문짝, 문지방, 연결 철물, 손잡이로 이루어진다.
문틀은 벽 안에 문을 고정하는 프레임이고,
문짝은 공간을 여닫는다.
문지방은 그 사이의 경계다.
철물과 경첩, 레일은 이들을 연결하고,
손잡이는 사람과 문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여닫이, 미닫이, 자동문, 셔터, 회전문…
문마다 열고 닫는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른 몸의 움직임과 감각이 다르다.
자동문보다 수동으로 여는 문은 ‘작동’의 감각을 통해 ‘살아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문의 무게감, 크기, 여는 속도 등을 반영한 감각의 디자인은 잠시 뒤 만나게 될 공간의 성격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무거운 문을 여는 동안 천천히 손을 움직이게 만드는 디자인은 성스러운 공간에 들어서기 전, 종교의식 같다.
벽 전체를 문이면서 창으로 계획해 정원이 방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 자연과 집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손잡이 역시 중요하다. 문뿐 아니라 냄비, 버스 등 손잡이는 ‘직접 닿지 않고 조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존재다. 감촉, 온도, 재질 등은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손에 직접 촉감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공간을 체험하는 행위에 있어서 결코 작지 않다.
한겨울, 금속 손잡이를 잡았을 때 손끝에서 퍼지던 소름 같은 감각. 그처럼 손잡이 하나만으로도, 공간을 경험하는 감각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하드웨어는 하나의 문을 이루기 위한 구성 요소다. 하나의 틀과 그 틀을 메우는 콘텐츠가 만나 한 쌍을 이루는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균형감이 느껴진다.
세상을 균형 있게 해 주는 것 중 하나, 문.
문틀은 문을 위해 비어있고,
문은 그 비움을 채운다.
문이 문틀에 닫히는 순간,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하나의 경계를 이룬다.
문이 문틀에서 분리돼 열리는 순간,
이곳과 저곳이 하나로 연결된다.
문은 집과 길이 만나는 사적이고 공적인 경계다.
공간의 위계에 따라 문의 의미는 달라진다.
길에서 대문을 커쳐 현관문으로 들어간다.
길에서 현관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간다.
길에서 공동의 현관문을 지나 각 세대의 문으로 들어간다.
각각의 문이 의미하는 바에 따라 문의 형태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주변 공간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이웃과 만나고, 낯선 타인과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지는 관계의 장이 문 주변의 공간에서 일어난다. 걸터앉을 작은 턱,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알코브, 계단참 하나만 있어도 관계는 그렇게 사소한 경계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접점이 모이면, 동네는 고유한 문화와 분위기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