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감각 지도
15F, 16F... 23F.
땡! 2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도시의 위아래를 오르내린다. 건물 밖이든 안이든 가리지 않고, 땅 위와 아래를 아무렇지 않게 통과한다. 건물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지만, ‘도시의 레벨(높낮이)’을 오르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층마다 보이는 풍경이 다름에도, 5층이든 7층이든 특별히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하다. 이런 감각의 함정은 도시의 레벨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
우리는 중력의 방향과 그 반대 방향으로 끊임없이 Y축을 따라 움직이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이다. 도시를 위아래로 스크롤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마치 X축을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GPS는 우리의 수직적인 움직임을 무시한 채 X축 위의 경로만을 따른다. 실제로 사람의 움직임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 즉 3D의 경로로 이어지는데도 말이다.
지하철 플랫폼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다이어그램으로 머릿속에 이미지화해 본다. 만약 그 이미지에서 배경을 모두 지우고, 레벨을 오르내리는 사람만 표현한다면 감각과 시점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마치 공중에 사람들만 둥둥 떠다니는 애니메이션 장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스크롤의 움직임 속에 도시의 새로운 페이지들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X축과 Y축을 따라 움직이는 하루의 경로를 떠올려보며, 평소에는 인식하기 어려운 ‘도시의 레벨’에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이제 도시의 레벨을 경험할 수 있는 바깥으로 나가보자.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 서울의 서울로(Seoullo).
노후화된 철로와 도로의 정체성을 지우고 도심 산책로로 재탄생한 장소들이다. 공중에 부유한 듯 떠 있는 그 길 위로 올라서면,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이 달라진다. 땅에 맞닿은 지면(Ground Level)은 도시 레벨의 일반적인 기준이지만, 이곳에서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이 건물의 2층, 3층 높이로 완전히 뒤바뀐다.
……
서울로 위를 걷는다.
건너편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자동차와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가로수의 윗부분이 눈높이에 들어온다.
도심 한복판에서 노을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의 여백이 있다.
어쩌면 그건, 도시가 허락한 잠깐의 멈춤일지도.
옆 건물의 3층 카페와 연결된 브릿지를 건넌다.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갈 수 있는 동네를 단번에 가로지른다.
도로의 소음은 위로 올라가며 점점 옅어진다.
계절마다 변하는 나무들 속을 걷는다.
벤치에 앉아 친구와 통화한다.
잠깐의 휴식이 일상을 파고든다.
그 순간, 도시의 소음도, 시간도 잠시 멈춘 듯하다.
……
도시의 높낮이가 바뀜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풍경은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지면’이라는 도시 레벨의 디폴드 값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도심 산책자의 눈에 도시의 ‘레벨’은 또 하나의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선다.
이제 땅 밑으로 내려가 보자.
땅 밑, 지하 세계는 전형적인 밀실이다.
엘리베이터만큼 작지는 않지만, 폐쇄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지하철, 지하상가, 지하차도, 지하보도, 파리의 지하 묘지 카타콤 Catacombes까지.
빛이 사라진 자리엔 조명이 어둠을 대신 밝히고 있다. 이곳이 ‘땅 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는 거의 없다. 지상에서는 창 밖의 풍경 덕분에 ‘땅보다 위에 있다’는 인식이 가능하지만, 지하에는 창도 없고 창밖의 풍경도 없다. 기계로 환기하고, 조명의 조도를 조절하고, 공간의 인테리어를 통해서 비교적 높고 넓은 공간을 만든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지면까지 연결되면서 창 하나 없는 이곳에서 폐쇄공포증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도시의 땅 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많이 뚫려 있다. 조금만 서로 이어 붙이면 거대한 지하 네트워크가 될 수도 있다. 그곳엔 사람과 동물, 식물이 만든 무수한 구멍이 있고, 그 속에 생명과 에너지가 채워져 있다.
도시의 땅 밑을 오가는 우리는 ‘땅속 탐험가들’이다.
우리 발 밑에 존재하는, 다이내믹한 또 하나의 세계다.
전기가 흐르고, 물이 흐르고, 가스가 흐른다.
지하철이 움직이고, 개미가 먹이를 나르고,
개구리가 조용히 겨울잠을 자고, 나무의 뿌리가 뻗어 있고, 지하수가 흐른다.
어떤 장소에서는 ‘위·아래’라는 기준보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라는 경험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
미술관의 관람동선은 보통 1층에서부터 시작해 위로 향하지만, 어떤 전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도록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관람 순서에 익숙하지 않아 낯설게 느껴질 뿐, 중력 방향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동선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함과 낯섦의 차이 때문에 역방향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사무실을 오르내릴 땐 엘리베이터라는 밀실 속에서 층간 감각이 생략되면서, 도시의 높이와 층에 대한 인식이 모호해진다. 반면 미술관처럼 연속적인 동선 속에서는 높낮이에 대한 개념이 훨씬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럼에도 전시를 보는 내내 우리가 ‘도시의 위아래를 지금 오르내리고 있다’고 실감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감각을 느끼는지를 섬세하게 인식하고 관찰한다면 도시탐험의 범위는 훨씬 넓어질 수 있다.
해발고도가 높은 도시 위를 푸니쿨라로 단번에 오르고, 절벽 아래로 번지점프해 강 가까이 내려간다.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꼭대기에 오르고, 스카이라운지에서 1층까지 내려간다. 이런 극적인 방식의 오르내림은 감각을 한 번에 자극할 수 있다. 그에 비해 5층을 오르고, 지하 2층까지 내려가는 일상적인 경험은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계단 한단을 오르면 15~20cm 위를, 계단 한 바퀴를 돌면 3m 위를 올라선다는 단순한 행위가 다른 풍경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도시의 레벨이 우리에게 훨씬 더 친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도시의 한 층을 오를 때마다, 또 다른 세계의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이 든다면 한번 해 볼 만한 탐험 아닌가.
도시의 위와 아래를 ‘인식’하고, 그 높낮이를 몸으로 ‘경험’하기만 해도, 도시라는 세계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응답한다. 자, 문을 열고, 당신만의 도시 레벨 탐험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