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감각 지도
계단 앞에 선다.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그들도 나를 기억할까?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낡은 사진첩을 넘기듯, 지난 시간 속의 계단들을 하나씩 되짚어본다.
기억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 시절의 빛과 바람이 다시 풍경이 된다.
이제껏 만난 모든 계단과 난간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엮어본다.
그 풍경 사이를 오가며, 잠시 머물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곳에서 나는 책을 읽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다. 음악을 듣거나 친구와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고, 햇살 아래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다. 때로는 계단을 두세 칸씩 건너뛰며 장난스레 뛰어오르고, 누군가와 와인을 나누는 작은 축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계단은 예술가들에게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계단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층위를 담고 있다. 수직 방향의 세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경계의 브릿지다. 이곳과 저곳,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연결하는 물리적 장치. 그 위를 걷는 동안 리듬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마음의 여유도 달라진다. 계단참에서 우리는 한 템포 쉬어가고 방향을 전환한다. 이 물리적인 공간 속에서 뜻밖의 해프닝이 일어난다.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계단을 마주했지만, 정작 선명히 기억나는 계단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어떤 계단은 조용히, 그리고 은근하게 삶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계단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천천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계단을 “단절과 연결 사이에 존재하는 유예의 공간”이라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계단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짧지만 깊은 틈이다. 나는 그 틈의 풍경 속으로 탐험을 떠난다.
# 사유의 계단, 니스
가장 먼저 떠오른 계단은 니스의 계단이다. 해변에서 시작해 정상의 풍경을 향해 산을 오르던 그때. 서울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여행길에서 만난 계단이었다. 졸업 설계 발표와 학위 취득 기념으로, 집과 모든 짐을 정리하고 떠난 여행이라 미련은 진즉에 버렸을 터였다.
햇빛은 따뜻했고 바람은 지중해의 깨끗한 공기를 머금은 오월의 어느 오후. 정상에 올랐을 때 지중해의 풍경과 바람, 그 모든 것을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상보다, 계단을 오를 때의 감각과 느낌이 더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계단의 물리적인 특징이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과정 자체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 행위 속에 녹아든 생각의 흐름 때문일 것이다.
계단의 끝에 닿는 순간, 그 오름은 완성된다. 그러나 진짜 정점은, 한 발이 닿기 전의 그 망설임. 설렘과 기대가 가장 고조되는 바로 그 찰나. 그 순간이 클라이맥스다. 마지막의 한걸음 속에 가장 깊은 사유가 스며있다. 프랑스에서 살며 가장 마음이 가벼웠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을지도. 어느 면에서는 계단이지만, 또 어느 면에서는 길이기도 했던 그곳을 다시 걷고 싶다. 계단은 그렇게 길이 되어 사유의 과정을 담기도 한다.
# 기억을 품은 집, 파리
니스에서의 사유를 지나, 이제 나는 몸에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따라 파리의 집으로 간다.
43, Rue de Lyon, Paris. 7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집에서, 그리고 집으로. 매일 오르내렸던 그 계단에는, 몸속 깊이 쌓인 리듬 같은 흔적이 있다. 아니, 기억하기보다는—그랬을 것이다.
다급하게 뛰어내려 가던 아침의 걸음,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올라오던 저녁의 발걸음. 나는 언제나 사람들의 걸음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집에 닿기도 전, 아직 문턱도 밟지 않았는데, 미처 가두지 못한 감정이 발끝에서 흘러나온다. 그 무방비의 마음을, 계단이라는 중간 지대에 자기도 모르게 흘려놓고 가는 것이다.
걸음은 가볍거나 무겁고, 리듬은 경쾌하거나 질질 끌리고, 때로는 쿵쿵 화를 내듯 내딛는다. 계단이 놓인 장소와 상황에 따라, 그 걸음에도 고유한 정체성이 생긴다.
“아…… 너의 마지막 뒷모습도 기억난다. 너는 자꾸 뒤돌아보았지. 무언가 말하지 못한 채, 몇 걸음씩 머뭇거리다가 다시 걷곤 했어. 나는 알고 있었어. 너는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걸. 너의 모든 흔적은 계단 단마다 남아 있어. 발끝의 압력, 발뒤꿈치의 멈칫함, 숨죽이던 한 계단의 정적까지. 하루하루 너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나는 모두 기억해. 나는 계단이니까. 너의 오고 감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네가 나를 매일 지나쳤다는 사실을— 내가 잊지 않는 한,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 나선을 그리는 계단, 공연장
파리의 집은 몸과 기억을 따라 그려지는 계단의 선을 남겼다. 선이 곡선으로 바뀌던 순간은 처음으로 나선형 계단을 만났을 때였다. ‘선’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었다.
자연 속에서 달팽이 껍데기나 해바라기 씨앗, 암모나이트의 궤적처럼 나선의 형태는 익숙했다. 그러나 공간 안에서 나선 구조를 몸으로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마도 뮤지컬을 보고 나온 어느 밤, 그 계단을 만났을 것이다.
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선의 흐름을 따라 걸을 때, 몸은 중심을 향해 조금씩 방향을 틀며 회전한다. 계단은 그 자체로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는 그 제안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중심을 기준으로 원을 그리며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낯선 동작들이 새로운 균형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그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마치 ‘따라 하기’를 하듯, 계단이 이끄는 방향대로 몸이 반응한다. 선이 아닌 곡선으로 나아가는 순간, 공간의 인식도, 몸의 감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오르내리는 배경에 불과했던 계단이, 점점 더 많은 감각과 경험, 그리고 관계를 품어가기 시작했다. 장소마다, 형태마다, 계단은 저마다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왈추를 추듯이 계단을, 로비
중간자, 전이의 공간으로서의 계단은, 때로 우리 몸의 동작까지 이끈다. 어느 공연장 로비. 공연이 끝난 뒤 2층에서 1층 로비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나무 손잡이를 잡았다. 시간에 마모되고 닳은 손잡이를 쥐고, 편안하게 미끄러지듯이 곡선의 우아한 계단을 내려왔다. 손잡이의 끝은 바깥으로 작은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며 끝을 맺었다. 나는 그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아름다운 계단은, 그 위를 걷는 이의 몸짓마저 우아하게 만든다. 나는 그때, 손잡이의 선을 따라, 마치 왈츠를 추듯 부드럽게 내려왔다.
# 몸에 새겨진 계단의 리듬, 지하철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두세 칸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뛰어내리지.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아.
뭐, 이해는 돼. 그래도 그 마지막 두세 칸 정도는 내려오는 데 겨우 2~3초밖에 안 걸리잖아.
그 정도는 기꺼이 할애해도 되지 않을까?
계단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며 오르내리는 구조라,
갑자기 리듬을 바꾸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지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가끔 치수가 조금 어긋난 계단 한두 단에서 사고가 나기도 해.
걷는다는 건 호흡과 움직임의 간격이 중요한 행위인데,
그 균형이 깨지면 심리적으로도 미묘하게 불안해지거든.”
계단은 참 섬세하고 예민한 공간이다. 사람의 신체 조건, 보폭, 경사도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 계단의 치수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 도시 곳곳의 지형과 환경에 맞는 계단들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계단을 사람들은 리드미컬하게, 반복적으로 오르내린다. 그 경험이 쌓이면서 계단의 치수는 어느새 몸에 각인된다. 그런 과정 끝에 ‘계단의 체화된 리듬’이 만들어진다. 그 리듬 속에서는 아주 작은 단높이의 차이조차 ‘삐끗’ 리듬을 잃고 균형을 무너뜨리게 만든다.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는 계단의 치수가 사람들의 행위를 이끌고, 심지어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자, 계단
“기억해? 열두 번째 단 언저리에서 늘 쉬었다 가고 말았던 것을. 1층도 2층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계단을 통과함으로써 단숨에 1층이라는 공간에서 2층이라는 공간으로 연결되지.
우리는 그렇게 중간자이고, 변환을 해주고, 높이를 해결해 주고, 공간 사이에서 전이의 역할을 하지. 어떨 때는 통과의례처럼 그냥 지나쳐가는 곳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복선이 깔리기도 하지.”
영화 속에 계단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단을 밟는 동시에 시작되는 계단의 시퀀스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는 모습으로, 그에 따른 행위를 이끌어내며 마지막 단을 밟으며 끝을 맺는다.
여행 중 만난 골목 계단길 가운데, 유독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두 곳이 있다. 서울의 충신동과 리스본. 닮은 듯 다르고, 다르면서도 닮았다. 하나는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골목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무대 같은 골목이다.
# 골목의 얼굴, 충신동
채석 전망대를 향해 걷던 어느 날, 충신동의 계단들이 문득 떠올랐다. 오래된 담벼락과 낮은 집들 사이로 숨 쉬듯 흐르던 그 골목길의 경사. 그리고 미로 같은 골목길들. '모든 집은 도로에 면해야 한다.'는 법은 이 동네가 만들어지고 한참 뒤에 생겨난 탓에, 무질서함 속에서도 충신동만의 독특한 질서와 방식이 이 골목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충신동의 어느 골목 계단길.
사람들은 여기에서 자주 길을 잃지.
그러니 실망할 필요 없어.
지도를 봐도 제대로 길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차라리 그냥 길을 잃는 게 나아.
기준이 되는 높은 건물 하나만 정해두면 돼.
동쪽, 서쪽, 오르막과 내리막만 구분해도 충분하니까.
시간이 없다면 큰길로 돌아가는 편이 나아.
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이 계단길을 천천히 탐험해 봐.
이건 단순한 길도, 단순한 계단도 아니야.
일상이 스며든 삶의 공간이거든.”
충신동의 계단길은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흐름이 끊어질 것처럼 ‘딱’ 맞아 들어간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집으로 통하는 길목을 만든다.
계단의 가장자리, 집의 입구와 만나는 경계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공간들이 있다.
화분이 놓인 낮은 턱, 걸터앉을 수 있는 조금 큰 턱, 대문, 현관문, 담, 짐을 잠시 놓는 자리,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사이’의 공간들.
밤이면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골목. 나는 계단에 나와 적막을 즐긴다.
골목 위에 걸린 달을 바라보며, 하루의 피곤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저 멀리서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좁은 길을 울리는 구두의 마찰음.
이 골목은 지금, 소리를 품고 공명하는 하나의 울림통 같다. 익숙한 발소리.
또각또각, 또각또각.
# 도시의 얼굴, 리스본
또 다른 골목 계단길. 이번엔 리스본의 구도심이다.
고저차가 큰 도시답게, 이곳 사람들에게 계단은 일상의 일부다. 모두가 계단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계단은 본래, 높이를 작은 단으로 나누어 위와 아래를 이어주는 존재다.
하지만 같은 기능이라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집 안인지 바깥인지, 골목인지 광장인지에 따라, 계단은 다른 얼굴로 태어난다.
리스본의 알파마 지구.
언덕진 지형에 따라 건물들이 테라스처럼 층층이 걸터앉아 있다. 그 틈새를 따라 계단이 흘러내린다.
마치 건물들이 먼저 뿌리내린 후, 그 사이를 잇기 위해 계단이 끼어든 것처럼— 계단은 어느새 담이 되고, 벽이 되고, 삶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된다. 노란색과 오렌지색 파스텔 톤 벽, 불쑥 튀어나온 작은 발코니와 창문들이 계단의 박자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창을 통해 새어 나오는 일상의 소리들. 계단참에서 오가는 이웃의 시시콜콜 이야기들.
이곳은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축적되는, 작고 느슨한 사교의 장이 된다.
창밖에 널어놓은 빨래, 벽화와 낙서, 철제 난간, 오래된 가로등, 계단 끝에 놓인 화분까지.
그렇게 하나하나 쌓인 조각들이, 풍경을 넘어 도시 리스본의 얼을 완성한다.
계단.
그 틈에서 우리는 걷기 시작한다,
빈 몸으로 한 칸씩
오르고 또 내려가며
하루의 리듬을 남긴다.
......
계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누군가의 걸음이 닿고,
잠시 멈추고, 다시 움직이기를.
그 위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흐르며,
가끔은 멈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틈에서
삶의 무게가 조용히 내려앉는다.
......
계단은 단절과 연결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여백이다.
보편적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걸음은 기록이 되고, 리듬은 흔적이 된다.
어제의 계단, 오늘의 계단, 내일의 계단이
서로 다른 얼굴로 말을 건다.
우리는 계단 위에서 아직 쓰이지 않은 일상을 건넌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계단을 오른다.
그 위에서
또 다른 감각을,
또 다른 나를
마주칠 수 있기를 바라며.
......
그리고 다시, 비어 있는 공간.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빈 몸으로,
나는 또 한 칸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