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여기도 저기도 아닌

아홉 번째 틈

by 귀리


가로, 세로, 높이의 체적을 가진 밀실의 공간,

엘리베이터.


기본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다. 매일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7층 사무실로, 13층 집으로.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일상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수직 이동에 익숙해진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공간’으로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이제 그 여백의 가능성을 따라가 본다.

엘리베이터는 용도와 목적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종류로 나뉜다. 승객용, 화물용, 병원용, 전망용, 선박용까지. 언젠가 설치 과정을 본 적이 있다. 건물 바닥에 난 구멍에 유닛을 넣는 방식이었다. 층마다 보이는 문과 버튼은 별도 부속품일 뿐, 건물 구조체와 분리된 하나의 설비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결국 내부 인테리어다. 제품화된 엘리베이터 외에도, 충분히 독특한 분위기의 연출할 수 있다. 다만 기능적 역할 이상으로 디자인하지 않을 뿐이다. ‘이 정도면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은 흥미로운 생각으로 이어진다. 엘리베이터는 동시에 여러 층에 존재할 수 없고, 한 층에 멈춰 있을 때 다른 층들은 비워져 있다. 5층에서 열리면 순간적으로 5층의 일부가 되고, 다시 9층으로 이동하면 9층이 된다. 순간, 공간이 확장되고 또 단절된다. 때로는 층과 층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의 공간이 된다. 고정된 바닥이 아니라 움직이는 바닥. 그 때문에 공간은 끊임없이 변한다.

단순한 장치를 넘어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사례도 있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보르도 하우스. 휠체어를 사용하는 건축주를 위해, 집의 중심을 비워 그 자리에 무대용 리프트를 설치했다. 가로 3미터, 세로 3.5미터. 방 크기의 리프트다. 뚫린 바닥 위아래를 오가며 각 층에 멈추면, 그 순간 완벽한 하나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마치 거실이 집의 중심이 되듯, 리프트 바닥이 집의 중심이 된다. 벽 없는 바닥은 옆 책장에서 책을 꺼낼 수도 있고, 층과 층 사이에서 멈춰 설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층의 개념이 무의미하다.

가끔 상상한다. 만약 이 집의 주인이라면, 공간을 어떻게 쓸까? 엘리베이터를 하나의 세계로 보고 탐험한다면,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판타지 속이라면, 엘리베이터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버튼을 누른다.



닫힌 공간, 열린 세계

#움직이는 바닥

여기는 보르도 하우스. 당신은 이 집의 주인은 아니지만, 지금은 상상 속이다. 마음껏 원하는 대로 공간을 쓸 수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리프트 앞으로 다가선다. 리모컨으로 바닥을 천창까지 올리고 내리며, 공간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어떻게 활용할까,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스르르 흘러든다.

움직이는 바닥이라니, 정말 판타스틱하다. 집 중앙에 뚫린 보이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릴 적 꿈꾸던 판타지 공간이 떠오른다. 2층으로 바닥을 올리기 전, 이 뚫린 공간을 먼저 활용해본다. 바닥 전체를 느슨한 그물로 덮고 아래로 늘어뜨린다. 거대한 해먹, 그물침대다.

남들이 다 가진 장난감이나 물건을 갖지 못해 아쉬워하던 어린 시절을, 이제 어른이 되어 해보는 순간. 그물침대는 바로 그런 의미다.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음악을 고른다. 팔과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누우면,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물이 출렁인다. 유연하지만, 동시에 단단하다.

이제 리프트 바닥을 2층으로 올린다. 뚫린 중간이 채워지며 하나의 커다란 ‘원룸’이 된다. 머릿속 남은 경계의식은 애써 지운다. 바닥에 그림을 그릴까, 작업실로 쓸까? 후자다. 문득 전체를 작업실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이렇게 넓은 작업실을 혼자 독점할 수 있는 행운이 지금 여기에 있다. 중심 공간을 비우고, 커다란 탁자를 리프트 바깥 가장자리에 둔다. 유리창에는 스케치와 작업물을 붙여 즉석에서 업데이트한다. 장비와 테이블을 갖추고, 손으로 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본다. 공간은 최대한 비워둔다. 콤팩트한 작업 공간에 익숙한 당신에게, 여백은 늘 절실했으니까. 이런 넓은 작업실을 독점하다니!

경계를 지우는 대신, 약간의 강조만으로도 공간의 변화를 줄 수 있다. 바닥을 살짝 들어 올려 무대처럼 꾸며도 좋겠다. 책을 낭독하는 밤, 바닥에 음악을 깔고 온다 리쿠의 글을 읽는 상상. 혹은 움푹 팬 곳에 앉아 좌식으로 그림일기를 쓴다. 이 즐거운 경험을 기록해야 한다.

리프트 바닥을 3층과 천창 사이에 멈춘다. 천창을 통해 빛이 쏟아진다.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쓰며, 해변을 떠올리고 맥주와 간식을 펼친다. 낮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니 해가 졌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밤 10시, 모든 조명을 끄고 달을 맞이한다. 천창 너머로 은은한 달빛이 스며든다. 마치 달맞이꽃처럼 몸과 마음이 천천히 피어난다.


#밀실의 공간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전조일까. 텅 빈 복도의 형광등이 깜박인다. 늦은 밤, 사무실을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당신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시간이 길게 늘어진다.

낯선 사람이 타고 있던 기억이 스치며 식은땀이 난다. 홀과 로비를 이어주는 이 공간은 출근 시간의 시끌벅적함과 전혀 다른 공기로 채워져 있다. 혼자든 함께든, 불안의 형태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폐쇄와 낯선 이에 대한 공포를 겪는다. 아무도 없기를.

지이이잉, 땡.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 안심이 밀려온다. 1층까지 짧은 시간을 버티면 된다. 그러나 만약 이 시간이 길어진다면? 사고로 멈춘다면?

엘리베이터는 밀실이다. 폐쇄와 낯선 이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갖는다. 음소거된 듯, 어떤 소리도 섞이지 않은 침묵 속 방. 그 침묵은 공포를 불러오지만, 동시에 일상의 작은 소리들이 주는 안도감을 뒤늦게 깨닫게도 한다.

덜컹. 멈췄다.
……
당신은 이 공포의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비상버튼을 누르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른 곳을 상상한다.


#케이블에 매달린 풍경

이런, 맙소사. 오스트리아 알프스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안이다. 사람들은 가장자리에 서 있다. 유럽 각지의 언어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이해할 듯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아쉽다.

이동 속도가 빠르다. 심호흡. 다시 눈을 뜬다.

케이블카는 엘리베이터와 달리, 유리창 너머 풍경이 실내로 스며들며 공간의 감각을 바꾼다. 탁 트인 시야는 개방감을 주면서도, 현기증을 동반한다. 바람에 흔들린다. 급상승 중. 당신은 아래쪽 시선을 차단하고, 앞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설산이 빛난다. 햇빛이 눈 위에서 쏟아져 반짝인다. 공기마저 하얗게 씻긴 듯하다.

햇빛에 반사된 스노우 스케이프의 깨끗함이 마음을 맑게 한다. 눈을 보면 크리스마스와 어린 시절의 마법 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 아이처럼 감탄의 탄성을 지른다. 그 감정이 공유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케이블 안 사람들은 운명공동체다. 매달린 밀폐된 공간에서, 시간과 경험을 함께하는 그들의 얼굴을 스르르 훑어본다. 기억에 남지 않을 풍경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 슬쩍 자리할 수 있다.

덜컥, 흔들린다.

상상으로 쌓아 올린 세계가 일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당신은 현실로 돌아온다. 멈췄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작동한다.

지이이잉, 땡!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안 초대장

『찰리와 초콜릿 공장』속 엘리베이터는 판타지적 요소를 모두 갖췄다.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이동식 투명 엘리베이터다.

역사를 돌아보면, 엘리베이터의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형, 속도, 안정감만 진보했을 뿐이다. 판타지 영화 속 엘리베이터가 현실이 되려면 시스템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최근에는 자기부상 기술을 이용해 상하좌우 이동이 가능한 엘리베이터 개발 소식을 들었다. 무게를 줄이고 운송능력을 높이며, 공간 절약도 가능하다. 언젠가 우리는 전혀 새로운 엘리베이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본질을 보지 못한다. 제품화된 디자인 뒤에 숨겨진 가치가 사라졌다. 제품화되지 않았다면 대중화도 어려웠겠지만, 그 결과, 이전의 가치는 사라진다. 엘리베이터는 너무 익숙하다.

1층에서 5층, 5층에서 1층.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을 오간다.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쉽게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익숙함에 가려진 여백의 세계.

이제, 엘리베이터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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