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세계
어떤 시기를 통과해 나가는 동안 조금씩 차오르는 생각과 느낌들이 있잖아. 그것들은 때때로 말로 내뱉어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단어나 문장으로 계속 맴돌게 되지.
요즘 떠오르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무한 재생을 하며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다가 밖으로 나올 타이밍이 되었나 봐. 문장이 내 안에 스며들어 더 이상 머릿속에 있을 이유가 없어져버렸는지 툭 튀어나왔지.
Q. 당신 세계의 중심엔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A. 난 나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Q. 그것 말고 다른 것에 관해서요.
[아임 낫 데어]라는 영화 속 여주인공이 인상 깊었던 대사라며 상대에게 질문하는 장면이었지. 이 질문이 왜 그렇게 마음을 흔들었던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돼.
나의 세계의 중심은 어떠한지에 대해.
2021년 7월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중심을 이루는 것들이 존재한다. ‘다들 어떻지?’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중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심이 계속 바뀌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세계의 중심엔 늘 건축이 있었다. 벌써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간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사람들은 그 바운더리를 유지하려 하고, 그 안에서 중요한 것과 해야 할 것들을 일 순위로 삼아가며 중심을 채워나간다. 매우 구심력이 강한 일상이다. 그래서 중심에서 거리가 멀수록 내 삶과는 인연이 없는 무관심의 세계가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바운더리 밖의 세상에 지독히도 무관심한 스탠스를 한결같이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지나고 보니 깝깝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제나 무얼 해도 아웃 사이드에 머무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중심보다 가장자리와 같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늘 정체되어 있는 것을 답답해한다는 것을. 하나에 빠지면 깊게 빠지고 한번 식어버리면 가차 없이 냉정해진다는 것을. 채우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런 사람의 중심이 이제까지 너무 무겁고 단단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무겁고 밀도 높은 공기 속에 갈 곳 잃은 나의 중심. 하지만 그냥 이대로 충실히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던 삶. 머리론 그렇게 생각하지만 마음은 꽉 막힌 채 시간을 조금 더 보냈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그 기척을 저절로 깨닫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았던 변화의 계기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처음엔 우연의 조합인가 했지만 오랫동안 깊게 내재된 생각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동시에 발현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연을 우연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 필연인 것처럼 착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아주 오랫동안 중심에 자리했던 것들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한겨울 햇살에 녹기 시작한 눈이 물로 바뀌는 상태 변화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듯이 중심에서의 이탈은 이제 새로운 질서를 이룬다. 그곳에 반전의 쾌감이 있다. 이탈의 자유로움을 느낀다.
좋아하는 것의 바깥을 둘러보면 잘 모르는 것들, 접해보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의 환경과 선택 속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은 중심에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경험해보지 않은, 선택하지 않은 세계를 깊게 들어가 볼 수 있게 해 준다. 몇 달 동안 추리 소설과 SF소설을 집중적으로 읽었던 때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추리적이고 SF적으로 보였다. 드로잉을 시작한 이후로는 풍경과 사물을 더 자세히, 잘 들여다보게 되었다. 드로잉이라는 제3의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야구에 빠지게 되면서부터는 야구를 일상과 연결 짓게 된다. 어떤 문제를 스트라이크로 시원하게 잡고 싶다든지 같은 상상을 하거나 뭔가 일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는 야구 호수비 모음 영상을 보며 그 경쾌한 리듬에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한다. 일상의 풍경이 변해갔다.
그러고 보면 나를 어디로 이끌어가고 싶은지 시도하고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중심이 바뀔 수도 한결같이 나아갈 수도 있다. 누군가에 의해, 주변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는 있어도 모든 방향은 나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니 핑계 댈 어떤 명분도 없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
원래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질수록 더없이 가벼워져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원심력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구심력과는 다른 가벼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중심에서 고삐를 쥐고 잡아당겨도 자꾸 밖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은 개와 주인의 산책하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목줄이 최대한 닿는 곳까지 가 닿으려 주인과 실랑이를 하는 개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들도 본래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고 연결만 되어 있다면 최대한 가장자리까지 우리는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진지한 사람이고, 이제껏 해왔던 건축과 도시를 탐험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예상치 못한 것들이 튀어나오고, 숨어있던 것들이 드러나 이제껏 유지하던 중심이 아니게 되었다. 한 번의 경계를 넘는 경험이 내 중심과 가장자리의 풍경을 예측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괜찮다. 오히려 한결 자유로워졌다. 이 불안정한, 불확정적인 상태가 매력적이다.
중심을 조금 비워둔다.
비워야 다른 무언가로 채울 수 있으니.
다시 그곳에 서서 미지의 무언가를 기다리게 된다.
이 과정이 가장 나다운 풍경일 것 같다.
당신 세계의 중심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