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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13. 2022

‘마감’이라는 그 모든 의식

에필로그


스물한 번째 세계,

덜 익어 씁쓸하고 단맛이 부족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다가 알맞게 숙성되는 순간이 오면 단 숨에 낚아채 건져 올려야 하지. 수확할 타이밍을 놓치면 너무 익어 신선한 매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프로젝트의 줄기가 곧게 뻗어나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지면, 그때부터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가 마감이라는 골(Goal)까지 직진 모드로 나아가기만 하면 이보다도 더 이상적인 과정은 없겠지.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완벽한 프로세스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마감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바일 거야. 마감’이라는 단어 앞에 완벽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니까. 선택의 순간에는 늘 담판을 지어 결론을 내려야 하고, 그 과정은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로 이어지지. 과정이 충실하지 못한 프로젝트는 불안정한 기초 위에 올린 건물처럼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위태로움이 도사리고 있어 마감 직전까지도 우리를 코너에 몰아붙이곤 하지. 하나의 변수는 몇 개의 변수를 만들어내 생각대로 나아갈 수 없게 되지.

이 글 역시 수많은 마감들 가운데 하나의 마감이라고 볼 수 있을 거야. 찌릿하고 아슬아슬한 마감은 아니지만 이런 마감에도 의식은 있는 법이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형광 펜으로 꾹꾹 눌러 중요함을 각인시키고 싶었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게. 아무리 노력해도 찰나의 짧은 시간에도 연기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이 생각이니까. 내 몸 어딘가를 불규칙하게 유영하며 떠다니는 생각들을 잡고 싶었어. 그 생각들이 곧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 문장들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태어났지.
너에게 보내는 이 편지와 일기, 에세이가 뒤섞인 글을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비움의 상태로 되돌아가려 해. 내 삶이 과정에 있는 것처럼 모든 글은 끝이 나지 않는 과정 속에 있으니 비었던 공간은 언젠가 채워지겠지.



모두 비운 그 곳. _ BGM # Zero | Olafur Arnalds


2022년 10월

마감 전 풍경들

마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보면 그 아슬아슬한 시간들이 저절로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마감 직전에 스릴감 넘치게 제출했던 프로젝트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소름 돋는 짜릿함과 몸서리 처질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 사이의 감정들이 오고 가는 그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게임 속에 설정된 미션들을 집중력을 다해 넘다 보면 클리어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처럼 마감에도 확신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마감이 잘못될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이 생겨난다. 어디에서 그렇게 생겨나는지……


마감의 날짜가 다가오면서 불길한 기운이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이제 뭔가 터질 때가 됐다. 예감된 마감의 변수들이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감 직전의 폭풍전야를 감지한다. 귀로 듣지 않아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마감의 변수들을. 뇌에서의 충격이 피부까지 닿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피가 잘 통하지 않는다. 눈이 뻑뻑하다. 살갗의 털들이 찌릿찌릿 촉수를 드러낸다. 인풋과 아웃풋의 머릿속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잠시 깜깜한 상태로 있고 싶은 심정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도피해 마감이 없는 세계로 가고 싶은 유혹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생각을 멈춘다. 들어온 모든 것을 잠시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어딘가 붕 떠있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적막하다.

하지만…

돌아가야 한다…….

숨을 한 번 깊게 몰아 쉬고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생각을 시작한다. 그렇게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자리에는 터질 것이 터진 상황이다.

…………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침에 어긋난 항목 발견. 계획의 오류. 보고서 파일의 오류. 오타 다수 발견. 텍스트와 이미지 불일치. 이미지 깨짐 현상. 결정권자의 뜬금없는 변심. 법규에 어긋난 사항 발견. 인쇄소에서의 출력, 제본 오류. 마감 시간 임박. 제출장소 이동 KTX 눈앞에서 놓침…….


시간 차를 두고 불길한 소식들이 차례차례 도착한다. 몇몇의 실수와 불운이 중복되는 참사가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해결해야 한다. 그 참사를 막는 것이 후폭풍에 대처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쉬운 일일 것이다.

이제 수습할 시간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몸은 굳고 생각도 여전히 잘 돌아가지 않지만 찾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의 말들을 꺼내 속삭인다.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주문을 되새기다 보면 마음이 이내 차분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된다. 완벽한 답을 포기하면 모든 게 해결 가능한 범주 안에 들어온다. 참 아이러니하면서 유연한 생각이다.

모든 마감이 다 이럴 리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관여되어 있고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기에 문제도 가지각색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연한 자세와 절실한 마음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속 흔들림이 우리를 파고들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는 단단한 목표 하나가 한줄기 빛이 된다. 집중하기 어려운 컨디션이지만 가장 집중력이 높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극한 환경에 놓일 때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무사히 우리를 마감으로 이끈다.


모든 오류들을 큼직하게 정리하고 인쇄소에서 보고서 출력과 제본 중이다. 모형 제출팀을 먼저 출발시키고 보고서팀은 KTX로 이동하기로 결정. 시간대별로 표 예매 후 역으로 이동해 퀵 서비스로 보고서 수령. 첫 번째 기차를 보내고 두 번째 기차를 탈 수밖에. 엄청난 라이딩으로 기차 탑승 성공. 잠이 들면 끝인 상황에 회사에서 걸려오는 전화들. [……] 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제출장소 이동. 모형 팀이 제출 서류 작성 중인 사이를 틈타 합류한다. 도착한 시점은 마감 시간을 아주 조금 넘겼으나 제출 시작 시점이 빨랐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제출을 마감한다. 뒤돌아보니 모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다.


드디어 마감이다.

우리에게 놓인 모든 난관을 뚫고 마침내.

열기는 땀이 되어 살갗 위로 송골송골 맺히며 몸이 차갑게 식어간다. 몸에 들어갔던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적당한 자리를 발견하고는 벽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어딘가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벽에 기대고서야 그 감각을 깨닫는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가 제대로 된 속도로 흐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곳에 동료들이 있다. 함께 그곳을 헤치고 나온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는다. 마치 그 순간을 위해 프로젝트가 존재한 것처럼. 팀워크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다. 고양감이 최고점에 도달한다.


보고를 위한 몇 통의 전화. 힘 빠진 대화들.

마감에 대한 이야기들. 서로 빗나간 멍한 시선들.

보고 있어도 듣고 있어도 보는 게 듣는 게 아니다.

의식적으로 시간을 끊어야 할 타이밍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 긴 여정의 끝을 위해 돌아가는 곳,

그곳에 집이 있다.



잠, 마감 전후의 경계

긴 마감의 과정을 지나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

잠, 잠을 자야 마감이 끝난다. 에너지가 사그라들지 않아 한참 동안 뜬 눈으로 누워있다가 눈이 스르르 감긴다. 잠에 빠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밑으로 쑥, 하고 꺼지는 듯한 느낌에 놀라 눈을 뜬다. 마감 다음날엔 늘 이렇다.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감각에 퍼뜩 놀라 깨버리고 나면 그제야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쌓여있던 피곤함이 쑥 빠지는 느낌이랄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이동을 하거나 또 다른 차원을 넘나드는 통로를 지날 때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몸짓처럼 아무리 반복해도 계속 낯설고 새로운 그런 경험 같다. 잠은 확실히 마감을 경계 짓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한번 깊은 잠에 빠져들면 며칠 동안의 수면부족을 한꺼번에 해결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누군가 깨우지 않으면 잠을 멈출 수가 없다. 끝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고야 말지만. 잠이라는 공백이 경계가 되어 그곳에서 한 발짝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게 된다.



마감 후 풍경들

잠에서 깨어나면 전혀 다른 세계다.

이제 우리에겐 마감 후의 의식들이 남아있다.

찜찜하고 후회스러운 기억들. 애착이 큰 프로젝트는 더 큰 흔적을 남긴다. 마감 후의 감정의 찌꺼기들을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쿨하지 못하다.

마감은 수명이 줄어들 것처럼 힘들면서 동시에 짜릿하고 끝내서 후련하다가 허전하고 허탈하다. 복합적인 감정의 과정들이 우리를 거쳐간다.

카페인을 아무리 들이켜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그 안개 같은 시간들이 마감 직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마감이라는 회색지대, 그 중간의 시간을 지나 일상으로 회귀하기 위한 의식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어딘가 뚝 떨어진 곳에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아드레날린이 마감을 지난 후에도 계속 넘쳐 한번 가속된 감각이 멈출 줄 모르고 폭주하다가 서서히 속도가 줄어든다. 아직 다하지 못한 완벽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꿈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괴로워하다 땀을 흘리며 깨기를 며칠. 표면 아래 잠들어 있던 나의 잠재의식이 문득 꿈에서 툭 하고 튀어나왔나 보다. 계속 잠들어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잔상들이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때가 찾아온다. 바로 그 순간, 현실로 돌아온다는 감각이 든다. 이제 미련을 접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면 본격적인 일상 회복 의식을 가동한다. 밀려있던 빨래와 청소를 하고, 가뭄 같던 배 속을 맛있는 음식들로 채우다 보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흩어져있던 도면들과 서류들을 정리하며 문서 파쇄기로 드르륵 갈아내 버리면 조금 더 후련해진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비워내 보자.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며 그 감동의 잔상들로 기억들을 밀어낸다. 그럼에도 감정의 찌꺼기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괜찮을 만큼 옅어진다는 것을 수많은 마감을 지나오며 우리는 알게 되지만, 우리는 그 의식들을 이어나간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런 의식이다.

모든 마감이 과정과 텐션에 차이가 있지만, 그 끝에 남겨지는 감정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프로젝트는 계속 돌아가고, 마감은 언제나 돌아온다. 그리고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에서 나오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마감 휴가를 일상 회복 의식에 쏟아부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느낌으로 일터에 돌아오면,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된다. 화면 빈 창에 마우스의 커서가 껌뻑 껌뻑 반복된 동작을 무심히 되풀이하고 있고, 우리의 머릿속은 백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감 사이클 속에서 제대로 된 휴식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보는 게 맞다.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시점. 채우기 전에 충전할 시간이다. 충전은 채우는 것이 아닌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함이다.

보고 싶었던 전시를 감상하고, 고궁을 산책하며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가을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한낮의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적는다. 잃어버렸던 일상을 되찾기라도 하듯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작은 것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차오른다.

다시 시작할 에너지가.

천천히 차오를 때까지 우린 기다리네. _ BGM # Woven Song | Olafur Arnalds



P.S.

너에게 보내는 이 긴 글들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마감의 의식은 계속 흘러가고 있지.

나는 지금 노란 불빛의 스탠드 아래에서

빈 종이를 쳐다보고 있어.

계속 노려보다 보면 내가 그것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여백으로, 빈칸으로 가득 찬 내가.

뭔가를 씀으로써 머릿속의 이야기가 사라져 갔지만,

딱 그만큼의 이야기가 다시 조금씩 차 올랐어.

잃고 얻음의 무한반복.

모든 게 다 이런 식인 것 같아.

그래서 잃을 걸 알면서도 새로움을 시도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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