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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9. 2020

경작, 문화의 풍경이 시작되다

자연을 탐험하다-3


경작의 과정은 계절마다 여러 스텝을 거치며 꽤 정교하게 날짜와 날씨 등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고, 다른 색, 크기, 모습의 풍경으로 드러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풍경인 벼의 재배 과정을 들여다본다. 벼를 심기 전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논으로 시작해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 햇빛에 투명한 연두 빛을 살랑거리는 벼의 물결, 태양에 점점 누렇게 익어 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풍경, 90프로 이상이 누렇게 변하며 논의 물을 빼고 난 후 시작되는 벼 베기의 풍경, 볏단을 세워둔 수확 후의 풍경, 탈곡을 위해 모든 볏단이 사라진 논의 비워진 풍경, 모든 역할을 다한 볏단을 둥글게 말아 놓은 마시멜로우 (곤포 사일리지)가 드문드문 랜덤 하게 여백 속에 있는 풍경, 한 겨울 논에 물을 얼려 썰매를 타는 풍경, 다시 봄이 오며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고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풍경, 사계절을 돌아 다시 제자리에서 경작의 과정이 이어진다.


경작지는 그렇게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의 정해진 루틴으로 반복되며 우리 곁에서 일관된 풍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어떤 작물을 키우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도 있다. 햇빛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어느 정도로 자라는지, 언제 심고 수확하는 것이 좋은지, 그런 모든 특성이 풍경을 결정한다.



#5. 경작의 장소들

BGM # Waving Though A Window | Owl City

비슷하지만 다른 특성을 지닌 경작의 장소들이 있다.

밭은 땅에 씨앗을 심어 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땅이 중요하다. 작물에 가장 적합한 흙의 상태를 만들고 유지해서 수확한 후, 다시 경작을 위한 상태로 만드는 끊임없는 반복의 작업을 한다.

논은 밭과 비슷하지만 물을 채우고 재배한다는 것이 다르다. 물이 잘 빠지도록 관리해 땅의 수분을 알맞게 유지하는 것이 논농사의 기본이다. 다랭이 논은 경사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평지보다 물을 조절하는 것이 시스템화 되어 있다.

와이너리의 포도밭은 '떼루아'라고 하는 기후, 토양 등 모든 것들을 포함한 전반적인 환경이 와인의 맛을 정한다.

염전은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물이 흐르는 것을 조절해 바람과 햇빛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채취한다. 비가 적게 오고 대기가 건조하고 기온이 적당해야 한다. 밭이나 논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염전은 하나의 그릇이다. 소금을 얻기 위한 그릇.

Salinas De Maras, Cusco, Peru _ BGM # Cafe | Ljones

#6. 소금을 얻는 그릇, 염전

살리나스 데 마라스(Salinas de Maras)는 안데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이곳 암염 지대를 통과하며 바닷물이 되어 염전이라는 그릇을 통해 소금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아주 오래전 바다의 기억을 지닌 채, 페루의 강렬한 태양에 반사된 물의 표피 위에 하늘과 구름의 풍경이 스며든다. 염전의 이랑을 넘나들며 풍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시간이 흐르며 바람과 태양이 지나간 자리에 풍경은 사라지고 소금 꽃이 피어오른다.


식재료를 얻기 위해 물, 햇빛, 바람, 씨앗, 모종을 이용해 경작의 땅을 만들고 가꾼다. 다양한 환경과 지형에 맞는 경작법과 땅을 만드는 노하우를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해 다음 세대에 전수해주고, 시대에 맞게 개량하며 만들어나가는 경작은 하나의 문화다. 그런 농축된 문화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은 본래의 야생의 자리를 떠나 사람들의 의지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가꾸어지며 우리 곁에 존재한다.

물의 장소를 통한 이상향의 풍경으로, 식 재료를 얻고자 만든 경작지의 풍경으로, 자연을 공유하며 일상에 여유를 주는 공원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도, 가장 구석진 곳에서도, 한 줌의 흙에 피어나는 강인한 도시 속 자연의 풍경으로, 집에서 자연을 소유하며 가꾸어 나가는 정원의 풍경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자연의 세계인 분재와 화분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그 풍경들 속에 자연을 향한 사람들의 바람과 경외감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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