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1년의 휴식이 헛되지 않게
올해 1년. 뜻밖의 휴식이 주어진 지금 헛된 나날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웹소설을 배우고 작품을 집필해 투고도 해보고. 나날이 조금씩 나아지는 내 문장에 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자존감도 자기 효용성도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운동을 업으로 하는 친구가 내게 추천해 준 운동이 있었다.
‘요가’
요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적인 수련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역동적인 운동을 하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한참을 동네 요가원을 검색하고 후기를 살펴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올린 글을 봤다.
남달리 예민해 힘들었던 자신이 요가를 하며 변했다는 이야기였다. 밖으로 발산되던 그 에너지를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그의 경험은 나와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남다른 예민함. 타인의 감정선을 읽어내는 것도,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항상 남들과 달랐었다. 육체적 통각은 너무나 무디지만, 심적인 통각은 너무나 예민한 사람. 그게 나였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아픈 시간을 버텨왔었다. 성장이라기보단 스스로에게 끝없는 최면을 걸어오며 버텼던 것 같다.
‘괜찮아, 무시하자.’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무뎌지게 만들어 왔다.
그런 내가 이 예민함으로 나를 돌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작용이 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겨났다.
몇 달을 등록할까 고민했었다. 한 달? 석 달?
한 달을 고민한 이유는 하나였다.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혹시 모르니 한 달만 배울까 하는 마음.
결국 난 석 달을 등록했다. 사실, 그 무엇이든 몸에 습관으로 자리 잡으려면 필요한 시간이 석 달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고 두려움에 움츠려 있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귀중한 휴식을 얻은 지금은 그 어떤 두려움도 마주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첫 수업.
PT 받을 때도 헛구역질하지 않았던 내가 요가 수업 삼십 분쯤 흘렀을 때 치밀어 오르는 헛구역질을 간신히 참아 냈다.
항상 큰 근육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던 내가 작은 근육을 미세하게 컨트롤하기란 쉽지 않았고 쏟아져 내리는 땀을 닦아낼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동작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코로 숨 쉬고 입으로 내뱉어 내던 기존의 운동들과 달리 무조건 코로 들이마시고 내뱉는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복압 유지를 위해 숨을 참아오던 것도 태연하게 숨을 쉬며 복압을 유지하기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치며 무아지경을 아주 잠시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내 왼발에 힘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골반이 틀어지진 않았는지.
이상한 고요 속에서 내 몸에 집중하는 경험.
너무 오랜만이었다.
항상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온 지난날. 내 두 발이 땅을 제대로 짚고 섰는지, 어딘가 불편함은 없는지 살피지 못했었다. 넘어져 쓰라린 무릎도 무시한 채 그저 목표 도달을 위해 스스로를 다그쳤었다.
이젠 힘을 좀 빼고 나를 위한 소리를 듣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