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냐 정 May 14. 2024

전직 마케터가 퍼스널 마케팅을 못 하는 이유

변명입니다

지난주 글을 업로드하고 다시 읽다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가 전직 마케터니까 SNS 마케팅도 잘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고 읽힐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내가 쓴 글에서 이런 오해를 찾아낼 때, 나는 나를 다시 분석한다. '네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뭐야?' 글 전체가 아니라 글의 일부, 단 몇 문장이 마음에 걸렸으니 그 문장을 다시 해석해 본다. 전직 마케터이니 어떻게 메시지를 작성해야 하는지 안다는 부분이다. 말 그대로 메시지의 명확성에 대해 안다는 이야기였지, 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마케팅을 업으로 삼았었기 때문에 마케팅에 대해 좀 더 아는 건 사실이다. 전직 마케터인 내가 퍼스널 마케팅을 못 하는 이유도 그 안에 있다.


마케터로 입사해 제일 처음 받은 업무는 시장조사였다. 전통적인 이론으로 보면 마케팅 전략을 위해서 4P가 필요한데, 당시 내가 처음 했던 건 경쟁사 제품(Product)의 유통(Place) 별 가격(Price)과 판매 촉진 활동(Promotion)을 조사하는 거였다. 당사 제품 전략이야 이미 선배들이 다 맡고 있으니, 내가 할 건 그들에게 제공할 자료조사 정도였다. 그다음엔 제품에 들어가는 신기능 하나에 대한 런칭 전략을 맡았고, 다음 시즌에는 전략 짜기 제일 쉬운 제품을 맡았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 주력 제품은 아니지만 매출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제품을 맡은 시즌이었다. 가장 많이 팔아야 하는 중요 제품이지만 전략은 간단했다. 제품 특장점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제품의 장점은 적절한 품질과 적절한 가격. 제품 라인업 상 위도 아래도 아닌 중간을 맡고 있었다. 그렇다고 상위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복잡한 사정을 설명할 순 없지만 상위 제품의 따끈따끈한 신기술 한두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하게 적용되어 있었다. 그럼 가격이 비싸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품질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하게 책정된 것도 확실했다. 하지만, 나는 품질이 뛰어나다고도 가격이 매우 싸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 제품은 내가 마케팅에 입문한 이후 계속 번뇌하게 된 계기다. 가만히 있어도 팔릴 제품. 그래서 주니어에게 맡겨놓고도 신경 쓰이지 않는 제품. "이것도 저것도 강조하지 마." 하면 끝날 일이 담당자인 나에게는 큰 숙제였다. 그런 제품에도 태그라인은 필요하다.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진짜 번뇌는 태그라인 따위가 아니었다. 위, 아래 제품이 강조하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걸 찾아야 하니 자연스레 전체 제품 전략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편집된 메시지들이 보였다.



편집에 따라 기능이 더 강조되기도 덜 강조되기도 하면서, 비슷한 제품이 완전히 다른 레벨로 커뮤니케이션되는 경우가 있다. TV를 예로 들자면, 허리를 담당하기로 했다면 좋은 화질을 가지고도 화질 자랑을 하면 안 된다. 최상위 라인이라면 가지고 있는 모든 화질 요소를 동원해서 최고 화질 구현을 앞단에 내세운다. TV지만 디자인을 강조하는 모델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좋은 화질을 가졌더라도 화질 이야기는 뒤로 숨긴다. 이 제품 차별점은 보통 TV와 다른 디자인이니까, 디자인만 보여야 한다. 마케팅이란 대상 제품을 완전히 대상화하고 해체하는 작업이다. 조각을 다시 모아 원래의 것과는 다른 형태로 쌓아 올린다. 더 매력적이게, 더 잘 보이게. 마케팅하는 사람에게는 적절치 않게, 나는 편집되어 사라지는 특장점들이 슬펐다. 내가 끌어안은 제품이 장점을 누르고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퍼스널 마케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서웠던 건 그래서였다. 마케팅이란 대상화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나를 대상화하고 편집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섬뜩했다. 사람이란 원래 다양한 우주를 품고 사는 존재 아닌가. 좋은 점, 나쁜 점 다 인정하고 품을 때 나로 살아갈 수 있고 말이다. 물론 우리는 원래 편집된 나를 내보이면서 사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도 전략은 필요하니까 말이다. 그런 전략이 퍼스널 마케팅의 일환이라면 또 별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개인이 되어 세상에 섰을 때 펼쳐질 퍼스널 마케팅 무대가 SNS를 포함한 전방위적 노출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어느 조직, 어느 역할을 위해 나를 편집할 때는 특정 시간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SNS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플랫폼이고, 편집된 내가 도망갈 구석은 점점 좁아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퍼스널 마케팅에 성공할수록 더 그렇다. 점점 내 SNS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혹시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 한 퍼스널 마케팅 이야기에서 어폐를 발견한 사람이 있을까? 사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에 큰 구멍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단지 '나라는 사람' 자체를 브랜딩 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말이다. 물론 시작이 편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 다른 활용방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퍼스널 브랜딩은 나를 편집해서 '제품'이라 할 만한 대상을 잘라내는 데서 시작한다. 대상화한다고 해서 내가 '물건'이 되지는 않는 어느 단위를 찾아야 한다. 내가 판매하는 제품일 수도 있고, 판매해야 하는 재능일 수도 있다. 이럴 땐 내가 나를 '편집'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도 그게 편집된 일부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마케팅할 수 있는 '제품'을 갖고 싶어졌다. 아직도 마케팅이라는 재미있는 작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다. '나'를 마케팅할 수는 없지만, 나의 '제품'을 마케팅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의 글이 제품 아니냐"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내 알았다. 글은 제품이 될 수 없다. 글은 나를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아닌 것을 담는 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나에겐 퍼스널 마케팅이 필요한, 그리고 가능한 제품이 없다. 그게 여전히 내가 퍼스널 마케팅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다. 혹여나 제품이 생긴다고 해도 나는 아마 '나'라는 존재를 편집하는 일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나'와 '제품' 분리법을 찾은 후에야 시작할 수 있을 테지. 여전히 중구난방 내 이야기를 펼쳐놓는 SNS 하나는 유지할 테고 말이다. Too much talker. 이야기하지 않으면 간단할 일인데 이렇게 고민하는 나는 투머치토커이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이야기하고 싶고, 나이고 싶은 마음 역시 여전할 테니까.


역시 내가 퍼스널 마케팅을 못 하는 이유는, 아직 내게 그런 능력이 없어서다. 확실한 재능이나 제품이 없어서. 마케팅 능력은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경험이 있을 뿐. 그것도 저기 다른 필드의 경험. 그러니 역시 모자란 내 능력이,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다.


* 날 고민하게 만든 지난주 글은 여기...

https://brunch.co.kr/@jsrsoda/217



이전 18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줄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