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입사지원서에 취미, 특기를 쓰나요?
취미에 대해 쓰다 보니 2005년 입사지원서를 쓰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 6개월 전까지 쭉 '아나운서'를 꿈꾸다가 포기한 때였다. 포기했으니 이제 다른 길을 찾아야지. 급하게 입사 지원 가능한 회사들을 알아보고 입사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방송사 지원서와 기업체 입사 원서는 묘하게 달랐다. 나를 제일 곤란하게 한 건 기나긴 자기소개서가 아닌 두 개의 단답식 문항, 취미/ 특기란이었다.
으응? 취미? 특기? 여기 뭐라고 써야 하지? 이건 왜 중요한 거야? 왜 이런 걸 묻는 거야? 물음표가 여러 개 뜬다고 비워둘 수는 없는 일. 앞서 입사 지원서를 쓴 선배들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취미는 그냥 아무거나 써. 특기도 아무거나 쓰면 돼. 제일 중요한 건 현장에서 확인이 어려운 걸로 써야 한다는 거야. 아무거나 썼는데 해보라고 하면 난감하잖아. 어차피 현장에서 확인 못 하면 뭐든 OK."
취미야 어차피 즐기는 걸 쓰면 되니까 혹시 시키더라도 잘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거기에 뭐를 썼더라. 독서였던가, 수예였던가. 아무래도 수예 종류를 썼던 것 같다. 독서보다는 수예가 질문에 답하기 쉬울 테니.
더 어려운 항목은 특기였다. 제일 흔한 독서나 영화감상 같은 건 취미는 될 수 있어도 특기일 수는 없잖아. 특기는 즐기면서도 기량을 발휘할 수도 있는 그런 종류여야 한다. 다만, 노래 같은 걸 쓰면 대략 난감. 면접장에서 노래라도 불러보라고 하면 어쩐단 말인가. 직전까지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으니 현장 리포팅을 특기라 해볼 수 있겠으나, 그 역시 곤란했다. 아나운서 준비하다가 기업에 입사지원한 지원자에 대한 눈길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면접장에서 목소리 가다듬고 답변했다가, "전공도 신문방송학이고 목소리 들어보니 아나운서 준비하다가 온 학생 같은데, 방송사는 어렵고 이런 회사는 만만해 보여요?"라는 질문을 마지막 임원 면접 단계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는 떨어졌었지.
뭘 적어야 할까, 한참 고민 끝에 떠오른 게 수영이다. 특기보다는 취미에 가까운 수영. 솔직히 특기라 말할 만큼 잘하지 못 한다. 그저 초등학교 때 자유형, 배영, 평형, 접영을 골고루 배운 덕에, 어디 가면 자신 있게 자세 잡을 정도였을 뿐. 초등 이후에는 수영장에 갈 일도 많지 않았으니, 입사 지원 당시 내 수영 실력은 나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수영은 지금 이 빈칸을 채울 적합한 단어다. 도심 속 빌딩 회의실 안에서 수영을 해보라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특기란에 당당하게 '수영'을 적어 넣었다. 그러고는 특기에 대한 질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사실은 거기에 수영을 적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특기가 수영이네요. 수영 한 번에 몇 미터나 해요?"
"네????" 몇 미터요???? 그렇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수영이라는 세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수영을 몰랐기에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거다. 임기응변으로 그냥 "500 미터요, 1000미터요" 하기에는 감이 너무 없었다. 사실 어느 정도가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최소한의 거리인지, 또 어느 정도가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 가능한 거리인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선택적 솔직함이랄까.
"아... (방긋 웃으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 고향이 부산입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웠고 바다에도 자주 놀러 갔어요. 아무래도 부산에 살면서 수영할 일이 많다 보니 제가 수영을 잘한다고 생각해서 특기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몇 미터씩이라는 기록이 있어야 특기라고 말할 수 있는 거라면 수영은 제 특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자 질문했던 면접관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럴 수 있지요."
다행히 면접장 분위기는 전보다 더 훈훈해졌다.
나오자마자, 함께 간 면접 동기들이 물었다. "어떤 질문받았어? 다들 압박 질문받아서 힘들었는데 너는 어떤 질문이 힘들었어?" 아.. 글쎄.. 힘든 질문이 있었던가. 이미 다른 질문들은 휘발됐고 딱 하나만 떠올랐다. "난 압박질문은 모르겠고, 특기에 수영 썼더니 수영 몇 미터나 하냐고 묻던데?"
지금도 다른 질문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 남은 입사 면접 단 하나의 질문.
"수영 한 번에 몇 미터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