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이걸 취미로 했거든요.
지루한 걸 못 견디는 사람이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 임신이란 첫째 임신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네 살을 더 먹어서 그런가 체력도 달랐고, 유산끼까지 있었다. 어디라도 나가고 싶지만 첫째 스케줄을 고려해서 재빠르게 갔다 오자니 더 힘들었다. 그래서 새로 만든 취미가 가만히 앉아 손만 움직이는 프랑스 자수였다.
때가 되어 출산을 했다. 애가 배 밖으로 나오고 보니 프랑스 자수도 사치였다. 차분하게 한 땀 한 땀 뜨는 일엔 손뿐 아니라 머리도 필요했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레이더를 돌리는 머리 말고 자수에만 집중하는 머리가. 프랑스 자수와도 작별을 고하고 나니 다시 무료해졌다. 물론 몸까지 무료해지진 않았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직업 중 하나니까. 몸은 쉴 틈이 없는데 마음이 무료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광고가 바로 지 다이퍼스의 지팬츠 광고였다. 어머어머, 이렇게 귀여운 기저귀라니. 갖고 싶잖아~~ 그렇다. 내가 지팬츠 광고를 보고 느낀 감정은, '갖.고.싶.다'였다. 가방을 갖고 싶듯이, 옷을 사고 싶듯이, 나는 그 기저귀를 사고 싶어졌다. 모든 소비에는 공부가 필요한 법. 현명한 소비를 위해 천기저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와, 이렇게 무궁무진하다니. 처음 천기저귀를 검색하고서 했던 생각이다. 네모난 소창 착착 접어서 노란 고무줄로 허리를 감아주는 천기저귀는 그야말로 라떼 이야기. 통풍방수 기저귀, 방수 기저귀, 네모난 기저귀, 땅콩기저귀, 천으로 만든 팬티 기저귀까지.. 흡수체 종류도 다양했는데, 많이 흡수되는 애, 통풍이 잘 되는 애, 잘 마르는 애. 샐 가능성이 비교적 적은 실용성을 택할 거냐, 아이 엉덩이의 보송함을 택할 거냐. 엄마의 취향에 따라 선택사항도 많았다.
내가 제일 처음 선택한 건 땅콩기저귀였다. 이유는 비용 부담이 없어서. 이미 첫째 때 사은품으로 받은 땅콩 기저귀가 있었던 것이다. 천기저귀를 취미로 삼아 진지하게 사들이기 전에 테스트가 필요했다. 아이의 엉덩이에 맞느냐 하는 테스트 말고, 이게 정말 내 취향에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집에 있는 땅콩기저귀로 실험해 본 결과 두 시간이면 싹 다 젖어 나갔다. 자주 가는 게 귀찮았을 법도 한데 쉬하고 젖어서 갈았는데도 일회용 기저귀를 했을 때와는 다르게 보송한 엉덩이 감촉이 좋아 귀찮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 이거야. 내가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활동.'
그날부터 죄책감 없이 천기저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면 낭비지만, 사용할 물건을 사면 합리적 소비 아닌가. 게다가 천기저귀는 환경 측면에도 장점이 있는 걸. 비용면에서도 일회용 기저귀 계속해서 살 돈으로 초기 비용은 좀 더 높지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천기저귀가 유용하지.
그때부터 본격적인 천기저귀 취미가 시작되었다. 내 눈에 예쁘고, 내가 실험해 보고 싶은 제품들 위주로 사서 빨고 말려 하나씩 사용해 보기.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기저귀는 바로 '통풍방수'라는 이름부터 말이 안 되는 종류였다. 정식 명칭은 알 수 없지만 우리 천홀러들은 이걸 통풍 방수라고 불렀다. 플리스나 울 같은 소재를 활용하는 제품이었다. 알면서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이 섬유들의 특징. 플리스나 울 소재 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맞으면 처음에는 또르르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완전히 안 젖는 건 아니지만 속까지 젖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 소재를 사용해서 기저귀 겉 커버를 만들면 쉬 하고 바깥이 완전히 젖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다. 일정 시간 방수라고 해야 할까? 고무나 비닐로 막은 건 아니니 통풍은 되니까.. 여기에 통풍 방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통풍방수 커버는 이 아이. 천기저귀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기저귀 찬 엉덩이가 일회용 기저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귀여워진다는 것. 핏만으로도 빵실하니 귀여운데 귀여운 무늬까지 더하면, 최고다!
이 사진의 기저귀 커버는 여름울 소재. 아무래도 플리스나 울 모두 겨울 소재라 더운 감이 있는데 여름울을 쓰면 덜 두껍다.
위 사진의 기저귀는 우리의 전통 기저귀인 소창이다. 소창은 정련의 과정을 거쳐야 만 수분을 잘 흡수한다. 다섯 번 이상 끓는 물에 삶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 역시 매우 귀찮은 과정이다. 하지만... 천기저귀를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하는 나에게는 전혀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취미 생활에 귀찮음이란 없다. 굳이 소창 기저귀를 주문해서는 (애 옷도 삶아본 적 없는) 들통에다가 끓이고 말리고를 반복했다. 요 핏도 꽤 귀엽지 않은가? 좀 투박하지만 한여름에 촥 감아준 소창 기저귀는 나름의 멋이 있었다. 여름 모시 한복 같은 멋이랄까.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6개월이 지난 아이의 움직임도 커졌고 더위가 가시니 소창의 필요성도 줄었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천 팬티 기저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두 박스는 넘던 기저귀가 지금은 없는 관계로 사진으로 남은 아이들만 자랑해 보기로 한다.
청지에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 보자마자 사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
이건 사실 멀리서 보면 뭐가 그리 예쁜가 싶은데, 가까이에서 보면 섬세한 선이 아름답다. 칙칙한 육아 일상에 화사한 컬러가 좀 필요하기도 했고.
이건이건, 설명할 필요 없이 아름답다. 부드러운 하늘색에 오리 가족이 그려진 이 겉지는 기저귀를 채울 때마다 동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아래 사진 기저귀는 유일하게 남은 외국산 천기저귀. 사실 당시에 (2017년) 천기저귀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미국, 캐나다, 호주 쪽이 더 활성화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천기저귀 판매자가 주로 소상공인이었던 반면 서양 쪽 천기저귀 회사는 주로 기업이었다. 그래서 종류도 많았는데, 우리 기저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사진으로 봐도 뻣뻣함 내지는 두툼함이 느껴지시는지? 서양 천기저귀는 대부분 겉지가 방수처리 되어있다. 안쪽이 얇은 고무막 같은 걸로 코팅된 겉지를 사용해서 완전 방수가 가능하다. 큰 장점이지만, 이 기저귀를 쓰면서는 통풍재질 기저귀가 주는 보송함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내 천기저귀 취미 활동의 큰 기쁨이 보송함이었던지라 화려하고 예쁘지만 방수가 너무 완벽한 이 아이에게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외출 시에는 유용하게 사용했다.
천기저귀가 취미라고 하면, 이게 어떻게 취미가 될 수 있냐 되묻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천기저귀는 취미였다. 외출도 어려운 암울한 육아 시기를 산뜻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즐거움. 내 취향의 겉지를 고르고, 맘에 드는 기저귀를 아이 엉덩이에 채우고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히 차올랐던 시간. 아래 사진들이 그 증거다. 하핫. 아이만큼이나 자랑하고 싶었던 건 이렇게나 예쁜 내 기저귀들이었다.
9개월 사진에서 아이가 입고 있는 파란 기저귀는 내가 손바느질로 만든 작품이다. 천과 바느질로 완성할 수 있는 거라면 나도 한 번 해보자 싶어, 두 개의 기저귀를 만들었었다. 역시 실용성이야 산 제품 쪽이 훨씬 좋았지만, 덕분에 기념사진이 좀 더 의미 있어졌다.
처음 천기저귀를 한다고 했을 때, 친정 엄마는 적극 반대했다. "애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가 천기저귀 빨다가 관절 상해. 요즘 기저귀 좋아. 그냥 일회용 기저귀 써." 그래서 말했었지. "엄마, 요즘 기저귀는 세탁기가 빨아." 물론 하다 보니 세탁기가 100% 빨아주지는 않았지만, 고생을 사서 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기에 최대한 세탁기와 각종 도구를 활용했다.
그렇게 1년 남짓. 둘째의 첫 해를 천기저귀와 함께 보냈다. 1년이 지나고 보니 내 호기심이 모두 충족되었고, 더 이상은 기저귀가 재밌지 않아 그만뒀다. 아까운 기저귀들은, 나를 이어 잘 써줄 이들에게 보냈다. 그래도 내가 천기저귀를 한 1년 동안은 일회용 기저귀를 덜 썼으니, 취미생활하면서 자연에도 도움을 준 셈이다. 환경 운동가가 되고 싶어 천기저귀를 한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환경에도 좋은 일이라서 더 즐거웠다.
육아를 하다 보면 취미 생활 하나 가지기 어렵다. 그때 굳이 찾아낸 천기저귀라는 취미 덕분에 아이 낳고 첫 1년이라는 암흑기를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지금 떠올려도 신나는 기억. 더 새롭거나 더 예쁜 기저귀를 찾고, 어떤 걸 살까 고민하고, 결국 주문하는 기쁨. 택배를 기다려 받았을 때, 언박싱할 때, 빨아서 아이 엉덩이에 싸악 채워줄 때, 그리고 그 귀여운 엉덩이로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의 행복. 그런 것들이 나를 산뜻하게 웃는 엄마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