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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라요. 좋아할 뿐...

그림도, 음악도, 전시도, 연주회도...

by 쏘냐 정

어린 시절 엄마와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올라 갤러리에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산문화회관에서 대형 전시를 할 때면 한 시간씩 버스 타고 보러 가곤 했다. 어떤 날엔 전시 말고 연주회. 덕분에 미술 전시나 클래식 공연이 낯설지 않고 정겹다.


엄마가 어린 날의 나에게 이런 경험을 주었기 때문에, 어른이 된 나도 즐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그랬다. "나도 어릴 때 같이 다녔잖아. 그런데 난 지겹기만 했어. 지금도 나는 그런 거 별로야. 어릴 때 경험한다고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냥 타고난 거지." 아, 듣고 보니 그렇네. 나와 반대의 취향을 가진 동생도 어린 날의 경험은 나와 같잖아?


같은 경험도 각자 다르게 쓰인다. 지금 내가 아들들에게 나와 같은 취향을 기대하는 대신 같은 취향을 보일 때 기뻐하는 이유도 그거다. 아, 이 아이는 나의 DNA를 물려받았어. 함께 즐길 수 있겠어. 하는 기쁨. 그림이나 음악만이 좋은 취향은 아니니까, 꼭 좋아하지 않아도 되지만 공감할 수 없는 건 아쉬운 일이니까.


여하튼, 그림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은 엄마로부터 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좋아하는 그림 취향이나 좋아하는 음악 취향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림을 보면 즐거워지고 클래식 공연에서 충만함을 얻는 건 같다. 다른 게 있다면 엄마는 뭐든 잘 알고 즐기는 편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점. 나는 그냥 느끼는 게 좋다. 세상에 할 공부가 얼마나 많은데, 취미까지 공부해 가며 해야 한다면 일찍이 탈주했을지 모른다. 나에게 음악회나 전시회는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활동이다.


그림의 세계에도,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도, 역사가 있다. 시작이 있고, 족보가 있고, 분파가 있다. 무슨 주의니 하는 것들이 줄 서듯 쪼로로 순서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각 시기는 다른 특징을 가졌지. 알고 보거나 듣는다면 훨씬 더 풍부한 감상이 가능할지 모른다. 좋아한다면 응당 궁금해야 하는 건지도. 그러니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은 진정 즐기는 게 아니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즐긴다는 말의 기준을 조건 없이 행복해지는 행위에 둔다. 같은 기준을 충족할 때 그 일에 취미라는 이름을 붙인다.


요즘 유명한 시대나 화가의 전시가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나는 유명하다고 해서 다 기대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대나 화가, 그림이 가진 의미보다 그림을 들여다볼 때 내가 어떤 느낌을 받는지가 더 중요하다. "난 예쁜 그림이 좋아."라고 종종 말하는데, 예쁘다는 기준도 주관적이라서 딱 하나로 말하기는 어렵다. 내 눈에는 예쁜데, 타인의 눈에는 아닐 때도 있고 말이다. 여하튼, 나는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먼저 눈에 들어와야 의미도 읽게 된다.


음악회도 마찬가지다. 좋은 연주를 듣고 싶다. 미술전시보다는 클래식 음악 공연은 선택지가 적기 때문에, 이왕이면 검증된 연주가나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선택하는데 매번 다른 감동을 느낀다. 독주라면 소리가 명료하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연주를 아름답다고 느끼고, 오케스트라라면 조화를 이루면서 웅장하게 울려 퍼져 공간을 꽉 채울 때 행복해진다. 피아노 독주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피아노가 이런 기준을 가장 잘 충족시키는 악기여서다. 피아노는 천재의 발명이라고 늘 생각한다.


그럴 때 받는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미술 작품이나 연주가 주는 하나의 인상이 온몸을 채운 것 같달까. 머릿속이 비어버린 것 같고, 한 공간에 서 있으면서도 유한한 공간을 향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잘 알지 못하고, 그래서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감동 포인트가 적절한지 알 수 없지만. 잘 모르는 덕분에, 내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 종종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왜인지도 모르면서 순간의 내 감정 그대로를 충분히 느낀다.


자주 미술관에 가고 음악회에 가는 나니까, 미술과 음악에 대해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건 정말 부담스러운 오해. 무엇을 물어도 내가 대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술감상이나 음악회 관람은 내 특기가 아니라 취미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사실 잘 알지는 못 한다. 그저 좋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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