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에는 이유가 있나요?

그것은 도피인가 자유인가.

by 쏘냐 정

진도의 바다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는 그곳의 여유로운 바다. 바다와 일출을 사랑하지만, 컨디션을 고려해 일출 보기를 매번 포기했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는 꼭 그 일출을 보고 싶었다. 3박 4일의 일정 동안 세 번, 그러니까 매일. 나는 일출을 보았다.



코로나의 길고 긴 터널. 답답해서 숨 쉴 틈이 필요했다. 그래서 계획했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덜 붐빌 것 같은 곳을 찾아 여행지는 진도로 정했다.


이 여행의 이유는 그런 거였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 장소를 고른 기준은 이랬다. 방콕만 하더라도 답답하지 않을 것 같은 곳. 그렇게 그저 부유하듯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그 시간들 중에 내 오랜 질문이 생각났다. 나의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


단 하나의 여행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다. 가족들과의 하와이 여행은 아이들에게 대자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신혼여행지로 꼭 몰디브가 가고 싶었던 것은 사진에서 본 신비로운 바다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영국을 한 번 더 가고 싶었던 것은 그 공원들이 좋아서였고, 프랑스가 가고 싶은 건 낭만이 넘치는 거리, 맛있는 마카롱을 직접 만나고 싶어서였다. 매번 여행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것과는 조금 다른 질문이다. 당신은 왜 여행을 좋아하는가.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생긴 숙제. 이 책은 여행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그저 여행 이야기는 아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해서는 그렇게 정의해놓고서도, 왜인지 나의 "여행의 이유"를 꼭 정의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빠졌다. 문제는 그 답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두 번의 독서모임도 진행했다.


"도피"

더 멋진 이유를 말하고 싶지만, 결국 내 여행의 이유는 도피였다.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내가 여행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나는 내 처음 도피의 기억은 입사 1년 차였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것이 출장이든 여행이든 상관없었다. 긴 비행일수록 더 좋았다. 내가 비행기에 앉아있는 동안은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회사의' 그 누구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부서장이 연락을 할 수 없는 곳. 하늘 위를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회의를 마치고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 회의 결과를 당장 회의록으로 작성해 보내라는 부서장의 전화에 "부장님, 지금 비행기를 타야 해서 회의록을 보낼 수가 없어요." 답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No."라고 답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비록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전화를 받는다 하더라도. 비행기 타기 직전의 "No"는 합법적인 느낌이 들어 떳떳했다.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과 같이 비행기를 타기 시작하면서 비행기는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이제는 비행기만큼 나를 방해하는 이들과 밀착된 공간이 없다. 비행기를 타면 내릴 때까지 꼼짝없이 아이들이라는 상전을 모셔야 한다. 평소의 방치 전략이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방치하면 영락없이 타인들이 피해를 입게 되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 여행은 "도피"다. 비행기만이 외부와의 단절을 보장했던 것은 아니구나. 나의 여행들을 돌아보면서 느낀다. "여행의 이유"에서 나온 것처럼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공간은 현실의 상처가 가득한 곳이다. 상처만큼이나 현실의 할 것들이 가득한 곳. 주부가 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은 한시도 쉴 수 없는 노동의 공간이 되었다. 여행은 그 짐을 덜어준다. 호텔방은 내가 치울 필요가 없는 공간.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유별난 깨달음을 준 곳은 화장실이었다. 9살, 5살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 남편까지 총 세 명의 남자가 우리 집에 산다. 이런 집에서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 변기와 주변을 닦아야만 냄새나지 않는 화장실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나는 변기 주변을 그렇게 열심히 닦아대지 않는다. 닦지 않았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그건 내 책임 밖의 일이다.


물론 이러한 짐을 더는 것이 여행이 주는 도피의 전부는 아니다. 3박 4일의 여행이라면 딱 4일만 마주칠 사람들. 그 자유가 좋다. 매번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내 행동 하나하나. 신경을 쓰는 사람. 나에게 그 시간이 쌓임은 늘 두려움이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내가 실수한 것은 없을까. 누군가에게 내가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나의 행동이 타인의 맘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시간이 쌓여갈수록 두려움도 쌓여가는 관계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관계만을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혹여나 실수를 하더라도, 그게 그 사람에게 오래 기억되더라도, 마주치지 않으면 결국은 잊힐 거라 믿게 된다. 그런 곳에서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다리에 콤플렉스가 있어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잘 입지 않는다. 너무 여성스럽거나 노출이 있는 옷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잘 사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사서 옷장에 넣어두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하나. '해외여행을 가면 가지고 가야지. 시선은 있지만 나와의 연결성이 떨어지는 시선만이 있는 그런 곳에서 한 번쯤 입어봐야지.' 그 언젠가를 위해서 옷장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옷들.


아마도 현실에서 봉인되어 있다가 여행지에서나 꺼내놓을 수 있는 내 모습들은 이보다 더 많을게다. 비록 내가 지금 떠올리지 못하고 이 글에 풀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도피"는 그저 도망이 아니다. "자유"다. 나의 도피는 자유를 선사하고, 그것이 나에게 힐링이 되기에. 또다시 현실 속에서 부대낄 에너지를 만들어 주기에 나는 여행을 사랑한다. 당당히 맞서라고 세상은 말한다. 피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가끔 도피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돌아올 일정이 분명한 도피는 분명 세상에 더 당당히 맞설 힘을 줄 거라고. 그건 그저 저 멀리 도망가는 것과는 다르다고.


그래서 나는 또 여행을 꿈꾼다. 이왕이면 다음 여행은 저 바다 건너이면 좋겠다. 옷장 속에 잠든 옷들에게 햇살을 보여줄 수 있도록. (코로나여, 자네도 얼른 길을 떠나 주겠소.)

keyword
이전 14화방이 하나도 없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