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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20. 2022

혼자서 피워내야 하는 계절

서른세 번째 봄의 기억


  내가 그럴 줄은 몰랐지만(남편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선을 봐서 결혼을 했다. 겨울에 처음 만난 우리는 가을에 결혼을 했다. 나는 서른둘, 남편은 서른넷이었다. 남편의 집에 인사를 간 어린이날, 깔끔한 정원과 넓은 마당이 있는 그 집이 좋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거실에 둘러앉아 믹스커피를 홀짝이는 어색한 침묵의 순간, 어머님이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꼭 붙잡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수진아. 결혼할 거재?"
"네?"
청혼이었다. 다들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뭐, 이런? 원래 이런 건가? 혼자 뜰에 나온 나는 잡초 하나 없는 잔디밭에 심긴 소나무와 모과나무를 보고, 구석에 피어난 할미꽃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결혼을 하는 건가? 그렇게 결혼이 결정되었다.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 단 한 번의 트러블도 생기지 않았다. 양가에서 고대하던 결혼인 만큼 상견례 자리부터 하하호호, 다들 좋아서 난리였다. 내가 뭘 해낸 것 같진 않은데 부모님이 나를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점점 결혼 생활에 기대와 환상이 부풀어 올랐다. 예쁜 집, 단란한 가정, 사랑이 넘치는 그런 환상들.

 시가에서는 내 의견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집 문제를 마음대로 결정했다. 우리는 일단 남편이 자취를 하던 원룸의 위층에 있는 투룸에 살게 되었다. 아버님은 내년에 제대로 된 집에 이사를 시켜주마 약속했고 월세를 내주신다고 했다. 이사 시기를 또 미루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날, 나는 남편에게 집 문제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남편은 나를 허영 가득한 욕심꾸러기 취급했다.

  남편과 나 사이의 문제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집에 있지 않았지만 모든 문제는 내 안에서 집 문제가 되었다. 내가 한 음식을 타박하는 남편, 내가 하는 어떤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나와의 약속을 죄다 어기는 남편, 임신을 재촉하는 시부모님, 남편의 다이어트를 책임지라고 하는 시어머니, 10분 거리 회사까지 꼭 차를 가지고 가는 남편, 어딜 가든 한 시간은 걸어야 하는 집의 위치, 본인의 일을 남일 보듯 아무 의견도 없는 남편. 서운함이 분노로 차곡차곡 쌓여 있지도 않은 집안을 꽉 채웠다. 너무한다. 다들 너무해. 남편의 무신경에 비례해 내 신경은 날로 더 예민해졌다. 우리는 끝없이 토라지고 화를 내다가 언성을 높이고 눈물을 쏟아가며 싸웠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내 삶을 옮겼건만 남편은 나에게 온갖 잡일을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직장 생활과 인간관계에 충실했다. 내 존재가 무급의 가사도우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어느 봄날, 나는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했다. 결혼을 집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사람과 함께 살면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겠다 싶어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렇게 결혼을 결정했다. 내가 고작 그런 방식으로 결혼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가기로 해버렸구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이 나에게 충실한 시간을 내어줄 뜻이 없어 보여 나도 남편에게 관심을 줄이기로 했다. 전단지를 붙여 과외 수업을 구했다. 값비싼 색연필을 사서 컬러링북을 칠하다가 혼자서 그림을 그려보았다. 팟캐스트 '빨간 책방'과 '지대넓얕'을 들으며 동네를 두 시간씩 걸어 다녔다. 사람이 별로 걷지 않는 넓은 인도에는 벚나무가 한그루도 없었지만 산당화와 조팝나무 꽃이 많았다. 수업이 세 타임이 되었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빵을 사 와서 혼자 먹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친구가 절친이 되어 함께 카페에 다니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친구는 수를 놓았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남편은 나의 일과 취미들에 그저 무심하지만은 않았다. 때때로 코웃음을 쳤다. 남편의 제일 두드러지는 단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하찮은 것으로 후려치는 말을 하면서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 보통 '소중한 무엇'이 없는 사람들이 자격지심으로 내뱉는 말이라고 머릿속에서 맞받아쳤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상했다. 곧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나도 남편의 취미에 관심을 끊었다. 남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들을 하나하나 챙겨 다시 거둬들이고 그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들도 나에게로 되돌렸다. 나는 우리가 자기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작은 마음의 주인들이라 판단했다. 너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마음을 좀 챙길게. 언젠가 너의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내 마음이 필요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계속 같이 산다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마음을 먹자 모든 문제가 몇 kg쯤 가벼워졌다.

  처음부터 기대했던 모든 환경을 다 갖추고 시작했더라면 결혼 생활이 지금보다 더 수월했을까. 집 문제로 1년 반 동안 속을 끓이지 않아도 되었겠지. 대신 결혼을 서둘렀던 만큼 임신을 서둘러야 했겠지. 남편과 어른들의 뜻에 따라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는 가정주부로만 살아야 했겠지. ‘단란한 가정’이라는 환상을 좇아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겠지.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기약 없이 미루어야 했겠지. '불행한 신혼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매일같이 고뇌하던 서른세 번째 봄날들을 지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우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날들에 감사한다. 한 쌍의 예쁜 부부는 한낱 환상으로 사라졌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찾아냈으니 말이다.

  글을 시작할 때 내가 찾은 봄은 새집으로 이사를 한 서른네 번째 봄날이었다. 처음으로 살아보는 아파트, 모든 방에 해가 잘 드는 하얗고 넓은 집에 살게 된 눈부신 봄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이런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 상자에서 서른세 번째 봄을 꺼내지 않고서는 서른네 번째 봄을 꺼낼 수가 없었나 보다.


#미루글방

#봄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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