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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pr 04. 2023

로맨스 지상주의는 지나간 세월

2w매거진 33호. 전지적 로맨스 시점


유난히 더 재미난 이번 매거진!

http://aladin.kr/p/pzZTM



 차에 꽂힌 USB(요즘 세상에 블루투스도 아니고)에서는 몇 년째 같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플레이리스트의 발라드는 20년 전으로 시간이 멈추어 있어서 그때 그 시절 청춘을 울린 애절한 목소리가 연달아 이어진다. “울든지 노래하든지 하나만 해. 울면서 말하면 듣기 싫어.” 내가 한 소리 하고 목록을 계속 넘기면 남편은 그냥 나오는 대로 들으면 되는 걸 굳이 넘긴다며 한마디 한다. 꺼버리고 싶은 걸 참고 휴대폰 화면에 집중한다.

 

“어떡하죠.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그대만 생각하면 터질 것만 같아요.” 호소력 짙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영은이다. “사랑만도 너무 아픈데 이별은 난 모를래요.”

내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저거였나 보다. 심장이 고장 나서. 아니, 심장이 고장 났다고 믿어서. 아니, 심장이 두근거려야 사랑이라고 믿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심박수가 살짝 빠른 편인 나는 불안감이 들면 무서울 만큼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두근댐의 불안을 사랑의 설렘과 혼동했다. 길고 긴 혼동의 날들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떠올리는 로맨스 지상주의의 나날들. 그 시절 ‘중요한 나의 일’은 내게 단 하나도 없었다. 남자 친구와의 만남, 그의 연락, 칭찬 한마디가 나의 전부였다. 그런 사람과 몇 년을 질질 끌며 만나다 결국 헤어졌을 때 나는 텅 비어있는 내 속을 마주하고 당황했다.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와 만나는 동안 너무 자주, 깊이 슬퍼하며 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나는 좀 멍청해졌다. 책을 읽어도 글이 잘 보이지 않았고,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일기를 쓰려고 해도 문장을 이어갈 수 없었고 울어보려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래 누워 있었지만 잠을 잘 수 없었고, 술을 마셔야 겨우 웃을 수 있었다.


 나는 긴 연애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구들이 오래 만난 연인들과 다들 결혼하는 이 시기에 '지옥'이니 '공멸'이니 하는 단어로 우리의 연애를 폐기물 취급해 버린 사람을 향한 나의 감정은 체념뿐이었다. 우리는 오래 만난 게 아니고 그저 오래 걸려 천천히 헤어진 것뿐이었다. 그대 뒷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는 그 노래 제목은 ‘내 안의 그대’이다. 내 연애 감정 역시 ‘내 안’에 있는 그대를 향했을 뿐, 그대는 내 사랑이 아니었다.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상형은 드라마 <청춘의 덫>에 나오는 노영국(전광렬 배우)이었다. 노영국은 아이 아버지인 애인에게 버림받고 사고로 아이마저 잃은 서윤희(심은하 배우)를 사랑하게 된다. 여자는 자신의 과거를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알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때 노영국이 그 유명한 대사를 한다. "내가 사랑해. 나를 이용해."

육아 스트레스로 정신이 피폐한 친구와 술을 마실 때마다 깔깔대며 주고받는 대사였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되어버린 그 대사. 내가 어떤 여자이든 무조건 사랑하는, 무려 이용당해도 괜찮다고 하는 그런 남자. 당연히 그런 남자(전광렬과 키가 비슷한 남자는 있었다)는 현실에 없었고, 나는 심은하가 아니기 때문에 환상은 환상인 채로 남았다.

그 때 그 청춘의 덫!


 슬프든 말든 생업을 이어가던 날, '님의 침묵'이 또 모의고사에 나왔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다’라는 게 뭘까? 슬픔을 절망과 좌절이 아닌 희망으로 승화한다는 의미겠지. 맨날 나오는 화자의 정서와 태도. 정서와 태도는 같지 않아. 정서는 슬픔, 태도는 의지적. 알겠니? 슬프다고 엉엉 울고 있지 말고 힘내서 뭐라도 한다는 거지. 알겠니?”


 그 순간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정신적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슬픔의 힘을 새 희망의 정수리에 콸콸 들이붓는 해결 방식을 선택한다는 사실. 큰 문제는 내가 자신의 정수리의 상태나 희망의 정체에 대해서는 무지하며, 매번 아무거나 들이붓고 정수리가 깨지는 경험을 반복하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세상과 인간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 자신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타인의 애정을 갈구하며 ‘사랑하는 삶’을 모른 채 ‘사랑받는 삶’에 온통 초점을 맞춰왔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 그렇게 관계에 대한 집착과 상실의 공허함이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에 나를 던져 놓았구나. 사랑은커녕, 멀쩡하게 살 수조차 없겠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좀 더 찬찬히 나를 들여다보았어야 했다고 시간이 10년이나 지나 생각한다. 정신과를 더 다니고 좋은 상담 전문가를 찾기 위해 애썼으면 나았을 거라고. 그러나 그때의 나는 ‘결혼’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고 '보잘것없는 약한 나'를 책임져줄 상대를 찾기로 했다. 시집살이의 고통을 술로 달래는 친구와 소맥을 마시며 내가 내세운 조건은 이랬다. ‘나에게 부동산이나 그에 준하는 금액을 내어주고, 생색을 내지 않는 남자’ 친구는 ‘생색을 내지 않는’이 전광렬만큼이나 찾기 힘든 조건이라고 말했다. 결혼한 친구의 말을 새겨들었어야 했는데, 아직 현실의 맛을 모르는 나는 일단 꾸준히 선을 보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러 명의 남자들(농담이 재미없는, 열등감 가득한, 옷에 얼룩이 묻은, 사주와 궁합에 집착하는, 그 외 기타 등등)이 있었다. 내가 선을 볼만한 조건의 여자라는 걸 확인하는 것 외에는 소득 없는 만남이었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선을 본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다.


 이상한 건, 남편을 처음 만난 순간 느낀 감각이었다. 카톡 프로필과 배경에는 늙수그레한 사진이 몇 장 보였지만, 다행히 실물은 사진보다 한 살 정도 더 젊어 보였다. 카페 2층에 올라와 두리번거리다가 내 쪽으로 걸어올 때 어쩐지 이런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될 것 같아. 나를 지켜줄 사람이야.'이 첫 느낌이 내가 남편에게 가진 가장 깊고 강한 로맨스의 감정이다. 달리 말하면 그 후 이어진 만남과 결혼 이후 우리 부부 사이에서 로맨스는 실종되었다는 뜻이다. 낭만에 무심한 남편과 감성을 나누려는 무수한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면서, 어느 때보다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비슷하다는 점 외에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다. 결혼 9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서로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취향이 다르고, 한집에 살지만 다른 세상에 산다. 건조하다면 건조한 대로, 그래도 기적적으로 딸을 하나 키우며 사는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에게 로맨스는 종잡을 수 없이 쿵쾅대는 심장이 아니다. 스며드는 평온함은 떨리는 가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중한 감각이다. 꽃 트럭에서 사 온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와 망고 튤립이 꽂힌 꽃병을 보며 글을 쓰는 나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로맨스는 스스로 챙기는 게 맞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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