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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un 01. 2023

영심이네 집을 안다면

2w 매거진 35호 ㅡ 꿈의 공간

아, 좋다! 좋아!
다시 봐도!

 일요일이면 영심이를 보던 시절부터 내 꿈은 '번듯한 집'이었다. 해가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이 있고 주방과 욕실에는 곰팡이가 없고, 각자 방문을 닫으면 단정한 거실이 있는 집. 내 방이 있어 언제든 틀어박힐 수 있고, 잠깐씩 마당에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있는 그런 집 말이다. 무너져가는 시골집과 좁디좁은 다세대 주택에만 살았기 때문에 어린이 시절에는 아파트를 꿈꾸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서야 내가 꿈꾸던 영심이의 집이 아주 부잣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 '반듯한 아파트' 정도로 목표를 수정해 볼까 한 정도였다.


 "네가 언제 그렇게 좋은 집에 살아 봤냐?" 남편의 비아냥은 무수한 부부싸움에서 주고받은 뾰족한 말 중에서도 가장 아팠다. 한 번도 ‘좋은 집’에 살아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좋은 집’에 살고 싶은 것 아니겠냐고, 내가 그 정도 가치도 없는 사람이냐고, 선을 볼 때 집을 해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따지지 못했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구나. 내 바람은 이 사람에 무의미하구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값나가고 좋은 물건을 가질 수 없는 ‘초라한 나’라는 해묵은 얼굴을 확인할 뿐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욕심내어 벌을 받은 옛날이야기의 악역 된 기분. 내가 집을 원하는 게 과한 건가? 죄책감까지 느꼈다.


 나는 남편의 말을 "주제넘게 집을 욕심 내?"라고 이해했다. 아마 잘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에서 살게 되고, 부부로서 서로에게 적응해 가고, 아이를 키우며 그럭저럭 살면서도 집이나 자동차 같은 큰돈이 드는 화젯거리 앞에서 나는 몹시 성마르고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순종적이고 참할 줄 알았던 아내, 자신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결혼을 선택한 줄 알았던 여자가 사실은 돈과 조건을 내걸고 결혼 시장에 나온 여자라는 사실에 그도 배신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가진 것은 없지만 썩 괜찮은 여자'인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는 착한 남자가 아닌 남편에게 실망했다.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하나도 모른 채 결혼을 한 멍청이 한 쌍이었다.


 남편이 들으면 속이 상할까 봐 몇 년이나 참았던 말을 어느 날 내뱉었다. 그날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서 남편은 이 집이 아니어도, 더 늦게 이사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무의미한 이야기를 또 꺼냈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더 먼 동네로 더 늦게 이사했더라면 차가 없는 나는 어떻게 일을 하러 다녔겠으며, 아이는 언제 계획했겠냐는 내 말에 남편이 수긍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당신은 모르는 모양이라 이야기할게. 결혼하면 당연히 시가에서 집을 사주기를 바라니까, 당신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야. 나는 집을 사주겠다는 사람만 골라서 선을 본 거야. 그걸 알아야 해."

남편의 동공이 떨리는 게 보였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우리는 웃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집을 해오겠다고 해서 결혼을 결정한 게 아니고, 집을 살 수 있다고 해서 전화번호를 전해 준 거라고.”

 그러나 그때도 남편은 내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분수를 모르는 욕심쟁이’라는 나에 대한 평가를 더욱 공고히 했을까? 알게 뭔가? 내가 본인에게 느끼는 감정에 무감각한데, 그가 나를 어떻게 판단하든지.


 우여곡절 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보는 아파트, 번지르르한 새집에 이사했을 때 나는 얼떨떨할 정도로 기뻤다.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좋은 기분'이나 '긍정적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없어서 어떤 식으로 기뻐해야 할지도 잘 몰랐지만 '나 몰라라'하는 남편 대신 이사에 필요한 모든 일을 처리했다. 나는 이 집과 사랑에 빠졌다. 영심이네 집처럼 예쁘고 아늑하지는 않지만, 반듯반듯한 사각으로 이루어진 모든 공간이 좋았다. 살아본 어떤 집보다도 넓고 깨끗하고 환한 공간이 내 집이라니 감동적이었다. 지금 나는 어릴 적부터 꿈꾸던 책상과 피아노가 있는 나만의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이 방에 작은 침대도 놓고 싶다. (방을 둘러보니 자리가 없을 듯하지만) 세월이 흘러 새하얗던 붙박이와 벽들이 누레지고, 고장 난 다용도실 문은 어떻게 해도 고쳐지지 않지만, 집에 대한 내 애정은 변함없이 깊다. 이 집은 30년 동안 꿈꾸던 나의 이상형이었으니, 좀 늙는다고 금세 식어버릴 사랑은 아니다. 그래서 혼자만 하기 억울한 집 청소를 꿋꿋하게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자동차 문제로 말씨름하다가 남편은 다시 또 화를 냈다. "차를 사는 문제는 큰일인데 서두르게 하지 마라. 집을 살 때도 그랬잖아!!" (사실 나는 시어머니가 자꾸 새 차를 사야 한다고 재촉해서 그 의견에 따른 거였는데, 이럴 때는 며느리가 본인 어머니의 말을 잘 들어도 화를 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역시 남편은 내가 하는 ‘집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집’이 나에게 어떤 의미든지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지긋지긋하지만 다시 한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달라. 나에게는 집이 제일 중요한 거라고! 가장 갖고 싶은 거였다고! 2년? 3년? 나는 단 하루도 더 기다릴 수 없었어! 나는 그런 사람이야! 그걸 왜 몰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돈 문제가 나오면 자꾸 집을 걸고넘어지는데 제발 좀 그러지 마. 그리고 차 문제? 알았어. 나는 완전히 손 뗄 거고 관심도 없으니까, 차를 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다시는 이야기하지 마. 나는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을 거니까 당신 뜻대로 다 해."

 내 분노에 남편은 본인을 무시한다며 더 화를 냈지만, 상관없었다. 낡은 차를 처분하고 새 차를 사면 또 혼자서 타고 다니겠지. 지금 타는 차가 완전히 망가지면 출퇴근이 불편한 것도 남편이지, 나는 아니고, 차가 없으면 시가에 못 갈 테니 나쁜 것도 없지 싶어 완전한 진심으로 ‘차’에는 신경을 끊었다.


 가끔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남편이 어떤 차를 사겠다고 말할 때가 있다. "저기 서 있는 저 차가 이름이 뭐거든. 색은 블랙보다는 어쩌고 저쩌고…." 들뜬 목소리를 들으면 코웃음이 나지만 애써 참고 차분하게 대꾸한다. "차는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빨간 차를 사든, 노란 차를 사든 타고 싶은 차를 사십시오. 전에 내가 말한 대로 차 문제에는 일절 입을 대지 않을 테니." 아마 남편은 차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해야 새 차를 고민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집 문제도 모두 시어른과 내가 처리했으니까.


 그저께 저녁 옷 수선 가게에 가는 길에 새똥을 맞았다. 고개를 들어봤지만(이번에는 얼굴에 맞을 수도 있겠다고 잠깐 겁을 먹었다) 산뜻한 초록색 맨투맨 티셔츠 팔뚝에 흰색과 검정 마블링을 남긴 새는 이팝나무 위를 유유히 날아가 흔적도 없었다. 6년 전 홍대 앞에서 어깨에 새똥을 맞은 후로 오랜만이구먼, 어이가 없었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을 올렸다. 이걸 보고 몇 명은 웃겠지. 하필 물티슈도 없어 트라이크(유아차 비슷한 자전거)에 앉아 고구마를 먹는 아이에게 고구마껍질을 떼 달라고 해 대충 닦고 수선집까지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다정한 친구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와! 좋은 일이 생기겠어요!" 그래서 어제 오랜만에 로또를 샀다. 로또 1등이 되면 정원이 있는 작은 주택을 구해야지. 1층에는 커다란 창을 내고 창밖에는 계절마다 꽃이 피어나도록 해야겠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집처럼. 그 풍경을 언제까지나 바라볼 수 있게 편안한 1인용 의자를 두는 거야.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원목 책상과 책장을 두고 내 자리를 누려야지. 남편에게는 차나 한 대 사줘야겠다. 자주 놀러 나가서 나를 방해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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