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을 위해 제일 먼저 할 일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한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라고 한다. 뻔하게 들렸던 이 말이, 요즘은 내 삶의 신조가 되었다. 진짜 말그대로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고, 먹을 땐 먹고, 잘 땐 자고. 그 순간에 충실한 삶. 참 쉬워보이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게 또 없다.
워라밸ㅡ일과 삶의 균형을 말한다. 요즘에는 균형이 아닌 '조화'라는 말이 더 유행인 것도 같다. 균형, 그리고 조화. 그 둘은 다른 것일까? 균형은 양분된 것이고, 조화는 섞인 것일까? 균형을 이루면서 조화를 이룰 수는 없을까? 그 고민의 끝에 '경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은 워라밸, 워라하(모니)도 아닌, 워라경(계)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다.
일과 삶의 경계. 그 경계는 명확한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경계 없이, 일과 삶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 속에서 자아를 찾는 게 맞을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전자를 명확히 선호하는 것 같다. 근무시간 외에 전화하면 싫어하고,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많은 회사는 워라밸이 깨진다고 기피한다. 그런데 성공한 CEO나 스타트업 대표들을 보면, 일과 삶이 하나다. 자나깨나 일 생각 뿐이고,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 뭐가 맞는 것일까?
인생의 연륜에 따라 단계가 나누어지는 것 같다.
1단계. 처음에는 경계가 모호하다. 아니, 처음일수록 오히려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갓 입사했든, 사업을 막 시작했든, 처음에는 뭐든지 푹 빠져서 정신없이 돌아가야 한다. 경계부터 나누기 시작하면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경계부터 나누는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이유는, 일과 삶의 정확한 경계, 즉 자기 자신의 일과 일 외적인 삶의 올바른 잣대를 분명히 세우고 그대로 실행할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준이 명확치 않고, 실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경계부터 지으려고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되는 것이다.
2단계.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이고, 일이 조금 녹록해지면,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 할 때는 몰입해서 최선을 다하고, 놀 때는 확실하게 놀고 충전하는 것이다. 이는 상호간에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다. 시너지를 위해서는 시간을 장악해야 한다. 일하는 시간, 노는 시간이 온전히 내 손 안에 있어야 한다. 시간의 양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일 하는 시간에는 최대한의 생산성을 발휘해 성과를 내고, 쉴 때는 완벽하게 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대로 휴식하지 않으면 생산성을 올릴 수 없고, 일의 성과가 없다면, 놀 때도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는 점이다. 꼭 회사가 정해준 출퇴근 시간에 맞춰 경계를 그을 필요는 없다. 일에 있어서 최고의 생산성을 올리는 시간, 그리고 온전히 나를 충전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 그 경계선을 그어두고, 그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드는 데에도 고수의 영역과 하수의 영역이 있다. 초짜라면 가급적 명확하고 단순한 경계선에 삶을 맞추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단순한 일상이 루틴이 되어 습관이 될 때까지,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데에 특별한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게 되면, 아마도 그 다음에는 경계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경계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과 경계가 허물어진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시간과 휴식을 만끽하는 시간, 건강을 돌보는 시간, 관계를 위한 시간 등 삶의 여러 요소들이 분명한 경계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때, 그리고 그 속에서 편안함과 여유가 묻어날 때, 그들이 진짜 고수다. 가급적 빨리 도착하고 싶은 내 워너비 라이프다.
워킹맘으로서 회사를 다니다보면, 가장 먼저 깨지는 것이 바로 '경계'다. 균형, 조화, 모든 게 다 어렵고 버거운 이유는 경계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장소는 분명히 다르지만, 회사 업무와 스트레스는 집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육아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업무에 영향을 준다. 책임의 경계도 모호하다. 업무 성과가 미비하거나,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 진짜 원인과 상관없이 1차적인 책임은 내 것이다. 경계 없이 모든 걸 다 짊어지고 살아가다보면, 무게에 짓눌려 가루가 되든, 버티다 버티다 재가 되어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면 끝이다. 그 전에 바로 세워야 한다.
경계란, 기둥같은 것이다. 든든하게 기둥을 몇개 세워놓고, 그 사이사이를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며 삶으로 채우는 것이다. 가장 쉽게는 일하는 시간과, 그 외 시간의 경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의 경계. 나를 위한 시간과 가족을 위한 시간의 경계. 인풋과 아웃풋의 경계선을 만드는 것이다.
경계를 그엇다면,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 남이 내 경계를 침범하는 걸 방어하기 이전에 내가 내 경계부터 잘 지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경계를 잘 지키면, 균형과 조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삶이 곧 균형, 그 경계를 유연하고 편안하게 넘나들며 자유를 누리는 게 '조화'일 테니까.
균형을 넘어 조화로운 삶을 향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