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육아, 그리고 나
워킹맘. working(일)과 mom(엄마) 두 개의 짐을 같이 짊어진 이름이기에 왠지 더 묵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워킹맘이나 전업맘이나. 초보맘, 애둘맘.. 할거없이 힘든 건 다 똑같다. 그저 하루의 시간 배분이 다른 것 뿐이다. 이제는 옛날처럼 엄마는 밥하고 뒷바라지하며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엄마의 행복이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엄마가 먼저 성장해야 한다는 계몽(?)이 일어나고, 직장에 다니든 다니지 않든 엄마 자신을 위한 시간을 중요하다는 생각도 꽤나 당연해졌다. '가족을 위한 희생' 하나만이 아니라 엄마로서, 주부로서,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 여러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요즘 엄마들에겐 '균형'이 필수값이다.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있고, 어떤 역할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일이 우선이어야 하고, 아이와 함께일 때는 그 시간이 우선이어야 한다. 모든 '중요한 일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삶을 영위하려면 발란스가 깨져서는 안 된다.
엄마가 아닌 직장인들에게도 균형은 물론 중요하다. 직장인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은 보통 직장에서의 시간과 퇴근 후 개인적인 삶을 영위하는 시간의 경계를 의미한다. 이 때의 균형은 물리적인 시간의 구분이다. 구분되어 있는 각각의 시간을 온전하게 '보장'할 때 워라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균형은 조금 다르다. 워킹맘의 하루만 보더라도 그렇게 시간을 뚝 잘라 보장할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 부대끼며 출근하고, 몸은 직장에 있더라도 아이들이 밥은 먹었는지, 낮잠은 잘 자는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라도 받으면 바로 달려가야 한다. 퇴근하는 순간 제2의 출근이다. 아이들이 잠들면(육퇴) 비로소 자기 시간이 생기지만,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일쑤다. 시간의 분리가 어려운 워킹맘에게 균형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의 균형이 아니다. 일과 육아를 다 잘 해낼 수 있는 에너지의 균형, 감정의 균형, 체력의 균형 모두를 의미한다. 24시간이 모자랄 만큼의 수많은 일과와 역할을 해낼 정신력과 체력이 받쳐줘야 하고, 귀한 에너지를 잡아먹는 감정의 요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는 나만의 고속 충전기도 필요하다. 에너지가 없다고 한없이 드러누워 있을만 한 여유가 워킹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균형점은 내가 직접 찾아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내가 단단히 중심을 잡으면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괜찮은' 수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저 일하고 애 키우기도 바쁜데, 언제 체력을 키우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냐고. 나 역시 그랬다. 큰 아이를 낳고 3년동안, 엉망진창이었다. 일과 육아 모두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늘 시간이 없고, 버거웠다. 책 읽을 시간도, 운동할 여유도 없었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루하루 위태위태했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뭔가 사고가 났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매일 똑같은 하루가 전쟁같이 밀려왔다. 잘 하려고 애쓰는 게, 내가 완벽주의자여서인 줄 알았다. 일도 육아도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초보라서 그렇게 힘든 줄로만 알았다. 주변에서는 뭐 하나를 포기해야한다고 했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다고도 했다. 하지만, 어떤 걸 포기하란 말인가? 똑같은 월급 받는데, 아이 낳았다고 일을 대충하라고? 아니면 아이를 잘 키우는 걸 포기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워킹맘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하면 안 된다. 내가 선택한 삶인데 왜 포기하는가?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내 일에서,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가장 최선의 상태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 자기만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깐 모든 걸 멈추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자, 신기하게도 모든 게 착착 정상 궤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커서도, 일이 편해져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일과 육아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가운데, 스스로 정상적인 삶을 지켜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양 손에 일과 육아를 쥐고 비틀거리는 워킹맘의 일상을 살고 있다면, 이 중에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나 한 번이라도 고민한 적이 있다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쪽이든 포기한다면 100% 후회할 것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지칠테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이 흘러 아이가 크거나, 무언가 돌파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기엔 하루하루 일상이 너무 버겁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나를 키우는 것. 균형을 잡기 위해 중심축을 찾아 헤매는 대신 나 자신이 크고 튼튼한 중심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굳건한 중심축이라도 늘 완벽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일에 치우치고, 어떤 날은 아이들에게 화를 쏟아낸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나 자신에게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균형을 잘 맞춘 저울도 흔들리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넘어지지 않게, 결국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단단해지는 건 내 몫이다.